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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Jun 07. 2020

주최자는 불안이요, 참석자는 결핍인 대환장 파티

돈과 불안에 관한 이야기

방법론이 넘쳐나는 시대

가족, 연인은 물론 자신보다도 더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바로 구글이라 했던가.

내가 검색한 것들, 클릭해본 기사와 수많은 영상들까지,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모든 정보를 가져가서 쉬지도 않고 열심히 분석하고 있으니 나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타인에게 핸드폰이나 태블릿을 빌려주는 것이 괜히 민망한 이유는 메신저에서 대화 내용을 볼까 봐가 아니라 유튜브를 켜볼까 봐, 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선별되어 유튜브 첫 페이지에 사르르 나타나는 썸네일을 훑으며 요즘 내 관심사를 새삼 재발견하고 확장한다. 요즘 내 썸네일에는 유난히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 자주 뜨고 있다. 바야흐로 방법론이 넘쳐나는 시대다.



불안한 직장인들

저기 80.9% 안에 내가 있을 듯.

2020년 하반기가 시작되고 기다렸다는 듯 ‘경제’ 파도가 일렁인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도 그 이야기뿐이다. 팀이 축소되고, 계약직 연장은 없고 월급은 삭감되었다고 했다. 예정된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고, 유난히 사표를 낸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들리던 지난 한 달이었다.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월에 미뤄졌던 프로젝트는 취소가 확정되었다. 그 외에도 당연히 진행된다고 예상한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야근하며 회사 동료들과 주고받던 말들, “우리는 일복이 너무 많아, 에휴, 일만 할 팔자인가 봐.” 같은 넋두리가 아주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요즘은 일이 넘친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소비는 줄어들고 기업의 매출은 낮아진다. 조만간 괜찮아질 거란 보장도 없으니 마케팅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 불안감은 빠른 속도로 피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있는 싱가포르 역시 1965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기불황을 예상하고 있다.



단군이래 돈 벌기 가장 쉬운 때

괜히 돈에 관한 영상이나 글이 눈에 보이면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단군이래 돈 벌기가 가장 쉬운 때가 바로 지금이며 누구나 책상에 앉아 월 500만 원, 1000만 원씩 벌 수 있다고 외치는 제목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기 충분했다. 보기만 하지 말고 일단 행동을 하거라. 다이어트 신도 부자의 신도 그렇게 외쳤다. 그 신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이 이렇게 많다니.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한동안 열심히 시청한 내 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똑같다. 솔직히 불안감만 더 늘었다. 귀가 얇으면 이것저것 해본다. 의심이 많고 어떤 확신이 있으면 애당초 다른 곳을 잘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데 나처럼 귀는 얇은데 의심도 많으면 엉덩이만 무거워진다. 아무것도 안 한다. 방법이란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했다. 방법을 보는 건 쉬워도, 쉬워 보이는 방법들도 따지고 보면 경험, 지식이나 인사이트, 타인보다 빠른 행동력을 요했다. 엉덩이가 무거운 나는 방법론을 실천할 끝내주는 방법을 검색하고, 또 그 방법을 실행할 또 다른 방법을 알고싶어 할지도 모른다. 명확한 목적과 올바른 질문없이 돈버는 방법만 수집하는 황당한 내 모습을 직면할까 두렵다.



돈에 대한 태도 변화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불안해하는 건 결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과도하게 돈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가치인 자유를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떠돌이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나는 언제나 당장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았다. 서른이 넘도록 할부로 내 미래의 시간을 담보 잡히는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았고, 사고 싶은 건 항상 일시불로 구입했다. 지금 수중에 돈이 없다면 사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핸드폰은 선불제, 소지품은 항상 캐리어 두 개에 들어갈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내 날개를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돈을 아끼려고 압박하지도, 그렇다고 무리하게 돈을 쓰지도 않았기에 나는 지금껏 돈과 담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동의 자유가 하룻밤 사이 없어지고, 전 세계가 경제가 어려워진다 외치고, 동시에 수많은 '돈 버는 방법'들이 내 눈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스트레스 쌓인다.



주최자는 불안, 참석자는 결핍인 대환장 파티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눈길이 자꾸 가는 돈 버는 방법들은 바로 내 안의 결핍과 결국 한 뿌리라는 것이다. 결핍에도 성격이 있다. 어떤 결핍은 내가 좋아해서 혹은 정말 필요해서,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그 방법을 탐색하게 만든다. 내 경우에는 글쓰기와 요가가 그렇다. 아직은 취미에 불과하지만 더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고 싶어 그 방법을 알아보고 몸을 움직인다. 반면 어떤 결핍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모든 건 여기서 시작된다. 만약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백수가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 '만약~면 어쩌지?'라는 초대장이 발송되면 결핍들이 좀비처럼 몰려들어 어두운 머릿속에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진다.

   

"이보세요, 레아리. 너는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보험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 너 특별히 잘하는 거 있어? 경제도 몇 년간 안좋다는데 너 괜찮겠어? 오랫동안 돈을 못 벌면 어떡할래? 일도 못 구하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점점 용기를 잃고 우울한 삶의 늪에 빠질 수도 있어. 갑자기 몸까지 아프면 너 어떻게 할 거야? 너 이제 나이도 생각해봐야지."


파티장 무대 위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하나 있다. 그 항아리 안에 욕심과 집착을 넣으면 불안의 연기가 두껍게 피어오르고, 결핍이 이야기를 읊으며 연기 속에서 춤을 준다. 그곳을 빠져나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이건 내가 당장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걱정과 욕망 때문에 돈 버는 방법을 찾고 있던 거였다.



파티는 중단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가장 필요한 시점에 머릿속 알람이 울렸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내 삶의 알고리즘은 구글 AI보다 더 오랫동안 분석하고 정리해둔 방법을 꺼냈다. 20년이 넘도록 해왔으니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또 다른 방법 같은걸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이 많을 때

도대체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단지 그것들을 적어볼 것.


시끄럽게 움직이는 파티 주인공들을 붙잡아

종이나 흰 스크린 위에 내 손으로 데려온 후,

두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맞장구를 쳐본다.


맞아. 난 차가 없어서 한 곳에 나무처럼 서있어야 할 수도 있고, 집이 없어서 밖에서 자야 할 수도 있고, 보험이 없어서 갑자기 몸이 아픈 상황에 당황할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하는 게 하나도 없을 수도 있어. 경제가 어려우니 오랫동안 돈을 벌기 힘들 수도 있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점점 용기를 잃고 우울의 늪에 빠질 수도 있겠지. 나이도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암, 그렇고말고.


갑자기 이 모든 이야기가 코미디로 변해버린다.

파티는 중단되고 불안 연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있다.


마무리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계속 돈과 담백한 사이 유지하기. 그것이 내 마음이 편한 길이다. 마음이 편한 게 가장 중요하다. 관계 맺기. 사람도 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집착하지 않고 담백하게 지내면 더 오랫동안 편안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내 알고리즘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양질의 데이터를 삶에 제공하는 것이다. 적시에 알람을 울려 맞춤형 방법을 제공 받을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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