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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03. 2022

[꼭 뭐가 되어야 할까?] #6

취미의 발견 1: 그림 그리며 사람 만나는 즐거움

평일엔 이런저런 글을 쓰고, 주말엔 커피 내리고, 그래도 남는 시간이 너무 무료할 때는 그림을 그린다.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던 책 읽기와 글쓰기가 생업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무재주에 무취미였던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3년쯤 전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 수도권의 한 도시로 이사를 오고 나니 서울 출입이 큰 마음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나가 볼 일을 몰아 보고 들어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지냈다. 다행히 IT 강국의 위상은 그럭저럭 이런 생활 패턴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보태니컬 아트로 시작한 생애 첫 취미, 그림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시에서 운영하는 예술아카데미를 발견하곤 관심 있는 강좌를 찾아 듣게 되었는데, 그 시작이 ‘보태니컬 아트’라고 식물 정밀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72색이나 되는 고급 색연필도 호기롭게 구입하고, 그래 봤자 종이 주제에 겁나 비싼 종이도 사서 전문 강사의 지도 편달 아래 일주일에 한 번씩 식물 정밀화를 그렸다. 4B 연필로 선 긋기부터 시작해 중학교 미술 시간에 분명 배우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석고 원기둥과 구(球), 뿔 달린 삼각형 등등도 그려보고, 나뭇잎과 꽃송이를 스케치하는 것까지 속성으로 훑은 다음 궁극의 목표였던 식물 채색화로 들어갔다.


비록 남이 그린 그림을 보고 모사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일 년 만에 예술아카데미 정기 과제전에 작품을 두 점 전시하며 꽤 재미를 붙여갈 무렵,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19라는 역병이 시작되었다. 한두 달이면 가라앉겠지, 여름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 하며 개강은 자꾸 미뤄졌고, 결국 예술아카데미 측에서 선납한 등록금을 반환해주는 것으로 보태니컬 아트 강좌와의 인연은 일단 종료되었다.


‘이왕지사 큰맘 먹고 구비한 화구도 있겠다 얼추 기본기는 배웠으니 집에서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그려보지, 뭐!’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이러다가 72색 전문가용 색연필은 끝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겠구나 싶을 무렵 지인이 화실을 열었다. 일명 ‘놀방 화실’. 영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역병의 시대, 만날 사람은 만나고 살자며 노는 방 하나를 열어 그림 그리며 수다도 떨고, 시간 남으면 보드게임이나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순도 100% 사적 모임이었다. 


허구한 날 하늘하늘 한 나뭇잎과 꽃잎만 그리다가 놀방 화실에서는 강아지도 그리고, 소도 그리고, 말도 그렸다. 그 하늘하늘한 나뭇잎과 꽃잎을 세밀하게 그리기에 최적화된 수채 색연필로 한 겹 한 겹 선을 쌓아 면을 표현하는 대신 난생처음 써보는 오일파스텔과 아크릴 물감으로 과감한 무게감을 표현해보기도 했다. 물론 미술 전공자였던 지인의 노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그림이 제법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대로 나오는 날이면 내 소명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던가 하며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가 또 내 눈에도 영 어색한 그림이 그려진 날엔 역시 하던 일이나 잘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또 안 되는대로 늘 즐거운 시간이었다.


취미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함께라서 즐거웠다


역시 취미는 이래서 좋은 거구나 싶었다. 꼭 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해서 딱히 뭘 이룰 것도 아니니 이렇게 마냥 즐거울 수밖에! 그러나 이 즐거움의 이유는 정작 그림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에 있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역병은 그 전파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해졌고, 그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대책 강화로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사적 모임을 갖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즈음, 멤버들의 이런저런 사정까지 겹쳐 놀방 화실은 현재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더는 함께 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지만 시절이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역병 탓에 집에 있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역병 탓에 함께 할 도리는 없어진 이 야속한 시절을 건너며, 이젠 정말 혼자라도 해보자 마음먹었을 무렵 천운처럼 내게도 ‘슬세권’ 친구들이 생겼다.


슬리퍼 신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들, 심지어 그림에 꽤나 진심이다. 이 모임도 다소 엄격한 미술 전공자가 주 1회의 만남을 주동하고 있다 보니 그림을 핑계로 적당히 수다나 떨다가 갈 생각은 언감생심이다. 이러다가 우리 중에 누구 하나 뒤늦게 미대 가겠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하지만 알아서들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이젤도 구입하고, 야금야금 장비 욕심도 부리는 걸 보면 함께 하는 것도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혼자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시간이 남아돌아도 그림 한 장 그리는 게 그렇게 어렵더니 다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함께 그림 그릴 슬세권 친구들이 생기고 난 요즘은 혼자서도 종종 그림을 그리게 된다. 생각해보니 놀방 화실 시절에도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숙제처럼 집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나이 들수록 필요한 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친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데에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지닌 태생적 취약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배웠다. 인간을 위협할 가공할 능력을 지닌 동물의 습격을 피하는 것도,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식량을 구비하는 것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기에 가성비 차원에서 무리를 짓고, 집단을 형성하고, 사회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생태학적으로는 퍽 일리 있는 가설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그러 그러한 연유로 구성한 이 사회집단을 이 긴긴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단 한 번도 파괴하지 않고(다만 자기 집단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파괴 혹은 위협했을 뿐) 유지한 것은 함께 하는 즐거움, 혼자라는 무미함 혹은 그 처절한 고독감을 일찌감치 알아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번 주도 이변이 없는 한 나는 슬세권 친구들을 만나 그림을 그릴 것이다. 누군가는 좀 더 고급 진 오일파스텔이 필요하다며 아마추어다운 장비 탓을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화지(畵紙)가 너무 커서 비율이 안 맞는다는 엉뚱한 핑계를 대며 툴툴 댈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일파스텔이 너무 지겨우니 이젠 다른 재료를 시작해봐야겠다며 큰 소리를 치겠지. 그러면 ‘다소 엄격한’ 우리 모임의 주동자인 미술 전공자가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그리던 그림은 완성하라며 독려할 것이다. 결국 그림보다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함께 한 그 시간들과 그 시간 안에서 오고 간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2년이 넘도록 끝을 예고하지 않고 있는 이 역병이 그래도 고마운 건 함께 하는 즐거움, 함께 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를 절실히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지난 2년 사이 우리가 특별한 이해관계없이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 줌으로써 진짜 친구를 골라 준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친구가 꼭 필요한 이유를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시뉴스 필진 정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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