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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7. 2022

[그때 그 노래] #4

올해 크리스마스엔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크리스마스. 누구에게는 가슴 설레는 특별한 날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을 휴일이다. 하지만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만들고 부른 Last Christmas의 주인공에게 크리스마스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밝고 행복하게 노래하는 대부분의 캐럴과 달리 이 노래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어, 한창 젊은 조지 마이클이 청량한 보컬로 성탄절의 아픈 상처를 경쾌한 리듬에 실어 부르면 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8gmARGvPlI


작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어요(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당신은 그걸 내버렸죠(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올해는 눈물 흘리지 않을 거예요(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내 마음을 다른 특별한 사람에게 줄 거니까요(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노래 전체에 반복해서 나오는 후렴구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요즘 말로 ‘오늘부터 1일’이 된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날 주인공의 마음을 헌신짝처럼 내버린(gave it away) 여자에 대한 다짐이다. 셋째 줄의 ‘to save me from tears’를 ‘나를 눈물에서 구하기 위해’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색하다. 여기서 save는 from 다음에 오는 ‘힘들거나 불쾌한 일을 피하게 한다,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 이에 더해 from 다음에는 명사나 동명사가 온다는 것까지 알아두면 좋다. 이제 노래에 담긴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년 전, 그리고 1년 후


작년 크리스마스가 악몽이 되었을 청년은 1년이 지나 또다시 친구들과 파티를 열고 있다. 개에 한 번 물려본 사람은 그 후로 개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지듯(Once bitten and twice shy), 작년에 크게 상처를 받고 난 뒤로는 마음을 여는 일에 두 배로 조심스러워진 상태. 공교롭게도 파티장 안에는 1년 전 그녀도 와 있다. 남자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녀를 바라본다(I keep my distance). 이런, 여전히 그녀는 매력적이다(you still catch my eye). 


나를 알아보기나 할까(Do you recognize me?). 그녀는 별 반응이 없는 모양. 1년이나 지났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Well, it's been a year, it doesn't surprise me). 진심을 담은 쪽지와 함께(With a note saying, "I love you") 포장지에 곱게 싸 보낸 선물을 받고도 (I wrapped it up and sent it) 다음날 바로 자신을 버린, 얼음같이 차가운 영혼(soul of ice)의 그녀. 그때 그의 고백은 진심이었다(I meant it). 그녀야말로 믿고 의지할 상대라고 생각했는데(I thought you were someone to rely on), 그녀에게 그는 그냥 기대어 울 어깨(Me? I guess I was a shoulder to cry on)일 뿐이었나? 그녀는 그에게 잠깐 위로를 받고는 다음날 떠나버렸다. 남자는 자신이 정말 바보였다고 한탄한다(Now I know what a fool I've been).


밤이 깊어 친구들은 모두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데(a crowded room, friends with tired eyes) 주인공은 여전히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I’m hiding from you). 그녀가 지금 입맞춤을 해 준다면, 어쩐지 다 잊고 다시 시작할 것만 같다(if you kissed me now, I know you’d fool me again). 안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찢어 놓은 장본인이 아닌가(you tore me apart). 지금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Now I’ve found a real love).  1년 전 그때처럼 그녀가 자신을 또다시 바보로 만들 일은 없을 거라고 열심히 되뇌어 보지만(you’ll never fool me again)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진짜 찾았는지 아니면 찾은 척하는 것인지 조금 헛갈릴 만큼 '이제 당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주겠다'라고 다짐하는 말을 자기 세뇌처럼 반복하다가 노래의 말미에 그는 돌연 내년을 기약한다(Maybe next year,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내년에야말로 그녀에게서 벗어나 진짜 사랑을 찾겠노라고. 그리고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So long!).


조지 마이클과 크리스마스


사진: Faith 뮤직비디오 캡처

가죽점퍼에 찢어진 청바지, 검은 선글라스, 웨스턴 스타일 부츠를 신고 기타를 멘 채 몸을 흔들며 또 다른 명곡 Faith를 힘 안 들이고 맛깔나게 부르는 20대의 조지 마이클을 보면, 빛나는 젊음과 재능이란 저런 것이지 싶다. 서른이 되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선배 가수 엘튼 존과 함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열창하는 그의 콘서트 뮤직비디오를 보면 왠지 뭉클한 감동까지 느껴진다. 동시에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좀 더 오래 마음껏 꽃 피우지 못한 그의 짧은 인생이 안타깝기도 하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 Careless Whisper, Kissing A Fool, One More Try, Jesus To A Child 등, 당시 대중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노래들이지만 그의 목소리와 에너지로 표현되지 않았으면 그만큼 히트를 칠 수 없었을 개성적인 명곡들이 모두 그의 20대와 30대에 발표된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이후로 크고 작은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소니뮤직과의 소송도 5년을 끌었으며, 약물 중독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1984년 스물한 살의 어느 일요일, 왬(Wham!)의 멤버였던 친구 앤드루 리즐리(Andrew Ridgeley)와 함께 자신의 부모님 집에 방문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던 중 불과 한 시간 만에 Last Christmas의 후렴구를 뚝딱 완성했다는 조지는 2016년 크리스마스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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