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jung KIM Jun 15. 2018

나의 사랑하는 이모들

내 기쁨을 나만큼 기뻐해주는 여성 동지들을 곁에 두기



 나에겐 이모가 셋 있다. 엄마와 동생들은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처럼 개성이 다 달랐다. 가게를 하시던 엄마 대신 당시 미혼이던 이모들이 우리집에 와서 나를 돌봐주었다. 먼저 친딸처럼 나를 돌봐주었던 둘째 이모가 있다. 왈가닥에 놀기 좋아하던 이모는 나이트가 너무 가고 싶어서 어린 나를 나이트에 데려가서 친구들과 교대하며 놀았던 전적이 있다.(다른 친구들이 춤추러 나가 있는 동안 남은 한 명이 내 입에 과일안주를 넣어주며 지키고 있었다고 함) 이모가 결혼할 사람이라며 이모부를 데려왔을 때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모를 뺏긴다는 마음에 남모를 질투에 시달렸다. 내 생애 첫 질투였던 것 같다. 막내 이모는 나의 사춘기 시절 함께 방을 썼기 때문에 친구처럼 편한 사이이면서도 틱틱거리는 나를 견뎌야 했다. 나의 가장 매정한 시절에 함께한 막내 이모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반면 셋째 이모에 대한 내 감정은 퍽 신기한 구석이 있었다. 이모는 나보다 내 남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해서 나를 애타게 하더니, 다니던 소방서를 그만두고 돌연 수녀원에 들어갔다. 이모가 수녀원에 머무는 동안, 내 앞으로 꾸준히 편지가 도착했다. 젊은 이모로서는 수녀원 생활이 꽤 고달팠으리라. 이모의 편지에는 책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고 가끔은 수녀원에서 손수 만든 물건들이 함께 동봉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어느 책 속 문장을 적어준 책갈피는 지금도 그 형태까지 기억난다.(어느 책의 어느 문장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나만의 특별함이 진부해져버리는 마법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런데 최근 우연히도 그 책의 번역을 의뢰받았다. 십대의 기억 속에 인장처럼 각인된 문장을 내 손으로 다시 한 번 옮길 수 있다니, 너무 벅차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나의 기쁨을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친구를 두는 것, 단언컨대 그것은 인생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얘기가 돌아 돌아왔지만, 엄마의 자매들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친구였던 것 같다. 언젠가 나에게 여대를 간 건 인생의 실수라며 농담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말은 틀렸다. 나는 이모들에게서 배운 애정 어린 순간과,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배운 동지애를 발판으로 지금 일상을 단단히 딛고 서 있으니까. 내 인생에 찾아온 기쁜 일을 나만큼 기뻐해주는 자매와 친구들이 있다면, 불가피하게 넘어지더라도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날 힘을 얻는다. 너무 조급해하지만 않으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두 죄르 에 드미’의 오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