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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15. 2022

[꼭 뭐가 되어야 할까?] #8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만!

지급한 가격에 비해 그 성능이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의미하는 말이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성능이다. 그 가성비 차원에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효용성이 낮은 일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글을 쓰는 데에 내가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품질은 언제나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글이라는 매체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정말 옛말이 되었다.


내 글의 품질이 낮아 효용성이 낮은 것은 내 탓이라 치더라도, ‘문자’로 이루어진 콘텐츠가 크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꼭 내 탓만이 아니니 불운한 시절을 타고난 운명을 탓해야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글을 매개로 하는 출판업은 단군 이래 지금까지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어느 날 뒤통수치듯 등장한 이른바 비선 실세의 최 모 여인이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 전반을 쥐락펴락했을 때에도 출판만큼은 별 타격을 받지 않았으니 그 이유가 애써 건드려 봤자 돈 안 되는, 즉 가성비 낮은 일이기 때문이었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미 업계의 정설이다.


가성비는 낮고 가심비는 높다


이토록 가성비 낮은 글쓰기를 내가 생업으로 삼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할 줄 아는 일 중에 그나마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할 줄 아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것은 첫 번째 이유일 수는 있어도 결정적 이유까지는 아니다. 결정적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했어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 일, 게다가 가성비마저 형편없는 일, 나도 내 글도 딱히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부모님이 지어주신 어엿한 이름 석 자가 있음에도 나를 기어이 ‘무명(無名)’으로 만들어버린 이 일,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가 좋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가성비는 형편없을망정 가심비는 매우 높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가심비는 종종 가성비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가심비는 일이 다 끝난 마당에야 느껴지는 찰나의 희열, 찰나의 환희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만족감 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좋아서 하는 일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 과정은 오히려 괴롭고 힘들 때가 더 많다.


소설 <달려라 토끼>를 비롯한 토끼 4부작으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존 업다이크는 말했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즐거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시간표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100% 공감한다. 그렇다고 시간표에 맞춰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스타일까지는 못 되지만-무명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즐거움이 상상 그 이상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 즐거움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는 것도. 존 업다이크 같은 ‘유명’ 소설가도 그렇다니 조금 위안이 된다.


가성비도 형편없는데, 하는 즐거움보다 하지 않는 즐거움이 더 크기까지 한 이 일을 결국 좋아서 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싫은 데 이유 없듯, 좋은 데도 논리적 이유 따윈 (필요) 없는데!


도구가 저절로 글을 써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글쓰기도 비교적 가성비 높은 일에 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다른 예술 관련 학과 친구들을 보면서 ‘우린 재료비가 안 들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필요한 게 있다면 책이었는데, 책은 재료가 아닌 자료인 바 도서관이라는 공공시설을 이용해 얼마든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 재료 격이었던 도구에 대한 로망을 꽃피우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투박하기 그지없는 수동 타자기의 시대를 지나 획기적으로 스마트한 전동 타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가 싶더니, 입력한 서너 줄의 텍스트를 잠깐 저장했다가 출력 버튼을 누르면 그 서너 줄이 한꺼번에 인쇄되는 놀라운 기능을 탑재한 신문물 ‘워드프로세서’가 막 등장하던 시기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오히려 선배들은 전동 타자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신입생들이 이 워드프로세서라는 신물물을 들고 의기양양 등장하던 시절, 그 시절 우리의 로망은 그러니까 보다 긴 텍스트를 기억하는 능력이 탑재된 워드프로세서였다.

요즘으로 치면 노트북에 해당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기능은 단순한 텍스트 입출력에 한정되어 있어 겨우 전동 타자기를 면한 수준이었기에 문과생들의 리포트 작성을 위한 도구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얼마만큼의 텍스트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버전 1, 2, 3으로 진화를 거듭하던 워드프로세서는 PC 보급으로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이제는 ‘시티폰’만큼이나 무의미했던 발명품으로 꼽힌다. 그 발명품을 나도 샀다.


