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리 Oct 24. 2019

싱가포르 영어, 싱글리시에 대하여.

밥 먹었어? Makan already?

하루에 두 번 바쁜 마리나 베이 샌즈와는 달라. 하루 종일 바쁜 멀라이언 그대.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할 때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G언니가 입사 초반,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레아, 여기 직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못 알아듣겠어~~~ 영어인데 왜 이렇게 못 알아듣겠지?"
"Don't worry la! 금방 적응할 거예요!"

말레이시아에서 4년, 싱가포르에서 4개월 반을 살면서 나는 이제 싱글리시/맹글리시 패치가 어느 정도 장착된 상태인데,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잉글리시 패치의 버전이 낮아서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던 것 같다.

아, G언니? 그녀 역시 금방 패치 설치를 완료했다.

본론으로 돌아가, 싱글리시의 탄생 배경과 몇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싱글리시의 탄생과 발전>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의 일원이었을 시기이자 영국 식민지였던 1819년부터 1963년. 144년에 거친 이 시기에 영어가 말레이 연방으로 유입되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약 2년 후인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갈등으로 연방을 탈퇴한 싱가포르는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공용어로 ‘영어 사용’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언어란 것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네이티브처럼 사용’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과도기의 과정에서 하이브리드 언어, 즉 싱글리시가 탄생하였다. 싱글리시는 다양한 인종의 단어와 문법이 섞여있는 재미있는 언어이다. 정부에서는 “올바른 영어로 이야기하기 (Speak Good English Campaigns)가 학교, 미디어를 통해 여러 번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그리 효과가 크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이 정설.


싱글리시에는 말레이어, 호키안, 광둥어, 만다린은 물론 게다가 남인도에서 사용하는 타밀어까지 섞여있다.

당연히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한 예로 1991년에 싱가포르를 휩쓴 코미디 랩 Why So Like Dat? 에서 Siva Choy는 이렇게 말한다.

I always give you chocolate, I give you my Tic Tac, but now you got a Kit Kat, you never give me back!

(나는 네게 언제나 초콜릿과 Tic Tac을 나눠줬다네. 하지만 지금은 네가 킷캣(과자 종류)을 가지고 있는데 내게 하나도 주지 않네!)

Oh Why you so like dat ah? Eh why you so like dat?

(오, 넌 진짜 왜 그래? 넌 왜 그러는 거야?)  WHY YOU SO LIKE THAT?  


여기서 WHY YOU SO LIKE THAT? 의 의미를 영어식으로 풀어서 쓰면 “Why are you behaving in this way?” 정도가 되지 않을까?

너 왜 그러냐?!!!



<언제 사용하는가?>


하지만 싱가포리안들이 싱글리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비공식적 자리, 즉 친구와 가족들 혹은 상점 등에서 싱글리시가 많이 쓰인다. 조금 더 캐주얼한 느낌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학교나 회사 (특히 미팅하거나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 외국인과 만났을 때 등은 악센트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언어(?)를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판단되고 교육 수준을 보여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적응이 되면 이렇게 편하고 재미있는 영어가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짬뽕된 영어의 세계는 정말 실용적이고 쉽고 다채롭다. 각 문화의 언어에서 ‘절대 버릴 수 없거나 영어에 없는 표현’들이 남아있는 것이니 색깔이 강하고 표현이 풍성할 수밖에!




<싱글리시 단어, 표현 몇가지>


상황에 따른 몇 가지 표현을 정리해보았다.


- 일할 때 -

상황 1) 일이 너무 많고 힘들 때,

“I want to Vomit Blood.” (피를 토하고 싶다 - 중국식 표현인 것 같다. 이 말을 정말 자주 들었다.)


상황 2) 밥 먹으러 어디 가고 싶어?

Chincai la~ (친차이 라~)” , 뭐든 상관없어~ whatever~라는 뜻.


상황 3) 클라이언트에게 많이 들었던 말.  Die die + 동사   (무조건 해야 한다).

“I die die need quotation by tomorrow. “ 견적서 내일까지 무조건 필요해. (무조건 해!)


상황 4) 예산 짤 때 업체에 급히 견적서를 요청해야 할 경우

Aga aga / Agak agak : 대충~ Roughly의 뜻이다.  

나) I need a cost estimate by in a 2 hours.  

업체) 뭐라고?? Cannot!!   

나) Aga aga is ok. please la~


나) What time shall we meet for drink?

친구) After work.. 7pm agak agak


그 외에도,

Can or cannot?  이 말은 정말 많이 쓰이는 말이다. 돼? 안돼? 의 의미인데 사용되는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Alamak! : (거슬릴 때) 아 쫌!


- 먹을 때 -    

Makan [막깐] ‘(밥) 먹다’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특히 더 많이 들어봤다.

“I'm busy, you all go makan first.!”


Tabao [따빠오] 테이크아웃, to go의 의미.  

“(바쁜 동료를 위해) you want me to Tabao?  밥 사다 줄까?

“Having here or Tabao?”  여기서 드시나요 아니면 테이크아웃하시나요?


Chope :푸트 코드 같은 식당에서 티슈 등을 테이블 위에 놓아 자리를 맡는 것을 의미한다.

