크리스마스 선물

by 고들정희

내일이면 크리스마스다.


나의 아주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기억은 아침 일찍 일어나 TV에서 방영해 주는 크리스마스 특선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루돌프와 산타클로스가 나오는 만화는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었다. 아침에 가족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이불을 덮고 마법같이 신비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며 행복해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집엔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없었고, 선물을 받아본 기억도 없다.

유치원 시절에는 그나마 산타로 분장한 선생님이 부모님이 미리 보낸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지만, 누가 봐도 진짜 산타는 아니었다. 그런데 딱 한번, 내 머리맡에 초코파이와 학용품이 담긴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던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그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 두근거림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쓰다 보니 또 전쟁 치른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데 ㅎㅎㅎ)

그때는 어린 마음에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다고 믿었다. 아니, 어쩌면 간절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언니와 오빠가 막내 동생인 나를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동생에게 크리스마스의 좋은 기억을 심어주려 했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 소중한 기억 때문일까. 내가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울 때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진심을 다했다. 평소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세심하게 살피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원했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크리스마스 쿠키를 함께 만들어 트리 밑에 놓아두고 밤새 산타가 다녀간 것처럼 접시를 비워두던 순간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트리 밑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선물을 열어보던 아이들의 모습은 일 년 중 가장 큰 이벤트였다.

아이들은 이브 날 밤이면 너무 설레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몇 번이나 새벽에 깨어 산타가 다녀갔는지 확인하는 바람에, 숨겨둔 선물을 몰래 꺼내 놓는 일은 늘 007 작전처럼 조마조마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과 환상을 깨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특히, 큰애 준혁이는 꽤 오랫동안 산타를 믿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던 아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는 학교를 다녀와서 "친구 누구누구는 산타를 안 믿는데요!" 하면서 흥분했었다. 자연스레 다 알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준혁이에게는 그때까지도 산타의 존재가 너무 컸었던 거다. 준혁이에게 슬쩍 물어보니,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빠가 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몰랐던 사실), 마법에 관련된 책을 읽고 나서는 산타는 정말로 존재할 거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해리포터 책에 푹 빠져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얼마나 흥분하고 설레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날밤 트리옆 거실소파에서 자겠다고 우겨서 10시쯤에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 3시에 다시 잠에서 깨어나 트리밑에 선물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루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산타의 정체를 알고도 남을 나이가 되어서부터는 크리스마스 2주 전부터 내가 직접 포장한 가족들의 선물을 트리 밑에 쌓아둔다. 이제 몰래 작전 수행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니 몸은 편해졌다.

아이들과 늘 함께했던 18년간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4일전에 태어난 준혁이의 생일 파티를 올해 처음으로 건너뛰게 되며 함께 들었던 생각이다.

"생일 파티 혹시 언제 하실거에요?" 묻길래, 나는 괜찮으니 친구들과 파티하라고 말해줬었다. 주말에는 아들들이 각자 아르바이트 스케줄로 바쁘고, 자연스레 저녁을 함께 먹는 일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생일 아침에 미역국은 끓여줘야지 해서 전날 준비한 미역국과 잡채,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아 주는 것으로 아침 생일상을 대신했다. 준혁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가족과의 생일 디너를 건너뛴 셈이다. 이젠 준혁이도 대학교 2학년, 성인이다. 그리 거창하진 않아도 생일상을 준비하다 보면 하루 종일 끓이고, 볶고, 굽고, 또 치즈 케이크까지 만들면 시간이 엄청 걸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생일상 안 차려도 되니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 절로 나와야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기쁘다면서 왜 마음은 허전하지? ㅎㅎ

크리스마스가 세상에서 가장 큰 설렘이었던 아이들의 표정, 가슴이 뛴다며 전등 밑에서 포장지를 뜯던 모습, 그 모든 풍경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생각에 거짓말같이 공기가 건조하게 느껴졌다.


90년대초반까지만해도 크리스마스 즈음엔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졌다. 그땐 리어카에서 인기가요를 녹음해 팔던 시절이라, 어느 골목을 지나도 음악소리가 들렸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발걸음이 가벼웠고, 폭신한 목도리를 두르고 선물상자 하나만 들고 있어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공테이프들이 사라지고, 웬일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서서히 식어갔지만, 나는 늘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종소리가 들리는 캐럴과 반짝이는 트리 사이로 오만 가지 색의 전등이 불을 밝히던 그때를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웃과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 익숙한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들뜨기보다는 자꾸만 어디론가 시선이 헛돌고 허전함이 밀려온다.

내가 늙나 보다.


북적이고 소란스러웠던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야 비로소 정적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리워한 것은 반짝이는 트리나 화려한 캐럴 그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위해 몰래 선물을 숨기며 가슴 졸이던 그 분주함, 아이들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산타가 되었던 그 열정적인 계절이 그리운 것이다. 내가 쏟았던 그 모든 정성은 사실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생동감 있게 살게 했던 동력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떠나가는 것은 서러워할 일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순리일 것이다. 서운함보다는 대견함이, 쓸쓸함보다는 안도감이 앞서는 이 묘한 감정. 다만, 사랑의 소임을 다 마친 뒤에 찾아오는 이 낯설고 건조한 정적이 조금은 어색할 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을 작은 칠면조 한 마리를 사두었다. 간단히 오븐에 구워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조금은 심플한 저녁을 차려볼 생각이다. 올해는 큰아이가 친구들과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비록 식탁 한 자리는 비겠지만, 올해 새롭게 가족이 된 데이지와 함께하는 첫 크리스마스이니 그것만으로도 꽤 다정하고 따뜻한 풍경이 될 것 같다. (데이지를 위한 선물도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포장해두었다.)

디너가 끝니고 나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내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줄 것이다.

축제 끝에 오는 이 덤덤한 평온함이, 내가 나에게 주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10년전 크리스마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가 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