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를 시작하며 한 해를 돌아보는 "나의 일 년"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1년 동안의 성과와, 일상의 사건들을 모아보니, 별일 없을 것 같던 시간 속에서도 목표를 잡고 나아간 흔적들이 꽤 보였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이다.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기록을 남기다 보면 그래도 일 년을 잘 살았구나,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2023년 나의 일 년을 다시 읽어보았다. 몇 십 년 만에 기타를 사서 굳은 손을 풀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타 멤버를 꾸렸다. 가장 두려워했던 스케이트를 배워 얼음 위를 걸어보기도 하고, 동네 레이크에서 패들보드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해체된 북클럽의 아쉬움을 모아 새 북클럽을 결성하고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온 것도, 경제 공부를 통해 생애 첫 ETF를 샀던 것도 모두 2023년이었다. 프리랜서로 북키핑 업무를 시작하고,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지나온 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2023년의 5K 마라톤은 2025년 10K 도전으로 이어졌고, 그때 시작한 글쓰기는 2025년 에세이 부문 "대상"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바이올린 소모임의 하우스 콘서트는 결국 캘거리 한인 오케스트라 입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꾸준히만 한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도 새해를 맞아 2025년의 나의 일 년도 정리해 보려한다. 매년 1월에 써보면 좋을 것 같다.
<2025년 나의 일 년>
1월: 캘거리 마라톤 연습 돌입 (YMCA 트랙 달리기)
2월: 스즈키 3권 연주곡 비브라토 연습 시작 / 실력 향상을 위해 연습량을 대폭 늘렸던 시기
3월: 테니스 초급 시작 / 20년 된 네이버 블로그 이름을 "고들 정희의 하루"로 변경 및 재정비
4월: 유튜브 작가 활동 / 바이올린 스즈키 4권 진입 / 첫 야외 러닝 시작
5월: 테니스 중급반 수업 / 캘거리 문인협회 공모전 에세이부문 대상 수상
6월: 캘거리 마라톤 대회 첫 10k 완주 (1시간 6분)
7월: 문인협회 시상식 참가 / 네이버 핫토픽 선정
8월: 골든두들 새끼강아지 '데이지'가 가족이 되어강아지맘이 되다
9월: 캘거리 한인 오케스트라 오디션 합격 및 입단
10월: R238 기타 밴드팀 첫 외부 공연 (수아 씨 생일파티) / 북스톤차일드 북클럽 2주년 정모
11월: 심한 손통증으로 인한 쉼 선택(운동모임 기타 밴드, 바이올린 수업 중단) / 카나나스키스 겨울 하이킹으로 몸과 마음의 힐링 / 오케스트라 첫 봉사연주
12월: 시눅센터 오케스트라 크리스마스 콘서트 / 아이들 한글책 1200권 새 주인 찾아주기 성공
성취의 기쁨 뒤에 찾아온 손가락 통증은 나에게 그만둠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그만둬야 하는 순간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그만두는 순간을 실패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책에서 접한 매몰비용의 법칙처럼 이미 쏟은 열정과 시간이 아까워 비효율적인 집착을 이어가기도 한다. 나 역시 바이올린에 쏟은 노력이 아까워 통증을 참으며 무리하게 연습했다. 결국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긴 했지만, 내가 이 악기를 더는 지속할 수 없음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그만두는 걸 결정하는 데는 미련과 집착이 따라다니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꿈꾸던 오케스트라 입단을 이루고 나서야 이별을 고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또 다른 기회를 만들면 될 일이다.
2025년은 무엇보다 글쓰기로 인정받아 행복한 한 해였다. 2023년 처음 북클럽 회원들과 글쓰기를 시작할 때, 그저 함께 쓰는 것이 좋았다. 어떠한 기교보다 꾸준히 쓰는 것이 답이라 믿었다. 그 철학을 놓지 않았기에 대상 수상과 신문 게재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결국은 꾸준함은 보답을 한다. 잘 쓴 글의 기준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읽었을 때 파장이 있고 나에게 감동이 전해진다면, 나는 그것이 좋은 글이라 믿는다.
최근 <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자인 최강록 셰프가 마지막 결승에서 만든 '나만을 위한 요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결승전에서 그는 화려한 기술 대신, 정성을 다해 저어야 하는 들깨 두부와 따뜻한 우동 국물을 내놓았다. 유창하진 않지만, 어눌하고 느릿한 설명 속에 그의 요리 철학과 진심이 가득 담겨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설명을 듣자마자 '아, 최강록이 우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투박하고, 장황하더라도 어법이 안 맞아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도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은 전혀 없다. 그저 내 머릿속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며 쓰는 정도이다. 그걸 습관화하기 위해 글쓰기 소모임 멤버들과 일주일에 한편씩 에세이를 쓰고 있다.
2025년의 보상은 언젠가 나에게 책 출간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열정을 다했던 바이올린과 기타를 내려놓은 그 여백에, 이제는 더 깊은 글을 채워 넣으려 한다.
한 해를 되돌아보니, 참 많은 생각이 스친다.
비워낸 자리에는 분명 또 다른 꿈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