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레이먼드를 만나다
레이먼드의 오래된 앨범을 펼쳤다. 그곳에는 1950년 어느 여름을 살고 있는 한국 꼬마들이 모여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글동글한 얼굴이 예쁜 감자 같았다. 아이들은 사진기를 든 커다란 영국 군인을 의식한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기가 뭔지 안다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레이먼드가 스무 살 때였으니까 지금쯤 이 아이들도 흰머리가 나고 나이를 먹었겠죠?"
"그렇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한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겠지. 지금 이 아이들만 한 손주와 함께 있을지도 모르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이 사진이 단순히 어떤 순간의 기록이 아니라긴 역사와 누군가의 인생이 뭉쳐진 커다란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여기 있다!"
군인들의 모여있는 사진에서 단 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청년 레이먼드는 놀랍게도 지금과 똑같은 콧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색깔만 하얗게 변했지 지금이나 그때나 수북하고 정갈한 콧수염은 여전했다. 60년 동안 이 스타일을 유지하다니! 얼굴의 장난기도 지금과 똑같아 사진 속 청년인데도 친근감이 느껴졌다. 핸섬가이라는 칭찬에 레이먼드가 머쓱해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의 추억을 함께 거슬러 올랐다. 텐트로 만들어진 처소와 간이 병원, 함께 지낸 동료들, 임진강의 풍경과 까막산의 일출, 처소 근처에서 마주친 한국 사람들... 레이먼드의 눈에 담았던 풍경들을 따라 그 시절 임진강 주변 한 바퀴를 빙 돌았다.
"이 친구는 미키야. 한국 동료였는데, 하도 행동이 재빨라서 군인들 사이에서 별명이 배트맨이었다고."
"여름엔 이렇게 입고 있던 옷을 바로 벗어서 빨았지. 마를 때까지 웃통을 벗은 채로 돌아다녀야 했다고. 허허."
"땔감을 주우러 온 아이들이야. 까막산에 널린 마른나무들을 포대자루에 가득 담아 갔어. 이 장작으로 며칠간은 가족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냈겠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적도 없는, 태어나기도 전의 한국 얘기를 영국의 어느 마을에 와서 듣고 있다니.
간이 병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청년 레이먼드가 의자에 앉은 군인의 이를 치료하고 있었다. 치과 도구를 그의 입 안에 넣고 들여다보는 모습이었다. 그가 치과 군의관으로 한국에 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이다. 연고도 없는 먼 나라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땅에.
문득 치료를 하고 있는 사진 속 손과, 사진 밖에서 그 손을 바라보는 레이먼드의 손이 겹쳐 보였다. 주름이 쭈글쭈글한 그의 손... 힘없는 지금의 손은 그 시절 패기 있던 손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스무 살의 레이먼드와 여든 살의 레이먼드가 함께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한국에 가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궁금해 물었다.
"가보고 싶지.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보고 싶어. 내가 있었던 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한국에 와요! 내가 끝내주게 가이드해줄 자신 있는데!"
"못 가. 허리랑 등이 아파서 비행기를 한 시간 이상 타지 못 하거든. 평생 못 갈 거야."
"..."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친구들이랑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나곤 하지. 새로울 것도 없는데 만나면 늘 한국 얘기를 해. 그 시절 이야기, 지금의 한국 이야기. 이제 그 친구들 중에서도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이 있어. 둘 씩이나... 세월이 정말 많이 지난 거겠지.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리 네 가족은 계속 만나며 한국을 응원할 거야."
그때도,
지금까지도,
한국을 향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60년이 지나도록.
"고마워요."
갑자기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레이먼드에게, 그리고 세분의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두 분께. 그들의 생애를 통틀어 긴 시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꽃잎 하나가 다른 다섯 꽃잎에게 말했어요.
"꽃 피우길 잘했어."
세 번째 꽃잎이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꽃잎은 대답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물기가 말라도
누군가의 콧날이 시큰할 만큼
이렇게 짙은 향기가 남았잖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