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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03. 2022

[꼭 뭐가 되어야 할까?] #9

덕질에는 돈이 든다. 그것도 꽤 많이!

일찍이 매일 아침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베토벤의 일화는 들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일관된 맛과 향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흠 없이 온전한 원두 60알을 일일이 골라 정성껏 간 다음 내려 마셨다길래 ‘예술가라 그런가 커피 한 잔도 예사롭지 않게 마셨군!’ 하고 생각했더랬다.



뚜렷한 취향이 별로 없던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유일하게 고집해온 기호품 역시 커피였지만 그때만 해도 베토벤의 커피 습관은 그저 괴짜 예술가의 유별난 집착으로만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접한 커피는 2022년 현재 버스정류장 보다 흔한 동네 카페 어디서나 파는 이른바 ‘원두커피’가 아닌 인스턴트커피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수 고르고 헤아린 원두 60알의 의미를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액상 커피를 동결 건조한 인스턴트커피 가루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을 넣고 펄펄 끓는 물을 부운 갈색 음료를 여전히 커피의 황금비율이라 여기던 시절이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원두커피 전문점이라 불리던 곳이 서울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그곳에서조차 액상 크림과 설탕을 반드시 내주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른의 향기로 각인되었던 커피 향


어린 시절 내게 커피는 ‘어른의 향기’였다. 인스턴트커피에 가루 프림과 백설탕이 더해져 원두의 아로마보다는 끈적한 달큼함이 먼저 맡아졌을 터인데도, 특별하고 ‘찐’했던 그 향은 어딘가 모르게 성숙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옆에만 있어도 이 좋은 향이 코를 찌르는데 직접 마시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싶었다. 어쩌면 ‘애들은 못 먹는다’고 확고히 못 박는 바람에 오히려 금단의 열매처럼 더 간절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애들은 마시면 얼굴이 까매진다’ 던 금단의 커피를 공공연히 마시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조금이라도 더 커피 본연의 향을 느끼기 위해 프림 둘과 설탕 둘을 과감히 뺀 블랙커피(여전히 인스턴트커피였다)를 주로 마시다가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려낸다는 고수의 커피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신입생의 촌스러움을 막 떨쳐내기 시작한 어느 가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얼굴이 까매지진 않는다는 것쯤은 다 아는 성인이 되었지만 커피는 내게 여전히 성숙한 어른의 향기였다.


그리고 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두고 문을 연 일명 ‘별다방’을 시작으로 우후죽순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들이 생겨나면서 인스턴트커피는 더 이상 커피라 여기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유별난 커피 취향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때가 말이다. 그러니까 일찍이 커피 좀 마신다며 서울 시내 맛있는 커피점을 두루 섭렵하고 다니면서도 원두 60알의 의미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 좋은 원두가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그러면 대체 언제쯤이었을까?


알수록 흥미진진, 배울수록 넓어지는 커피의 세계


30년 가까이 커피를 최애 기호품으로 즐겨오면서도 커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지식도 관심도 없었던 나다. 그저 어쩌다 책에서 본, 글로 배운 가십 수준의 지식이 전부였고, 베토벤의 커피 취향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리곤 기껏해야 커피는 카카오와 더불어 생산지와 소비지가 명확히 구분되는 품목이라 공정거래 무역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시사 상식 정도, 그리고 대체 누가 이 커피라는 나무 열매의 과육도 아닌 씨앗을, 그것도 말려서 볶아서 갈아서 물에 우리기까지 해서 먹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 정도가 커피에 대한 내 관심의 전부였다. 그 외에는 내가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가면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나 하는 것 정도. 그러고 보니 나의 무재주는 타고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우연히, 그것도 상당히 늦은 나이에 커피를 업으로 삼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니까 30년 세월 커피를 마시기만 하던 사람에서 일약 커피를 내리고 파는 사람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처음에는 북 카페라기에 서적 관리가 주요 업무려니 생각하고 덥석 수락한 일이었다. 책을 만드는 것과 책을 파는 것도 분명 다른 일이긴 하지만 나름 동종 업계라 여기고 조금 만만히 본 것이다. 그러다가 커피로 업의 무게가 점점 옮겨가기 시작하자 내심 겁이 났다. 음식 만드는 일에는 도통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늦기 전에 이만 발을 빼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겁 많고 소심한 기계치 앞에 놓인 9 기압에 92℃가 기본이라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은 탱크만큼이나 위압적이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도전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위압은 북 카페를 연 선배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아니, 나보다 훨씬 더 했을 터-라 믿을 만한 전문가를 초빙해 스파르타식 커피 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 그나마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커피를 향으로 느꼈던 내가 커피를 업으로 삼기에 남보다 조금 나은 조건, 즉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상대평가였을지 모를 전문가의 칭찬과 격려가 나를 더욱 고무되도록 한 것도 사실이지만 커피는 알수록 흥미진진했고, 배울수록 그 세계가 넓어졌다.


