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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5. 2023

[고구마 세 개] #14

지은 씨 이야기 1

지은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휴대전화기 너머에서는 목소리보다 담배 연기가 먼저 뿜어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입원실에 잠들어 있어야 할 지은 씨는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전화를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동안 연기와 숨을 뱉는 소리만 들려서 전화를 잘못 걸었나 싶어서 ‘아무 말도 안 하면 전화를 끊겠다’고 했더니 금방 울음이 터져버립니다.


저 살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만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요?
......


지은 씨 입에서는 눈물과 담배 연기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말들이 뒤섞여 쏟아졌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지은 씨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대부분 ‘치안센터’에서 훈방을 위한 ‘지인 보증 요청’ 목적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SOS’입니다. 힘겹게 버텨오던 둑이 하나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일은 처음이어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입원하던 날, 휴가 받아서 한 며칠 쉬다 올 사람처럼 밝은 표정으로 들어가는 걸 본 터라 갑작스러운 감정 추락이 의아했습니다.


백 분짜리 전화 통화만으로는 요약할 수 없는 삶의 궤적


왜?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나 사는 게 너무 거지 같아요.
난 쓰레기예요. 다들 날 ‘버려요’.


지은 씨는 일이 제 뜻대로 안 되면 ‘쓰레기 같다’는 말을 자주 썼는데,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하는 건 또 처음 듣습니다. 그렇게 백 분짜리 통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버린다’는 말에 관해서 물어보니 몇 달 전에 시작한 동거가 깨졌다고,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같다며 또 통곡합니다.



지은 씨는 사흘 전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경찰서부터 다녀와야 했습니다. 새로 알게 된 친구 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던 중에 갑자기 들어온 친구 누나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결국 ‘폭행’으로 신고하고 조서를 쓰고, 먼저 ‘선빵’을 날린 친구 누나가 가해자가 되고, 상처가 더 심하고 대응 폭력이 인정된 지은 씨가 피해자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응급실을 거쳐 입원실로 가는 동안 병원비는 어떻게 하냐며 한걱정하던 지은 씨. 이런 경우는 대부분 가해자가 병원비까지 부담하는 거라고 알려 주었더니 좀 편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담배 마음대로 못 피워서 오래는 못 있을 거라며, 일주일만 있다가 나가면 된다며 자못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활동가에게 ‘면회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꼭 환자 면회 오는 사람들이 사 가지고 오는 것들을 사서 와야 한다’고 당부도 했습니다.


면회 때 사 가지고 가는 게 뭔데?
그거 있잖아요, 과일 담은 바구니, 음료수 뭐 그런 거요. 병원에 누워있을 때 누가 그런 거 사 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런 생각했었거든요. 저 그런 거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랬구나. 좋아하는 과일 있어?
딸기요. 딸기면 돼요. 좀 더 사줄 수 있으면 짜장범벅, 젤리, 초콜릿 과자, 두유는 무조건 단 거로요.

면회 선물 받으려고 일부러 입원한 것 같은데?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경찰도 병원에 입원해 있으라고 했잖아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거 해보는 거지요. 다 사다 주실 거죠?
딸기는 안 되겠는데? 한여름에는 딸기가 안 나오잖아. 딸기는 겨울에서부터 봄이 제철인 과일이 되어버렸어. 딸기는 겨울에 입원하면 그때!
그래요? 그럼 겨울에 또 사고 쳐야 하나? 헤~ 그냥 딸기 우유도 돼요.


그렇게 첫 번째 면회 꾸러미가 병실로 들어간 다음 날이어서 이 ‘추락한 감정’의 맥락이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두 번 버려진 아이예요


지은 씨는 보호시설에 두 번 입소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걸 두고 지은 씨는 ‘두 번 버려졌다’고 말합니다. 학교도 가기 전에 부모님 사정으로 처음 시설로 가게 되었고, 열 살이 좀 지나서 집으로 갔다가 몇 달을 못 살고 다시 시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훨씬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다섯 살 사춘기를 지나면서 지은 씨의 시설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지은 씨가 시설을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누구는 학교 가기 싫어해서 나온 거라고 하고, 누구는 폭력이 심해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도망 나온 거라고 하고, 또 누구는 아이들과 싸움이 잦아서 쫓겨난 거라고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이유를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시설을 나온 뒤부터 3년 세월에 대해서도 여전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이 시절을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는 늘 친구랑 방 구해서 지냈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노숙과 그룹 팸을 전전하던 지은 씨는 결국 열일곱 살, 고1이 되자마자 학교를 그만두었고 그나마 형식적으로라도 남아있던 사회 연결망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은 씨는 ‘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없을 것 같았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기에는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보잘것없었고’, ‘결국 다른 애들 밑자락이나 깔아주는 신세가 되는 것이 싫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남들이 들으면 학교 탈출 성공기쯤으로 여겨질 정도로 한껏 신이 나서 자퇴담을 들려주었습니다.


버려진 고양이처럼 더디 마음을 여는 아이들


지은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에 다녔으면 고 2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열여덟 살 때입니다(지은 씨가 밥차에 처음 오던 날 이야기는 <인연의 무게 1> 편에 있습니다. ‘작은 체구에 눈매나 입매나 머리 손질한 매무새가 아주 매끈하여 단단한 차돌 같아 보이는 여자 1’이 바로 지은 씨입니다). 지은 씨를 처음 본 날, 낯선 것을 경계하는 고양이를 닮았다는 느낌에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열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몇 마디 말을 건네 보았지만,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눈길은 활동가들의 행동을 빼놓지 않고 담아두는 듯했습니다.



지은 씨는 병원에 열흘 정도 더 있다가 ‘무사히’ 퇴원했습니다. 벌써 삼 년 전 일입니다. 하지만 병원비는 여전히 미정산 상태입니다. 판결에 의해서 입원 치료비는 가해자가 부담해야 했지만, 그 역시 그럴만한 형편이 되질 않았습니다. 스무 살 가해 청년은 건강과 경제력을 잃은 아버지와 하나뿐인 남동생을 챙기는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 지은 씨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 청소년 SOS 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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