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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Nov 12. 2019

우울할 때도 있거든요.

알아요.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한다는 걸. 

지난 주말은 오래간만에 집에 일을 가지고 온 날이었다.
금요일 퇴근 전, 굳이 돌돌 감긴 노트북 충전기 선을 풀어 어댑터와 노트북을 백팩에 넣어왔던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콘센트에 노트북 충전기를 꽂았다. 침대 바로 옆에 놓인 사각형의 차가운 은색 물건은 그 존재만으로도 신경이 쓰였다. 할 일은 많고 그 생각에 사로잡힌 느낌이었으나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한쪽을 꾹 누르면 반대쪽이 솟아오르기 마련. 침대에 누워 제주행 항공권을 끊었고, 프로젝트 후 떠날 내 연말 휴가 생각만 더 커져만 간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예전만큼 인스타그램을 많이 보지 않지만 하루에 한두 번은 앱을 열어보곤 한다. 과거에 다른 소셜미디어도 그랬듯이 이제 조금씩 관심에서 멀어질 뿐이다. 손가락으로 스르륵 내려가며 톡톡 탭을 해 하트를 눌렀다. 조금 보다가 금방 껐는데, 문득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먼 곳에서, 내 공간도 아닌 다른 가족의 방 한 구석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같은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러나 월세는 100만 원도 넘는다는 팩트가 그 날 나의 우울감을 한층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주말 당일에는 느끼지 못했다. 
월요일이 되고, 또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나 어제 조금 울적했구나.
그 이유는 바로 '정확히 무엇을, 언제, 몇 시간 동안 할지 생각도 안 하고 노트북만 가지고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불안함' 그리고 '갑자기 훅 다가온, 다들 가지고 있는 자기의 공간이 나만(?)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 (누가 억지로 싱가포르에 보냈냐, 네가 스스로 와놓고. 회사에서도 가깝고, 집주인도 좋고, 메이드가 있어 청소랑 빨래를 안 해도 되는 집을 구했다고 엄청 좋아했으면서) 그리고, '많이 먹어 배부르다는 이유로 주말에 요가를 안 갔던 후회감' 등의 결합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체 없는 우울함의 원인을 알고 나니 참 별것도 아니고, 괜히 멀리서 내 심술을 받아준 K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물론 완전히 평온하지는 않다.)
역시 모든 것은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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