베토벤이 손수 고른 원두 60알이 의미하는 것


모든 일에는 ‘구력’이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구력과 실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적이든 말든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는 바 제아무리 타고난 감각이 있다 하더라도 고작 3개월 남짓 커피를 공부한 바리스타의 수준이라는 게 뻔했을 것이다. 그러니 줄곧 하던 일에서도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이에 완전한 전직은 언감생심이었다. 더욱이 하필 하던 자영업도 접는다던 코로나 시국에 문을 연 북 카페에서 1년 계약으로 일을 시작한 터라 이 일이 내 생에 새로운 커리어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평생 잃지 않을 좋은 취미 하나는 갖게 될 것이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한 것은 비로소 베토벤이 손수 고르고 헤아린 원두 60알이 어떻게 일관된 맛과 향을 내는 데 기여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상당히 일반화하여 핵심만 발라 말하자면, 커피 한 잔을 기준으로 ‘고르게 분쇄한 20g 내외의 원두가루에 90℃ 이상으로 끓인 물을 부어 맛과 향을 추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9 기압의 압력이 가해지면 보다 익스프레스(express) 한 속도로 커피가 추출되는데, 이것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통해 나오는 에스프레소 커피, 즉 빠르게 추출된 커피인 것이고, 직접 손으로 물을 부어가며 시간을 두고 브루잉 해 내리면 핸드 드립 혹은 핸드 브루잉 커피라 하기도 한다. 종이 필터에 원두가루를 넣고 거른다 하여 필터 커피라 하기 하고, 종이 필터 내신 프란넬이라는 천으로 만든 거름망을 사용하면 융 드립 혹은 넬 드립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커피 추출법이 있지만, ‘고르게 분쇄한 20g 내외의 원두가루에 90℃ 이상으로 끓인 물을 부어 맛과 향을 추출해낸다는 핵심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고르게’라고만 했던 원두의 미세한 분쇄도 차에 따라(육안으로는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차이이다), 20g 내외라고 퉁 쳐서 말은 했지만 원두가루의 0.1~0.2g 차이에도, 그리고 물 온도 1~2℃ 차이에 따라서도 추출된 커피의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원두의 품종, 생산지, 농장, 가공법에 따라 그리고 원두의 가격을 결정하는 품질에 따라, 원두 상태에 따라 추출된 커피의 맛과 향은 더욱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러니 베토벤이 매일 아침 그토록 정성을 다해 내려 마신 커피는 그만의 원두가루 양과 분쇄도, 물 온도 등이 적용된 그만의 레시피로 만든 아침 식사였던 것이다.

바리스타도 카페에서 정해둔 레시피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커피는 절대 고객에게 내지 않는다. 베토벤이 손으로 하던 일은 이제 0.1g 이하까지 측정해 주는 전자저울과 티타늄 칼날을 장착한 전동 그라인더 등의 기계가 담당하면서 오히려 더 정교하고 정확해졌다. 대신 에스프레소 샷 잔을 제 위치에 두지 않거나 추출 버튼을 잘못 눌러 정량의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지 않는다든가,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낼 때 정량의 더운물이 가수(加水) 되지 않는다든가, 혹은 핸드 브루잉 커피를 내릴 때 물의 양과 브루잉 시간을 어겼다든가 하는 사소한 오류 등인데,  동시에 여러 잔의 커피를 만들어 내다보면 흔히 하게 되는 실수들이다.


사실 이 사소한 오류로 인한 맛과 향의 차이를 그저 카페인이 필요해 혹은 잠시 앉아 이야기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 카페를 찾은 고객들까지 훤히 알고 단박에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잘못 내린 커피를 가차 없이 개수대에 부어야 할 손길이 잠시 멈칫했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음을 나는 고백한다. 그러나 잠시 멈칫했던 그 손길에 다시금 박차를 가했던 것은 언제 어디서 봤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베토벤의 원두 60알에 얽힌 일화였다는 것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돈도 안 되고 돈만 드는 덕질, 그럼에도 덕질이 필요한 이유


어쩌면 베토벤도 원두 개수가 좀 달라졌다고 해서 단박에 그 맛과 향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원두를 고르고 헤아린 것은 어쩌면 그것이 하루를 여는 의식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일 년 계약으로 일했던 북 카페를 그만둔 요즘 나는 한때 업이었던 커피에 대한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커피를 업으로 삼았을 때는 그로 인해 최저 시급에 준할망정 소득이라는 게 있었는데, 덕질을 시작하고 보니 돈이 든다. 그것도 꽤나 많이, 심지어 지속적으로!! 그럼에도 돈도 벌어주지 않고 돈만 쓰게 하는 덕질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 이 또한 즐겁기 때문이다.

내 커피 덕질의 시작은  매일 아침을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여는 것이다. 물론 일일이 원두 알을 세진 않는다. 나는 베토벤과 달리 도구의 인간에게 걸맞은 다양한 기기들이 날로 등장하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아침 식사를 과일을 곁들인 토스트 한 장으로 바꾸었다. 수십 년 세월 아침 식사는 황제처럼 든든하게 해야 한다는 생활 철칙을 고수하며 무려 삼 남매를 청소년기에도 아침밥 먹여 키워낸 노모를 설득한 비결은 다름 아닌 타고난 센서리의 소유자로 구력 1년의 바리스타가 정성으로 내린 커피의 맛과 향이었다. 아니 실은 수십 년째 반복해온 삼시 세끼가 지겨울 때도 된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덕질은 시작되었고, 의식은 지속되는 중이다. 


다시뉴스 필진 정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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