그중에서도 ‘르모 3(Lemot III)’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최첨단 워드프로세서를 007 가방처럼 가뿐히 들고 등장한 훤칠한 남자 신입생의 뒤에서 ‘르모 3가 있으면 글이 저절로 써지냐’며 비아냥대던, 선배들의 다소 찌질했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하기야 그 시절 학과 사무실에서 무제한으로 나눠주던 원고지에 천하의 악필로 휘갈겨 쓴 소설을 과제로 제출하던 친구가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 김종광이니 도구가 글을 써주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니 글쓰기는 가성비 하나는 끝내주는 장르이긴 하다.


이토록 가성비 높은 재능이 또 있을까?


회화과 친구들이 작업실에 줄줄이 세워놓은 캔버스 가격이 생각보다 엄청 비싸다더라, 사진학과 친구들이 들고 다니는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는 니콘이니 캐논이니 하는 상표명이 적힌 스트랩조차 십수만 원이라더라, 관현악과 친구들은 악기 케이스만 수백만 원짜리라더라 하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 속에 우린 그래도 연필만 있으면 뭐라도 쓸 수는 있지 않냐며 짠한 위로를 나누던 그 시절 내 문우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몇몇은 익히 알 수 있는 이름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고, 몇몇은 글 좀 쓰는 실력이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가 되었을 것이고, 또 몇몇은 나처럼 생업 작가로 어디선가 가성비 높은 재능을 발휘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워드프로세서는 PC의 보급과 아래아 한글이라는 기특한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어이없게도 한순간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이 일은 결과적으로 글쓰기의 가성비를 한층 더 높여 주었다. 원하는 문장과 문단을 손쉽게 여기저기 옮겨 볼 수 있는 Ctrl+V/Ctrl+C 기능에, 서너 줄이 아니라 수 백, 수 천 개의 파일도 가뿐하게 저장하는 놀라운 메모리는 원고지에 줄을 박박 긋고, 구기고, 급기야 북북 찢어버리는 불필요한 행위를 사라지게 했으며, 이로 인해 종잇값은 대폭 절감되었고, 글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은 대충 얼버무려 써놓았다가 언제든 돌아와 추가, 삭제, 수정할 수 있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열어 준 것이다.

1인 1PC를 넘어 진짜 노트같이 슬림하고 간편한 태블릿 PC까지 등장한 지금도 이것은 여전히 가성비의 신세계임을 요즘 나는 그림을 그리며 더욱 격렬히 느끼는 중이다.


글은 망치면 망친 그 부분만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데, 그림은 망치는 그 순간 그야말로 원점이다. 다시 새하얀 종이 앞에서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해야 한다. 그 새하얀 종이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순간의 막막함은 글쓰기와 다름이 없는데, 여기에 허탈함마저 보태지니 정말 다시 처음부터 그리자면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아야 한다.

각종 페인팅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페인팅은 망친 부분만 되돌릴 수 있는 기능이 있다지만  이건 원고지에 육필로 쓰던 글을 문서 편집 프로그램으로 쓰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다. 물론 바둑의 왕좌가 인공지능에게 넘어간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으니 앞으로 디지털 페인팅 프로그램의 성능도 그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면이야 모를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붓을 가리지 않아야 명필이지!


그러나 때로 이 엄청난 가성비는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고 핑계 댈 게 없어 오히려 더 막막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한다. 좋은 물감이 좋은 색감을 내듯, 좋은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듯 좋은 노트북이 좋은 글을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르모 3’가 있다고 저절로 글이 써지지 않듯 좋은 노트북도 좋은 글을 만드는 데에는 일말의 힘도 보태지 못한다.


좋은 도구가 좋은 글을 쓰게 한다면,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쓴다는 작가 김훈 보다 나는 글을 잘 써야만 한다. 아니,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문우였던 김종광 작가와 문장의 대가 김훈 작가까지 얘기하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다. 그 유명한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말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단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지만 명필은 21세기에도 붓을 가리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저 좋아서 하는 일에 가성비 타령은 여기까지!


다시뉴스 필진 정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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