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Feb 27. 2022

[그때 그 노래] #5

혁명을 기원해 I pray for a revolution

혁명?!


‘4 Non Blondes’의 린다 페리(Linda Perry)가 시원스럽게 부른 ‘What’s Up.’ 오래전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 ‘revolution(혁명)’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와 조금 놀랐다. 팝송 가사에 이런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한 사이에 가벼운 인사처럼 쓰이는 ‘What’s up?’이 제목인 것으로 보아, 정치적인 혁명보다는 일상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내용일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XnxTNIWkc


스물다섯 살, 내 인생은 여전히(25 years and my life is still)
거대한 희망의 언덕을 애쓰며 오르고 있어(Trying to get up that great big hill of hope) 
목적지를 향해서 말이야(For a destination)


가사와는 달리, 당시 린다는 24세였다. 발음상 twenty four보다 twenty five가 더 좋게 들려서 25세라고 했다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린다는 노래를 만들 때 작사를 쓰면서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흥얼거리면서 곡을 완성해간다고 한다. 밴드의 베이시스트 크리스타 힐하우스(Christa Hillhouse)의 집에 얹혀살던 어느 날도 그렇게 이 노래를 흥얼대며 만들기 시작했는데, 옆방에서 크리스타가 뛰어나와 “무슨 노래야? 그거 좋다!” 하고 외쳤다. 이 노래는 그렇게 30분 만에 완성되었다.


밴드 이름인 ‘4 Non Blondes’는 ‘금발이 아닌 네 명’ 또는 ‘금발이 아닌 이들을 위하여(For ~)’라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멤버들이 피자를 먹고 있을 때 금발 머리 일가족이 옆을 지나갔다. 그중 어린 꼬마가 새들에게 주겠다고 누가 먹다 남긴 피자 조각을 집으려 하자 “만지지 마! 여기 사람들이 먹던 거라 더러워!”라며 급히 말린 부모는 마침 그 옆에 있던 네 사람을 흘겨보면서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날로 멤버들은 밴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What’s going on?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난 금방 깨달았지(And I realized quickly when I knew I should)
이 세상은 ‘형제애’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That the world was made up of this brotherhood of man)
그게 무슨 뜻이든지 간에 말이야(For whatever that means)


지독한 가난, 자퇴, 가출, 약물 중독으로 얼룩진 고단한 삶을 산 린다는 동성애자이기도 했다. 20대 초반, 가난한 성 소수자로서 힘겹게 희망의 언덕을 오르던 그녀가 기존의 세상 질서와 ‘금발’로 상징되는 기득권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면, ‘this brotherhood of man’이라는 구절을 가볍게 넣었을 리 없다. 과거에는 ‘man’이 남녀 통틀어 ‘사람’을 대표했지만, 여기서 ‘this brotherhood of man’은 다음 줄의 ‘For whatever that means(그게 무슨 뜻이든 간에 말이야)’와 어울려 남성 중심의 기존 체제에 대한 20대 비주류 여성의 반감 또는 비아냥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난 가끔 침대에 누워서 울어(And so I cry sometimes when I'm lying in bed)
머릿속에 있는 걸 다 쏟아내 버리려고(Just to get it all out what's in my head)
그러면 조금 묘한 느낌이 들지(And I, I'm feeling a little peculiar)
아침에 일어나(And so I wake in the morning)
밖으로 나가(And I step outside)
숨을 깊이 들이마셔(And I take a deep breath) 
그러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And I get real high)
그러곤 목이 터져라 크게 소리를 지르지(And I scream from the top of my lungs)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What’s going on?)


곡명인 ‘What’s up?’은 노래 가사 중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What’s going on?’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What’s going on?’이라는 노래가 이미 있어서 제목을 다르게 붙였다고 한다.


‘What’s up?’이나 ‘What’s going on?’은 맥락에 따라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들이다. 친한 동네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 말을 했다면 그야말로 ‘안녕?/별일 없냐?’란 의미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거나, 집에 돌아와 보니 식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면 ‘무슨 일이야?/무슨 일 있어?/왜 그래?’가 된다.


이 노래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서 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안부를 묻는 것일까? 아니면 ‘대체 이놈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What the f*** is going on?)’고 묻는 것일까? 어떤 의미이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계속 서로에게 혹은 세상에 던지는 관여의 질문임은 분명하다. 린다가 24세였던 그 해 1992년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렇다.  


