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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Jul 01. 2019

싱가포르 버스 관찰기

얕은 관찰과 경험을 남겨봅니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싱가포르에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2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한 이동 수단인 버스를 타며 관찰한 점, 느낀 점 몇 가지를 남겨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말레이시아 국경과 인접한 북쪽 끝에서 내가 살고 있는 남쪽 끝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이 작은 나라. 나처럼 눈이 어중간하게 나쁜 사람에게도 안경은 필수다.

라식을 하고 10년쯤 지나자 다시 눈이 조금씩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 생활습관 탓이리라. 그래도 꼭 필요할 때 (회의 때나, 공항에서 게이트 찾을 때 등등)만 안경을 쓰는 ‘시력 취사선택자’ 였는데, 싱가포르에 와서는 거의 안경을 계속 쓰고 다닌다. 이 곳의 표지판에 적혀있는 글씨들은 굉장히 작은 편이다. 버스 정류장에도 전광판은 없고, 버스 정거장 이름도 굉장히 작게 적혀있다. ‘3분 후 버스 도착 예정’ 같은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내가 출근할 때 타는 버스를 비롯한 몇몇 버스에는 현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이 어딘지 알려주는 사인도 전혀 없다.

그 덕분에 버스를 처음 탄 날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도 한~참 가다가 뭔가 이상해서 기사 아저씨께 물어보고 버스를 갈아탔었고,

두 번째 탄 날은 방향은 제대로 탔지만 한 두 정거장 일찍 내렸다. (나는 정말 길치이긴 하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두 번의 시행착오 끝이 알게 되었다. SG Buses 같은 어플을 다운받아 이 모든 정보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을.

금방 적응은 되었지만 처음에는 꽤나 이상하고 어렵게 느껴진 시스템이었다.

글자가 너무 작다. 그래서 안경과 스마트폰은 필수다.


버스에 얽힌 이야기 한 가지 더.

싱가포르의 버스 요금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게 거리 당 요금이 다르다.

3.2km 이내에는 약 0.83 싱달러 (700원 정도, 교통카드 이용 시), 그리고 1km 간격으로 금액이 조금씩 올라간다. 최대 금액은 40km가 넘을 때 2.8 싱달러(원화로 2400원 정도)인데 싱가포르에 살면서 탈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한국에서 으레 하던 것처럼, 내 목적지 바로 전 정거장의 하차 문이 닫히자마자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댔는데.. 계속 화면에 X 표시가 떠서 당황했었다. 미리 찍어두고 멀리 가는 사람을 막기 위함인지, 각 정거장에 진입할 때쯤에만 단말기가 활성화된다.

정거장 표시 사인이 없는 버스가 많은데, 단말기에 보면 아주 작은 글자로 적혀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성격 급한 사람, 저요. X라고 뜨네요..


싱가포르의 버스를 타고 내릴 때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고,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버스는 아무런 미동 없이 서있다.

얼마 전, 휠체어를 탄 한 소년과 어머니가 버스를 타는 것을 보았다. 버스 아저씨가 밖으로 나와 버스 뒷문에 있는 슬로프를 꺼내 주고 휠체어를 끌고 버스에 안전하게 자리한 것 까지 확인을 한 후 다시 앞자리 운전석으로 돌아가 버스 문을 닫고 운행을 하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 때문에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졌지만 불평하거나 인상 쓰는 사람도 없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신호등은 없지만 눈치싸움을 치열하게 해야하는 길이 있다.

마지막으로 뚜벅이의 길 건너는 이야기.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야 할 때가 있다. 보통 이런 길에서는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자동차도, 보행자도 눈치를 보며 길을 지나간다고 해야 할까? 어떤 날에는 그 눈치싸움에서 계속 지다가 결국 아.. 짧은 길에도 신호등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처음 싱가포르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 하나는 길을 걸으며 눈치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 사람이 지나가는 길로 들어오는 차들은 서행을 하고 거의 다 정차했다. (이 곳에서 오래 산 동료의 말에 따르면 그랩 푸드처럼 배달하는 차나 오토바이, 트럭은 꽤나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다들 좌측통행, 우측통행을 하며 열을 맞춰 길을 건넌다. 아무래도 횡단보도가 좁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십몇 년 전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도시, Pau에 처음 갔을 때 신호등이 없는 길을 두리번거리며 건널 때마다 차들이 다 서는 것이 아닌가.

내가 길을 건널 때마다 차도의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하나? 난 진짜 운이 좋다!라고 의기양양했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사람들이 내가 길을 건널 때 정차를 했던 것이었다. 오,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매너가 좋은 걸까?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빠리를 다녀온 반 친구는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성격이 급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것을 떠올리며, 섣불리 판단하지는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면 나를 가장 잘 아는 K는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어허! 안전불감증 레아리. 방심하지 말고 항상 조심하라우. 그래도 안전하고 걷기 좋고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다니 참 기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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