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해줄 수 있어? 아니오.
'다음 담당자 오기 전까지 그때까지만 잠시만이에요. 다음 런칭 때 R&R 조정해주셔야 해요 ‘라고 수락했지만 어느새 그 일은 나만 챙기는 경험 있으신가요.
이런 일은 사회 초년생이든 새롭게 업무에 조인하신 분이든 혹은 최근에 팀에 공석이 있는 어떤 상황이든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경계의 무너짐은 대부분 거절하지 못하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방 입장에서는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이자, 선을 긋는 선언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단호하게 말하지 않고 애매하게 웃으며 받아주거나 '이번만입니다'라고 기한 없이 조건부로 수락하게 되면 그 이번이 계속 반복이 됩니다.
안된다고,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늘 어렵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지 않으면 더 어려운 상황이 생깁니다. 답답하다고 급하다고 매번 나서서 해결하게 된다면 애석하게도 '그래도 되나 보다' 생각하는 곳이 사회입니다. 그러나 늘 방어적일 수는 없겠죠.
거절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세 가지를 체크해 봅니다.
이 업무가 왜 시작되었는가?
원래 이 일을 맡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관여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왜 시작되었을까요. 갑자기 전사 관점에서 큰 프로젝트를 다 같이 진행해야 하는 경우나, 외부 환경으로 인해 모두가 달려들어서 해결해야 하는 소위말해 회사에서의 긴급상황이라면 '내 일, 네 일' 나누지 않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럴 때에 책임감을 임해서 업무를 진행한다면 팀원 간 전우애와 추억이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추후에 히스토리를 확인해야 한다거나, 혹시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에 'ㅁㅁ님이 00 요청을 ㅇㅇ한 배경으로 말씀 주셔서 진행합니다'라는 업무적으로의 범위를 글로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 내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증거를 남기는 뉘앙스보다는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참조의 개념으로서 접근합니다.
여기에서의 긴급상황은 런칭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빈 틈이 보였다거나, 발주의 실수가 있었다거나, 혹은 대외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슈사항이 생긴 때로 갑작스레 생각지도 못한 인재가 발생한 그런 상황으로 한정합니다. 매번 급하다고 하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일에 발이 달린 것처럼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마치 원래부터 내 일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팀원이 갑작스레 퇴사했다거나, 혹은 누군가의 역량 부족으로 대신 PM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이런 경우에는 개인 1인의 역량을 1인이 1인분을 못해서 내 일의 양이 늘어난 상황이지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칼로 무 자르듯 ‘나는 n시간만큼 일을 더 했으니까! 보상해 줘!’라는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네가 퇴사한다면? 네가 실수한 경우엔? 그런 상황이 절대 없을 것 같나요? 하고 반문한다면 마땅한 논리가 없기도 하지요.
이럴 때에는 약간의 인간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회사나 상사의 탓이 아닌 '나의 역량 부족'이라고 딱 잘라 말하되,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진행된다면 하기 어렵다고 말씀을 전달하세요. 포인트는 나를 낮추어 '그건 저의 역량 밖입니다'라고 표현하면서 그 사람과 상황에 대한 공감은 충분히 한다는 약간의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단기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약속을 받아내 대화한 내용을 반드시 글(서면)로서 조건과 그에 응하는 나의 보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명문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ㅇㅇ님 오늘 이야기주신 내용 감사합니다. 00에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그전까지 업무에 집중하겠습니다'처럼 하는 거죠.
내가 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부터는 시간 관리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에너지를 배분해야 하고 나에게 우선순위 있는 내용부터 집중합니다. '그거 못해요'가 아니라, '지금은 할 수 없어요'로요.
여기서 “언제까지 공유드려야 할까요?"는 바로 당장의 거절의 NO의 의미라기보단 시간이 가능하다면 검토해 보겠다는 의미에 가깝기에 상대도 바로 거절받기보단 호의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지금은 저 포함 팀 리소스가 없기도 해서 00 이후부터 가능하고, 일정이 빠듯하시다면 참고하실 수 있는 자료를 먼저 공유드릴게요.”로 하며 우회한 거절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조율은 빠를수록 좋고 정확할수록 좋습니다.
일을 지속해서 하는 것도 러닝처럼 우리 저마다의 속도가 다릅니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나의 페이스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어려우면 어렵다 힘들면 힘들다고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하기 싫으면 싫다고도 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잘요.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면 내가 3인분을 하든 당연하게 느끼십니다. 그러니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다면 내가 실질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부족과 겸손을 포함해 완곡하게 거절의 의미를 내포해 봅니다. 결국 기대치 조율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역량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시작하는 것이 나도 부담이 덜하고 상대도 스스로의 드라마를 먼저 없애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기대를 바라지 않고 일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하고도 핀잔받는 상황은 피해야 마음 다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느니 그냥 하고 말겠다고요? 인사고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고요? 그런 줄 알았는데 결국 ‘이건 못한다’ (본인이 잘하는 거만) ‘잘해보겠다. 바쁘다 시간 없다.’ 말한 친구가 먼저 승진했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오늘 글의 대문사진 가지요리가 힌트인데요. 일 시키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러니 해야 할 때는 하되, 회사에서 거절 안 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나이기에 경계와 기대치를 조율해 보세요!
처음에만 어려워요.
오늘의 요약
1. ‘잠시만요’로 시작된 일이 끝내 내 일이 되는 건 대부분 거절하지 못한 순간에서 비롯된다
2. 긴급 상황이라면 함께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록과 조건을 남겨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3. 거절은 “못해요”가 아니라 “언제까지 가능해요” 같은 시간·조건 조율로 우회할 수 있다
4. 결국 핵심은 기대치 조율이었다
5. 굳이 내 역량을 높일 필요는 없다. 낮게 시작해야 오래 달릴 수 있고 마음도 덜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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