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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11. 2022

[고구마 세 개] #2

평범했던 아이들, 그러나 특별하고도 이상한 이별

삼 년째 밥차에서 만나온 다솜이가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그 소식은 다솜이가 앞머리 헤어롤처럼  언제 어디서나 딱 붙이고 다니던 남자 친구 시호가 전해왔습니다. 좀 느닷없긴 했지만, 만나는 인연이 있으면 헤어지는 인연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송별회 겸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하니 시호는 이미 알고 준비라도 한 듯 대뜸 신이 나서 말합니다.


“다솜이 곱창 좋아해요.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 곱창집을 제가 알아요. 거기서 만나요, 쌤!”


이 와중에도 다솜이 입맛 먼저 챙기는 걸 보니 시호도 다솜이를 좋아하긴 무척 좋아하나 봅니다.


시호는 어깨가 떡 벌어진 데다 덩치도 좀 크고, 걸음걸이도 완전 팔자에, 두 눈꼬리까지 이마 위로 솟구쳐 있어 호젓한 곳에서 맞닥뜨리기라도 할라치면 쉽사리 말 섞기 어려운 인상입니다. 같은 학교 다니는 후배들이 시호가 나타나면 허겁지겁 일어나 ‘형님 오셨습니까?’하고 각 잡힌 인사를 하는 걸 밥차에서도 몇 번이나 봤습니다.


그런 시호와 다솜이는 밥차에 처음 오던 날부터 함께였습니다. 덩치만 컸지 어딘가 헐렁해 보이고 엉뚱해 보이는 시호와 달리 다솜이는 눈매도 입매도 야무진 게 영락없이 누나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솜이가 두 살이나 아래였습니다. 둘은 다솜이 중3 때 처음 만나 고1, 고3이 된 지금껏 잘 사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솜이와 시호는 사랑을 했더래요


“그나저나 니들 이제 못 만나서 어쩌냐?”


나름 알콩달콩한 청춘들의 연애가 귀엽고 애틋하여 곱창을 뒤적이다 말고 위로의 말이랍시고 한 마디 건넸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린 변함없어요. 당연히 제가 다솜이한테 자주 갈 거고요. 매주마다 주말 연인 하면 돼요. 전 다솜이 없으면 사람 안 되기 때문에...”


시호는 마치 타지로 발령받은 회사원 남편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합니다. 그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 본격적으로 좀 놀려 볼 요량으로 짓궂은 농을 시작했습니다.


“장거리 연애가 말처럼 쉽지 않은 걸? 거 왜 속담도 있잖아,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에이, 그런 속담이 어디 있어요?”

“있어, 그런 속담! 미국에... 그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노래도 있는데? 누우운에서 머얼어지면은~ 마으음에서도오~ 머얼어지느은 버어업이지요~”

“아, 쌤! 설마 지금 우리 헤어지라고 고사 지내시는 거예요?”


약이 바싹 올라 씩씩대는 시호와 달리 송별회의 주인공인 다솜이는 언제나 그러했듯 아무 말 없이 가끔씩 시호만 바라봤습니다. 평소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다솜이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걸 얼핏 본 것도 같습니다.


“그래, 그래! 너희들은 서로 떨어져 지내도 그 마음 영원히 변치 않기를 쌤은 진심 바란다.

다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너희들만은 더욱더 서로 사랑하라고!”


덩치 큰 남자 애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분위기를 급히 수습했지만 시호는 여전히 씩씩댔습니다.


“에이, 쌤 말이 전혀 그렇게는 안 들리네요!”


거리를 배회하는 것 빼곤 모든 게 그저 평범했던 아이들


시호가 다른 아이들하고 잠깐 한눈파는 사이, 다솜이에게 기습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시호 어디가 그렇게 좋아?”

“착하잖아요. 다른 친구들 생각하는 마음도 있고요. 술 담배만 안 하면 좋겠어요. 그래도 저하고 있을 때는 안 해요. 걸리면 죽거든요.”


사실 시호는 보기와는 영 다르게(?) 속 깊고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아이입니다. 