헤이 헤이 헤이 헤이


그러고는 ‘헤이(Hey)’가 반복해서 나온다. 허밍 같은 ‘오(Ooh)~’도 이어진다(And I say, hey hey hey hey / I said hey, what's going on? / Ooh, ooh ooh).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함께 부르다 보면 주인공의 현재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로 공감될 때가 있는 것처럼.


난 노력해, 그래, 정말로 노력한다고(And I try, oh my god do I try)
늘 노력하지, 이런 관습과 제도로 이루어진 세상에서(I try all the time, in this institution)
그리고 기도해, 그래, 정말로 기도해(And I pray, oh my god do I pray)
매일매일 기도한다고(I pray every single day)
혁명이 일어나라고(For a revolution)


혁명! 드디어 나왔다. 주인공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기를(또는 혁명을 일으키기를)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혁명은 정치적·사회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지만, 개인의 내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린다는 그 둘 다를 원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oh my god do I try’와 ‘oh my god do I pray’를 ‘오 하느님, 난 노력/기도하나요?’처럼 해석하지 말고 정말로 노력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하자. ‘Oh my god’ 자체가 감탄사 역할을 하고 있고, ‘do’도 ‘try’와 ‘pray’를 강조하기 위해 쓰였는데, 이 ‘do’가 앞의 ‘oh my god’ 때문에, 또는 발음상의 문제로 의문문처럼 ‘I’ 앞으로 나왔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굳이 표현하자면, 오래전 배웠던 바로 그 ‘도치 구문’이다). 


아름다운 우리


1989년에 결성된 ‘4 Non Blondes’는 불과 5년 만에 해체되었다. ‘What’s Up?’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난 뒤이다. 밴드의 주역이었던 린다는 솔로로 활동하다가 작곡가 겸 프로듀서가 되어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을 여럿 만들어냈다. 그녀가 만들고 미모의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Maria Aguilera)가 불러서 2002년에 발매한 ‘Beautiful’은 사회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로하고 자존감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명곡으로 널리 사랑받은 곡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단순한 노래 이상의 구원이었는지, 이 노래의 뮤비에 달린 댓글 가운데에는 ‘크리스티나가 이 노래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는지 본인은 모를 것’이라는 감사의 글들이 꽤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매일의 일상을 보내다가도 가끔 숨쉬기가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질 때, ‘Beautiful’의 주인공은 이렇게 되뇐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나는 아름답다. 남들의 말은 날 절망에 빠뜨릴 수 없어. 나는 모든 면이 다 아름다운 사람이야(I am beautiful in every single way).’ 가사는 ‘아름다운 나’에서 ‘아름다운 너’로,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우리’로 확장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AfyFTzZDMM


우리가 무얼 하든(No matter what we do)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No matter what we say)
우리는 선율 속에 담긴, 아름다운 실수로 가득한 노래야(We're the song inside the tune / Full of beautiful mistakes)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And everywhere we go)
태양은 늘 빛날 거야(The sun will always shine)
우린 어쩜 내일이면 건너편에서 잠을 깰지도 몰라(And tomorrow we might wake on the other side)
왜냐하면,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린 아름다우니까('Cause we are beautiful no matter what they say) 


여전히, 언덕을 오르는 중


린다의 ‘What’s Up’은 2005년에 코믹 버전으로 패러디되어 크게 유행하면서 밈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우리말 버전을 포함한 다른 코믹 버전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패러디된 버전이 원곡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는 젊은이들이 많다. ‘우주 왕자 히맨(He-man)’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활용해서 이 노래를 디스코 리듬으로 바꿔 입힌 영상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른바 ‘병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스물넷, 가진 것 없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미래도 불투명해서 있는 힘껏 소리나 지르면서 버티던 비주류 여성이 마침내 인생의 히트곡을 만든 데 그치지 않고 유명 가수들의 영혼까지 치유하는 명곡을 창작하는 뛰어난 음악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50대의 린다는 어느 인터뷰에서 55세인 지금도 여전히 목적지를 향해 그 ‘커다란 언덕’을 오르고 있으며, 그건 65세, 75세, 85세, 95세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한다. 일의 성공과 경력의 최고 단계를 10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이제 3단계쯤 와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덧붙인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당연시한 적이 없고, 이만하면 됐다고 느껴지지도 않아서 늘 싸우고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뭔가 더 해내려고,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다. 작업에 임할 때는 오로지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고 요점만 투명하게 말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으로 통하는 것 같다는 그녀. 린다가 앞으로 계속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서 세상에 전할 선한 영향력이 기대된다.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매거진의 이전글 [꼭 뭐가 되어야 할까?]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