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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08. 2022

[그때 그 노래] #7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곳으로!

노란 벽돌길이여 안녕 


불후의 명가수 엘튼 존(Elton John)이 1973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발표한 ‘Goodbye Yellow Brick Road.’ 노래는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여운은 길고 강렬하여, 주인공이 ‘yellow brick road’를 떠나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을지 궁금해진다.


 노래의 제목이면서 후렴에 계속 등장하는 ‘yellow brick road’ 고전 아동문학 작품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따온 표현이다. 어느  갑자기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휩쓸려 강아지 토토(Toto) 함께 낯선 세상에 떨어진 도로시(Dorothy)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자 에메랄드 (Emerald City) 산다는 마법사 오즈(Oz) 찾아 나선다. 그때 에메랄드 시로 이어지던 길이 바로 ‘yellow brick road’이다.


이 노래에서 그 길은 무슨 꿈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은, 성공 신화로 가득한 화려하고 북적대는 도시를 상징한다. 그리고 지금 노래 속 주인공은 그 길에서 돌아서려고 하고 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https://youtu.be/wy709iNG6i8

당신은 언제 내려올 거야?(When are you gonna come down?)

언제쯤 착륙할 건데?(When are you going to land?)

농장에 그대로 있을 걸 그랬어(I should have stayed on the farm)

우리 어르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I should have listened to my old man)


아버지(my old man)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을 떠나온 주인공은 지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오래전에 배웠던 ‘should have + 과거분사’ 구문이 마치 문법책 예문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과거에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후회스럽다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노래에는 ‘장소’와 ‘이동’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계속 등장하며 의미상 대비를 이룬다. 그중 첫째 줄의 ‘come down’은 ‘위에서 내려오거나 떨어지는’ 것을 가리키며 눈비가 내리거나 비행기가 착륙할 때 쓸 수 있다. 둘째 줄의 동사 ‘land’ 역시 ‘지상에 닿는’ 것, 즉 비행기나 배에서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언제 내려올 건지, 언제 착륙하는지 묻는 것을 보면  그는 아마도 주인공을 혼자 둔 채 비행기를 타고 어디 먼 데로 볼일을 보러 갔거나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상’에 있는 주인공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상류 계층’ 사람이거나, 늘 허영에 들떠 있는 사람이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은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중요한 자각을 시작한다.  


날 언제까지고 붙들어 둘 순 없어(You know you can’t hold me forever)

난 당신과 계약을 맺은 적이 없어(I didn’t sign up with you)

난 당신이 친구들한테 열어보라고 던져주는 그런 선물이 아니라고(I’m not a present for your friends to open)

넋두리나 늘어놓으며 지내기엔 이 애송이가 너무 젊어(This boy’s too young to be singing the blues)


나름 청운의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와 도시에 입성한 청년은 어떤 계기로 상류층 사람을 만난  덕분에 꿈에 그리던 화려한 생활을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행복하지는 않았다.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는커녕, 상대방 친구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즐겁게 해주는 ‘선물’ 역할만 떠맡아야 했던 것이다. 화려한 상류사회나 연예계에서 잠깐 흥미를 끌 정도의 참신한 상품, 심지어 노리개가 되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비되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목인 듯하다.


마지막 줄의 sing the blues는 단어 그대로 ‘블루스 곡을 부른다’는 뜻도 되지만, 관심과 동정을 받기 위해 불평을 늘어놓거나, 슬픔을 표현하거나, ‘징징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너, ‘이곳’의 실체


그러니 잘 있거라, 노란 벽돌길이여(So goodbye yellow brick road)

사교계의 개들이 짖어대는 곳(Where the dogs of society howl)

날 당신의 펜트하우스에 심어둘 순 없어(You can’t plant me in your penthouse)

난 시골로 돌아가 밭을 일구겠어(I’m going back to my plough)

숲에서 늙은 부엉이들이 울어대는 그곳으로 돌아가(Back to the howling old owl in the woods)

두꺼비를 잡기도 하며 지내야지(Hunting the horny back toad)

난 마침내 결정했어(Oh I’ve finally decided my future lies)

내 미래는 노란 벽돌 길 너머에 있어(Beyond the yellow brick road)

청년은 마침내 눈을 떴다.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깨달은 것이다. 맨 위층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고급 펜트하우스에 화초처럼 심겨 있다가 상대방이 필요한 때마다 높으신 분들에게 선보여지곤 하던 날들은 이제 끝이다.


내가 떠나고 나면 당신은 뭘 할 것 같아?(What do you think you’ll do then?)

틀림없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한 것 같은 기분일 테지(I bet that’ll shoot down the plane)

토닉 워터 탄 보드카 몇 잔 마시고 나면(It’ll take you a couple of vodka and tonics)

다시 털고 일어설 거야(To set you on your feet again)

날 대신할 놈도 찾을 거야(Maybe you’ll get a replacement)

나 같은 놈은 널렸으니까(There’s plenty like me to be found)

땅바닥에서 당신 같은 별미 간식거리를 찾아 코를 킁킁대는 잡종 개 같은 빈털터리 놈팡이들 말이지(Mongrels who ain’t got a penny / Sniffing for tidbits like you on the ground)


청년이 노란 벽돌 길에 던지는 고별사는 신랄하고 냉소적이다. 한 때 바보 같았던 자신을 떠돌이 ‘잡종 개(mongrel)’에 비유할 뿐 아니라, 상대방 같은 상류층과 사교계의 인물들은 잡종 개들의 ‘맛있는 한 입 거리 간식(tidbit)’, 즉 단물을 빼먹은 뒤에 언제든 버리고 떠날 수 있는 호구라고 단언한다.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곳으로!


지루하고 답답하고 시시해서 뛰쳐나왔을 시골 농장은 이제 주인공의 미래가 펼쳐질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 늦기 전에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주인공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문득 1994년에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서울의 달>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돈 많은 여자를 물어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제비’ 짓을 하고 사기를 치며 서울을 누비던 ‘홍식’(한석규 扮)이 노래 속 주인공과 조금 닮아 보인다. ‘꿈’을 쫓아 멀리멀리 헤매 다녔던 홍식이 진정 원했던 것은 유일하게 사랑하게 된 ‘영숙(채시라 扮)’과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것이었는데, 불나방처럼 욕망을 좇아 질주하던 때에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속도가 붙을 대로 붙은 욕망의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길고 긴 길을 돌고 돌아서 마침내 노란 벽돌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홍식은 그에게 원한을 품었던 여자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모습은 과연 빛나고 있는가?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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