태백산맥 언저리에서 살다가 햄버거가 먹고 싶어 맥도널드 햄버거 매장이 있다는 인구 삼십만의 인근 대도시로 가출을 감행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함백이가 며칠 째 쫄쫄 굶었다고 걱정되어서 처음 밥차로 데려온 게 시호였습니다. 그 함백이가 끼니는 밥차에서 겨우 해결하고, 친구 집 아파트 옥상에서 노숙하며 지내다가 낮술 먹고 취해서 길 가던 다른 주취자 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도, 뜯어말리다가 경찰서 가서 하룻밤 같이 자고 나온 것도 시호였죠. 경찰서에서 나오던 일요일 아침 함백이가 감자탕을 먹고 싶어 한다며 여기저기 연락한 것도 시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호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이한 다음부터 집과는 거리가 생겨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아진 청춘일 뿐 정말 착한 아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호가 다솜이한테 그렇게 쩔쩔맨다는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시호 좀 무섭지 않냐? 생긴 것도 우락부락하고?”

“시호 보기하고 완전 달라요. 절대 이상한 애 아니에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은 꼭 하기로 저하고 약속도 했어요. 졸업 못하면 저한테 죽어도 좋댔어요.”


지나고 보니 그토록 단호했던 다솜이의 말과 표정은 저 없는 이곳에서의 시호를 당부하는 것이었던가도 싶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잃은 다솜이의 선택


다솜이가 이사 가고 시호는 가까스로, 그러나 무사히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시호는 다솜이를 만나러 간다며 의기양양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싶다던 말이 씨가 되었던지 기적적으로 대학생도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밥차에도 나타나지 않던 시호가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은 다솜이가 이사를 간지 6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쌤... 다솜이.. 죽었대요.”


몇 달만에 처음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치고는 하두 어이가 없어 그저 멍 해졌습니다.


“어제 다솜이가... 저 지금 다솜이한테 가는 길인데 가서 다시 전화할게요.”


시호의 목소리는 눈물에 잠겨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빚 때문에 도망치듯 이사할 수밖에 없었던 다솜이네는 추심 추적을 피하느라 새 주소지 등록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학 절차를 진행할 수도 없었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다솜이는 무척 방황하며 힘들어하다가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다 하고요.


다솜이는 SNS에서 알게 된 또래 가출 팸과 어울려 그들의 아지트에서 함께 먹고 자는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좀 지나자 가출 팸 아이들이 다솜이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염치도 좋다, 너도 나가 돈 벌어 와라, 알바라도 해서 생활비를 보태라며 괴롭히더니 나중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보도방에 나가라며 협박에 폭행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길거리를 배회하던 다솜이를 가출 팸으로 데려와 알뜰히도 챙겨주던 아이에게까지 폭행을 당하자 다솜이는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밥차 시절 다솜이는 시호와 함께 와서 별말 없이 있다가 딱 컵라면 하나만 먹고 조용히 텐트를 떠나곤 했습니다. 끓인 라면도 있는데 굳이 컵라면만 먹던 아이는 컵라면이 떨어지고 없는 날이면 다른 음식이나 빵에는 손도 대지 않고 꼿꼿이 앉아만 있다가 갔습니다. 시호와는 다른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생활도 꽤 열심히 한다고 했고, 누나처럼 엄마처럼 시호와 다른 친구들의 등교까지 챙기는 눈치였습니다. 그나마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으니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삶을 채워 갈 수 있으리라 서로가 기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낯선 곳에서 지내려면 적응할 때까지 힘들 텐데, 청소년 단체를 알아봐 줄까 했더니 괜찮다고, 잘 살 수 있다고, 학교 가면 된다고 자신하던 다솜이였는데, 이런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절 인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왜 좀 더 챙겨보지 못했을까, 다솜이가 괜찮다고 했어도 단체를 알아봐 연결해줬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는 이제 정말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하고 밥이나 먹고, 사는 이야기 좀 들어준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 가면 가고, 오면 오는 대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의 속을 제대로 볼 수 없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새삼 훅하고 들어왔습니다.

다솜이의 먼 길을 배웅하고 돌아온 시호는 눈빛도 표정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시호가 부분 기억상실로 다솜이가 누군지조차 모르게 된 것입니다. 큰 사고로 몸만 멀쩡한 시호는 그렇게 다시 한번 다솜이와 이별을 했습니다.


만나는 인연이 있으면, 헤어지는 인연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이상하게 헤어지는 인연이 될 줄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란 말로는 도저히 미화할 수 없는, 그런 고구마 세 개 같은 인연이었습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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