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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06. 2022

[고구마 세 개] #4

'밖'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오 월은 선택과 결단의 시절입니다.


의무인 중학 과정을 꾸역꾸역 마친 어린 청춘들은 각자 처한 환경에 맞는 진학을 합니다. 먼저 ‘특수 목적’을 가진 소수가 전국으로 흩어지고 나면, 대부분의 무난한 학생들이 지역 내 인문계 고등학교의 정원을 채웁니다. 대학 진학에 ‘올인’할 수 없는 환경을 가진 경우는, ‘특성에 맞는’ 교육을 표방하는 특성화 고등학교로 갑니다. 요즘은 수요보다 정원이 많은 시절이라 웬만해서는 진학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습니다. 열일곱 살의 입학식은 ‘학교 카스트’를 부여받는 날입니다.


그렇게 들어간 고등 과정은 중등 과정과는 여러모로 달라서 입학 초부터 갈등에 직면합니다. 갑자기 길어진 등하굣길, 새로 만들어야 하는 교우 관계, 더 빡세진 공부, 그리고 따돌림. 어느 것 하나 익숙지 않고 녹록지 않으니 아침마다 갈까 말까를 번뇌하다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탐색의 인내심도 함께 터져버립니다.


학교가 영 편하지 않은 아이들


"나 학교 안 가."


학교 카스트 피라미드에도 없는 계급, 학교 ‘밖’ 청소년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생애 첫 결단을 이룬 어린 청춘들이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밥차에 들릅니다.


교복이 맘에 들어서 좀 더 다녀 보려고 했는데요, 영 제 타입이 아니네요.
원하는 타입은 뭔데?
전 좀 더 놀고 싶어요. 친구들도 더 만나고, 남친도 사귀고, 밴드에서 노래도 하고 싶고, 그런데 다들 서로 눈치만 봐요. 쉬는 시간에도 책이나 펴놓고 있고, 아오~ 짜증 나요.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생기발랄, 자신감 만땅 소녀 아은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문계 여고로 배정받아서 좋아하던 아은이 엄마. 그러나 딸이 공부가 부담돼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자 ‘학교 관둘 거면 집 나가’라고 했다는데, 엄마 말이라면 쑥으로 쑥떡을 한다고 해도 잘 안 믿던 아은이 그 말은 또 곧이곧대로 듣고 집을 나왔답니다.

그렇게 도배도 안 마른 비상숙소 최초의 입소자가 되어 열흘을 보낸 아은이는 결국 ‘네 인생 너가 알아서 하라’는 엄마의 항복 선언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홀로 키운 엄마 속을 휘저어 놓은 아은이는 조건부 쌍방 합의로 자퇴를 성취하였습니다. 아은이는 한 달은 더 그 학교 교복을 입고 밥차에 나왔습니다.


학교 그만두었으면 교복도 그만 아닌가?
교복은 마음에 든다니까요. 돈 주고 산 건데 안 입으면 아깝잖아요.

좀 더 자유로운 ‘학력 인정’ 학교로 전학 간 날, 아은이는 새 학교 교복을 입고 다시 등장했습니다.


아, 이 교복이 더 맘에 들어요. 더 예뻐요.


새 교복은 치마가 더 짧고, 품은 더 타이트하고, 컬러풀하고 패셔너블한 것이 좀 더 불편해 보였지만, 아은이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습니다. 청소년들의 학교 선택 기준에 교복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집이 있어도 집에 있을 수 없는 아이들

 

민재도 학교 ‘밖’입니다.


지병으로 고생하던 엄마가 돌아가시자 민재의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재혼 이후 집을 나오는 일이 많아진 민재는 노숙과 집숙을 번갈아 하면서도 중학교는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주운 카드’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가 ‘점유물 이탈 횡령’으로 보호관찰을 받은 것을 빼면, 뭐 별일은 없었다고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민재를 처음 밥차에서 보던 날, 민재의 학교 선배가 민재를 알아보자마자 ‘노숙 전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전문가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 어렸고 덩치는 좀 작은 데다 눈빛은 순하지만 불안한 소년이었습니다.

특성화 학교를 다니고 있다지만, 학교를 꼬박꼬박 가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학교 잘 안 간다고, 좀 있으면 ‘잘릴 거’라는 대답뿐입니다. 어디서 무얼 하고 다니는지 몰라도 밥차를 여는 날엔 꼬박꼬박 찾아들었습니다.


그 무렵, 민재는 하영이를 만났습니다. 학교는 달랐지만 둘은 꼭 붙어 다녔습니다. 학교를 빼먹는 민재에게 하영이는 타박을 자주 했고, 민재는 그럴 때마다 학교에 잘 갈 거라고 농을 치면서도 계속 빼먹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큰소리를 내며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하영이는 울면서 밥차 안으로 들어오고 민재는 씩씩거리면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자꾸 거짓말하잖아요. 학교 안 간 거 아는데 갔다고 그러고, 안 좋은 애들하고 어울려 다니고...
자꾸 거짓말하는데 왜 만나? 헤어지면 되잖아?
원래 거짓말하는 애는 아니에요. 안 좋은 애들하고 노느라고 자꾸 거짓말하는 거예요. 내가 걔네들 못 만나게 하니까...


하영이가 계속 울었습니다.


나쁜 새끼. 내 말도 안 듣고, 내 말 듣는다고 해 놓고...


하영이 울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건 뭐지? 이 아이는 또 왜 이렇게 말도 안 듣고 거짓말이나 하는 사내놈을 각별하게 챙기는 거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또 벌어지는 중입니다.