식당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는 Chop이라는 어플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 같다.


Kopi / Teh : 커피, 티


- 짧은 단어, 다양한 뉘앙스 -

싱글리시에는 문장 뒤에 붙는 La, Lor, Leh, Lah, Loh~ 등이 자주 붙는다. 이들은 문장 뒷부분에 붙어서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말레이 단어인데 톤에 따라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how are you?라고 묻고 I’m ok라고 대답해보자.

Ok lah (I’m fine)

Ok lor (I think I am fine)

Ok lah! (I’m definitely fine)

Ok meh? (Am I ok? I don’t think so.)

같아 보이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Can 역시, 억양과 뒤에 붙는 단어에 따라 의미가 자유자재로 변화되는 말 중 하나이다.

질문) Can ah? (할 수 있어?)

답변 1) Can la (yes)

답변 2) Can leh (Yes, I think so.)

답변 3) Can lor (Yes, Of course)

답변 4) Can Can (I confirm that I can)


Aiyo  [아요~] 타밀어에서 온 말이며. 아이고~랑 비슷하게 쓰이는 것 같다. 발음도, 쓰이는 상황도 비슷하다.


Wah lao eh [와 라오 에] (Walau : 호키안,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My Father)
"Oh my god" 이건 실제로 억양을 들어봐야 이해한다. 아주 맛깔나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가끔씩 나오는 표현이다.

 

-그 외 재미있는 표현들-

Ang Moh [앙모] (호키안 뜻으로 빨간 머리카락 / 백인을 의미한다) 2016년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싱글리시 단어 19개가 등재되었는데, 그 중 한 단어이기도 하다.


Bojio 
처음 듣고 꽤 신기했던 표현이다. 호키안으로 "Bo"는 영어로 No라는 뜻이고, "Jio"는 "Invite"라는 뜻이다. 즉 "not invited, 초대되지 않은"이라는 뜻.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쓰인다.

 "Why you go Merlion and Bojio Me?" 멀라이언상 갔는데 나는 왜 안 초대했어?
그런데, 이 말이 상대에게 따지는 의미가 아니라 '좋겠다~'와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는 것 같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Bojio~라는 말을 쓰는 걸 보고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내가 왜 널 초대해야 하지..?), 나중에는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정말 서운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Close the light

불을 닫아라? , 불을 꺼라는 말이며 중국식 표현을 직역한 문장이다. 이 말도 회의실에서 참 많이 들었다.

Can you on the fan?     OK Lah!
선풍기 켜달라는 말이다. 동사를 생략할 때도 있다.

Can you off the aircon?      Don’t want la! too hot.
물론, 주어를 생략해서 말하기도 한다.


Don’t play play  
90년대 시트콤에 나왔던 표현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지 좀 마.” 정도의 의미미를 지닌다. 보통 뒤에 La~를 붙여서 쓴다.

Uncle : 삼촌도 엉클, 저기 길 가는 아저씨도 엉클이다.
Auntie : 이모, 고모도 언티, 저기 길 가는 아줌마도 언티이다.



-퀴즈!, 무슨 뜻일까요?-

1. Want to go out. Can or not?


2. Want to go out. Want or don’t want?


3. See How  


4. Same Same la


[정답]
1. 밖에 나가고 싶어. 너도 갈 수 있어 아니면 안 돼?
2. 밖에 나가고 싶어. 갈래 말래?
3. 어떻게 될지 보자. (We see how la-라고도 자주 쓰이며 영어로 We'll see의 의미이다.)
4. 그게 그거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와서 이런 염려를 이야기한다.  
"내 영어, 여기에 있으면서 더 이상해졌어. 영어를 매일 쓰는데 왜 전보다 더 못하는 기분이지?"

발리를 여행할 때 택시기사와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혹시 싱가포르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흥, 내 악센트 때문이겠지!)
"레아는 말레이시아에 10년 넘게 산 것처럼 영어를 잘하네" (흥, 말레이시아 영어라는 말이겠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 나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아마 이 곳을 떠나기 전까지 난 싱글리시/맹글리시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염려를 표하는 저 분들 역시- 싱글리시/맹글리시를 여전히 쓰면서 잘 지내고 있다.

재미있고 유별난 언어에 대한 애정으로 쓰는 이 글은, 아래의 두가지 경고를 남기며 마무리해볼까 한다.
 

#1.
어느 순간 이런 증상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정작 "네이티브 외국인"을 만나면 다시 '영어는 역시 어려워..' 모드로 변신.
나 역시 앓고 있는 고질적인 증상이기도 하다.  
 
#2
악센트가 촌스러운 듯 하나 리듬감 있고,
알아듣기 힘들다 싶다가도 적응되면 귀에 한국말인양 쏙쏙 들어오고,
쉽고 재밌는 표현들도 참 많아서
방심하면 어느 순간 입에 착 붙어버리니 정말 정말 조심하시길.



사진출처: 픽사 베이

예시 출처:
- 회사 동료들
- https://www.locomole.com/stories/20-singlish-phrases-useful-for-your-travel/#gref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포르는 정말 깨끗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