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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Mar 10. 2020

치앙마이 일상: 미세먼지, 해킹, 미뤄둔 일 처리

약 일년 전, 치앙마이에서 쓴 일기 (20190320)

#미세먼지

이틀 전, 유난히 흰색 나방 떼가 많이 날아다녔고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덥고 텁텁한 기운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평소에 걸어 다니던 길에 서있는 나무 저 위에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기묘한 진동까지 동반하고 있어 주변을 지나가면 공기 중으로 퍼지는 약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별로 밝지도 않은 가로등은 물론, 편의점과 상점을 밝히는 전등 아래에는 새하얗게 나방이 날아다녔다. 삼십 분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오니 흰색 나방 세 마리가 전등 밑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창문에도 검은색 벌레들이 붙어있었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네이버와 구글에서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습하면 벌레가 많이 생긴다는 답변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서 창밖을 바라보니 볕 한줄기가 보였다. 두꺼운 회색빛의 하늘만 보다가 볕을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낮이 되자 날씨가 더 좋아졌다. 

물론, 어플에 표시된 미세먼지 지수는 160대. 그래도 그게 어디랴. 200, 300, 400대 숫자를 보다 160대의 숫자를 보니 (그래도 Unhealthy라고 표시되긴 하지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숫자도 숫자지만 내 몸이 느끼는 공기가 확실히 달랐다. 여전히 덥지만, 텁텁함은 사라졌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고 하얀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열흘째 최악의 미세먼지 (세계 1등이라는...) 후 처음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신기하게도 전날 밤 보이던 벌레떼가 확연하게 사라졌다.


오늘은 날씨가 조금 더 좋아졌다. 확실히 마스크 쓴 사람의 수도 줄어들었고, 공기가 "맑다"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여행을 하거나 돌아다니기에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미세먼지 지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점점 더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주말에 도이수텝에 가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 

예전에는 어떤 것의 소중함을 모를 때 다들 '공기' 비유를 많이 했다.

"공기처럼 눈에 안보이니 소중한 줄을 모르지. 으이구 " 

이제는 그 비유가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 공기는 너무 중요하다. 맑은 공기는 정말 정말 소중하다. 우리의 생활패턴, 기분, 건강까지-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치앙마이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받을 때에도 '그나마' 미세먼지 지수가 가장 낮은 곳은 바로 올드타운 안이다. 아무래도 그 면적에 비해 자동차 수가 적고, 올드타운을 감싸고 있는 해자에서 분수가 나오기도 하고, 또 타페 게이트 광장에서는 물도 뿌려주고 (즉, 시에서 <특별 관리>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아이패드 해킹

아이패드에 Apple ID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알림이 뜨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더니

갑자기 아이폰이 "띠딩" 하면서 경고 알림이 하나 왔다.

누군가 내 Apple 계정에 접속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 알림이 '방콕'에서 잡혔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생각해봤더니 어제 넷플릭스를 재가입했다. 넷플릭스 (구)비밀번호는 애플 계정 비번과 동일했기 때문에 혹시 그걸로 접속 시도를 하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깜짝 놀라서 Apple계정, Gmail 비밀번호를 다 바꾸고 혹시나 해서 은행 잔금까지 확인했다. 그 후, 다시 아이패드에 새로운 Apple 비밀번호를 입력하는데, 또 아이폰에 알림이 온다. 

방콕에서 누군가가 내 계정에 접속한다는 경고 알림.

정말 소름 돋는 일이었다. 1분 전에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방콕에서 내 계정에 접속 시도를 하다니. 부랴부랴 한 번 더 비밀번호를 싹 바꾸고, 다시 아이패드로 새로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데...

아이폰이 "띠딩" 울린다. 메시지를 잘 읽어보니 방콕에서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계정에 접속 시도를 한다는....

혹시나.... 싶어서 캔슬 후, 아이패드로 다시 아이클라우드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같은 메시지가 또 오는 게 아닌가. 서너 번쯤 테스트를 해보니, 아무래도 내 아이패드 지리가 방콕으로 인식이 되어서 (도대체 왜?) 그랬던 것 같다.

아,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아이클라우드에 있는 사진과 메모 등등을 누군가가 다 가져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넷플릭스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처음 신청했을 때 그 편리함과 유용함에 감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의지하다가 그 존재를 까먹는다. 그러다 어떤 일이 터지면, 부랴부랴 외양간을 고치려고, 아니 외양간이 어디에 있더라...부터 생각하는 것 같다. (검색해보니 넷플릭스도 해킹이 어마어마하게 빈번하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정말.



#미루던 일 하나씩 해보기

항상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바보 같았던 아이패드의 잘못된 위치 인식으로 인하여- 미뤘던 일 몇 가지를 했다. 

일단, K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에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컴퓨터를 사용한 지 4년 가까이 되었는데.. 백신 하나 깔려있지 않았다는.....) 그리고 악성코드 여러 개를 제거했다.

그리고 2013년 동안 동일했던 Gmail 비밀번호를 변경했고,

은행과 통신사에 연락을 해서 알아야 했지만 미뤄뒀던 정보들도 얻었다. 

또, 작년부터 조금 찢어진 원피스도....(입고 다니긴 했지만) 이 참에 꿰맸다. 

엉성한 바느질이지만 대놓고 찢어진 건 고쳤으니 그걸로 됐다..


금방 끝낼 수 있는 작은 것들인데, 또 이렇게 미루고 미루고... 참 오래도 미뤘는데, 또 이런 계기로 해치우기도 한다. 흩어진 외양간들을 찾아 부서진 곳을 조금씩 손 본 느낌이다. 

이 시대의 외양간들이 부서지기 전에 두 번 세 번 미리미리 잘 관리하자, 는 교훈을 얻은 날이다.
국경을 제멋대로 넘나들며 활개 치는 외양간 도둑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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