운동장 한쪽에서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던 민재를 불러왔습니다.


하영이 자꾸 운다.
아, 걘 뭔 말 하다가 막히면 울어요. 저도 답답해 미치겠어요.
그래도 걱정 많이 하던데...
누가 뭐 내 걱정해 달라고 했나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지. 아 솔직히 좀 답답해요. 맨날 잔소리하고 나보고 뭐 잘못했다고 그러고. 그러니까 저도 더 이상 못 참겠다고요.
그래? 그럼 헤어져야겠네?
....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답답해 미치겠다면서, 그럴 땐 헤어지는 게 답이지.
잔소리만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간섭도요. 자기가 무슨 엄마도 아니면서 막 어떨 땐 엄마보다 더해요, 아주.
그러니까 헤어지면 된다니까.
...... 헤어지긴 싫어요. 그래도 걔가 내 생각을 제일 많이 해 줘요. 걔도 없으면 저 챙겨주는 사람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걸요.
그러니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울게 하는 거 말고...


눈 꼬랑지가 순해진 민재는 슬그머니 하영이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영이는 여전히 봉사자 언니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티슈 한 통을 다 비우는 중입니다.


그날 이후로도 둘은 똑같은 이유로 자주 다투었고, 헤어졌다 만났다를 네댓 번 반복하더니 최종적으로 끝장을 냈습니다. 하영이가 다른 남자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일단은 하영이의 새 남자 친구도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하영이에게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이 민재는 제 발로 학교를 찾아가 자퇴원을 냈습니다.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오월 어느 날의 일입니다.


집보다 포근한 병원 복도 의자

 

오랜만에 민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토바이 작업’에 걸린 것 같다고, 사십만 원만 빌려줄 수 없냐고, 아르바이트해서 꼭 갚겠다고 했습니다. ‘오토바이 작업은 또 뭐지?’ 싶은데, 민재가 설명합니다.


새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길을 가는데 ‘우연히’ 그 친구가 아는 선배를 만났고, 이들은 민재에게 배달 알바라도 하려면 오토바이 면허가 있어야 된다면서 오토바이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접근을 해왔답니다. 거절이 두려웠던 민재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직접 운전해 보라는 말에 핸들을 잡았는데 백 미터도 못 가서 오토바이가 고장이 나고 말았답니다.


아, 이 XX야! 이거 얼마 타지도 않은 건데 어떻게 했길래 고장이 나?
그냥 액셀 당긴 거밖에 없는데요.
야 이 XX, 니가 뭘 잘못했으니까 고장이 난 거지. 이게 그냥 고장 날 리가 없잖아. 물어내라, 잉!


오토바이 수리 센터에 가서 견적을 내보겠다던 오토바이 작업단은 그래도 ‘싸게 먹혔다’며 민재에게 사십만 원을 청구하였습니다. 작업단도 학교 ‘밖’ 선배들이었습니다. 결국 민재는 횟집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간신히 첫 사기 피해를 메꿀 수 있었습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민재의 행색이 날로 누추해지고 눈빛도 흐려지는 게 보여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병원에서 잔다고 했습니다. 어디 아픈가 싶어 놀라 물으니 환자 보호자인 척하고 들어가서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서 잔답니다. 춥지도 않고, 쫓아내는 사람도 없는 그 포근한 잠자리는 돌아가신 엄마가 입원했을 때를 떠올리다가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병원 복도 의자에서 잠자는 민재 모습을 상상해보니 체구가 작아서 잘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지만 2020년 2월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는 민재의 병원 숙박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이제 집에 들어가지 그래. 이런 거 습관 되면 무서워. 아버지가 안 찾으셔?
저 집에 못 들어가요.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래?
그건 아니고요... 제 방에 누가 살아요. 같은 반이었던 애가...


민재 아버지의 재혼 상대는 같은 반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그제야 민재의 추운 마음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새벽이슬에 젖어 다녔던 거구나’


Run away from home


가출(家出) [명사]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감


국어사전의 정의입니다. 어쩐지 나간 사람을 비난하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감히 집을 나가? 이런!’ 하는 분노도 느껴집니다. 은연중에 가부장적 사고를 담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가출 청소년’ 하면 ‘문제가 있어서 집 나간 애’ 정도로 치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간 사람이 문제라는 인식, 그러나 집을 나가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출의 영어사전 정의는 ‘run away from home(집으로부터 달아나다)’입니다. 집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생존을 위해서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집에 문제가 있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가출이 아니라 ‘가정 탈출’입니다.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가정 탈출 청소년’으로 호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들은 이 시간에 학교에 안 가고 왜 밖에 나돌아 다녀?’ 하는 힐난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학교 ‘밖’이 있으면 학교 ‘안’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호명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청소년은 당연히 학교‘안’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밖’들은 해나 떨어져야 활동을 시작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 ‘이탈’ 청소년입니다. 학교가 맞지 않아서, 학교가 불편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어서, 학교 말고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서, 학교가 받아주지 않아서 학교를 떠났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냥 학교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회 ‘안’으로 들어온 ‘어린 사회인’들입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학교 이탈 청소년들은 어느 통계에도 정확히 잡히지 않는 ‘불가시적(不可視的)’ 존재들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니 제대로 접촉해 볼 수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가정 이탈 다음에 학교 이탈, 그다음엔 또 다른 이탈이, 이들 ‘밖’의 인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은이는 작년에 대학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고, 며칠 전 밥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라면 식당’을 열면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 민재에게 오토바이 작업을 한 또 다른 학교 ‘밖’ 아이들은 현재 다른 일로 ‘전원 국가의 보호와 통제 아래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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