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 나는 도와준 줄 알았는데 들쑤셨다는 걸.
유치원에서는 놀이를 하다가 약속된 정리시간이 되면 모두 정리를 시작한다. 그런데 과도하게 정리를 하는 친구가 있다. 자기 것을 다 정리한 후에 친구의 것도 정리를 하는 것이다. 어른 같으면 말도 안 했는데, 도와주는 친구가 고맙게 느껴져 보답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유치원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정리하고 싶은 데 말도 없이 내가 할 정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도와주려고 했던 친구는 화가 난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난다.
유치원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교직원사이에서 일어난다. 대부분은 유치원 일이 너무 많아서, 서로 해 주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가기라도 하면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등원은 오전 교육과정담당교사와 실무사가 맡지만, 하원은 방과후과정 담당이 맡는다. 오전에 했던 여러 가지 작품 같은 것을 같이 보내는 것도 어물쩍 방과후 담당이 하기도 하고, 교실도 오전에 어지럽게 쓴 것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오후로 넘어오면 그것도 방과후에서 하게 된다.
하원할 때, 부모를 항상 마주하기에, 부모는 오전 담당교사보다 오후 담당을 더 많이 마주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때라, 부모도 자녀의 하루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상담(?)을 할 때가 있다.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부모의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반대로 안 좋은 얘기를 듣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스란히 민원을 받는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물론이다. 그래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 여파가 다른 아이에게 가지 않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한다.
반면에 부모의 감사하단 말에 취해 나도 모르게 과도하게 상담 아닌 상담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상담은 오전 교과과정교사의 의무이자 역할은 맞다. 중요한 건 그 얘기를 오전담당에게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깜박 잊고 말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부모가 오전담당교사에게 상담했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라도 하면 또 갈등이 야기된다.
성격이 괜찮은 교사는 그나마 좋게 다음에는 얘기해 달라고 하지만, 자신이 정리해야 할 놀잇감을 말없이 도와줘서 화를 내는 유치원생처럼 기분 나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간과한 것은 상담을 할 권한은 딱히 없다. 또 그만한 역량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학부모의 민원과 폭언을 당해도 교원은 교권침해에 대해 구제할 방법이라도 있지만, 오후담당은 그런 방도는 없다.
깜박 잊을 뻔했다.
맡은 것이나 충실히 하지
쓸데없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건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다는 걸
잊었다.
안 해주고 싶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도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하고
이건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교실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