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맡은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수학과 영어과목 중 수학협력강사로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3월 셋째 주부터 들어가기 시작한 나는, 계속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왔다갔다 하면서 수업이라도 듣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담당수학교사는 마치 참관만 하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에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실습하는 교생도 아니고, 그럴거면 왜 협력강사를 신청했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기초결손학생이 있어도 가르칠 수 없었다.
담당수학교사는 선수학습은 학생이 미리 해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계산문제를 왜 자신이 다시 수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다.
계속 잠만 자는 민재가 있었다. 그 학생은 중2때까지 운동을 하다 전학을 왔다고 했다. 그래서 수학은 전혀 모르니까, 그냥 엎어져 자는 게 낫다고 했다. 다행히 이 수업시간은 모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별 토론시간이 있었다. 매번 토론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여느 문제풀이식 수업은 아니었다.
중학수학의 1학기의 맨 처음은 항상 새로운 수를 배운다. 중3에는 맨 처음 배우는 새로운 수가 무리수 루트이다. 그리고는 루트의 성질, 대소관계, 사칙연산, 활용문제를 풀게된다. 덩어리로 크게 보면 사실 어렵지 않은데, 작은 계산문제 때문에 학생들이 크게 보질 못한다.
민재는 처음 보는 나를 낯설어 했다. 안다. 처음 보는 여자가 보조교사랍시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친구처럼 다가가 마음을 여는 데 주력했다. 야구를 하던 친구였는데 허리를 다쳐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나는 운동하는 친구가 머리가 좋다고 해주었다. 그것도 사실 맞는 이야기였으니, 민재는 조금은 귀를 기울여 주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인식하고 정확한 동작을 구사하는 것은 사실 대뇌피질의 두정엽의 주된 활동이다. 두정엽이 발달하려면 여러 감각이 협응을 잘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열심히 하면 사실, 여러 가지 몸의 기능을 계발시키게 된다.
수업 시간이 끝날 때, 그 친구에게 수업 끝나고 바로 매점가지 말고, 친구랑 쓸데없이 수다떨지 말고 5분만 복습하라고 했다.
그 5분이 다음 수학시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 준 숙제는 겨우 한 바닥정도니, 미루지 말고 지금 풀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집에 가서 1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난 어느 날, 나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민재는 머리를 긁적이며,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자 옆에 있던 여학생이 입을 삐죽이면서 말한다.
“꿈이 뭐냐고 좀 그만 물어보면 안 돼요? 지금 말한다고 그렇게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물어보는지!”
‘아, 그래, 네 말이 맞지. 나도 그랬었어.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피아노랑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지. 그리고 피아노를 나중에 배우려 해도 쭉 이어지지 못했지.
그래서 뭘 할지 모르니까, 뭘 할지 생각이라도 해보라는 거야. 네 말대로 너희는 뭐가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미래에 너희가 무엇이 될지는 너희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는 이렇게 눈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말을 했었어야 했나. 꼰대같아 보일까봐 말을 아꼈다.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졸업하고 일반 공립중학교로 진학한 여학생이었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로 갈 거니? 특성화 고등학교도 교과점수 들어가는데, 출결사항도 보고, 봉사점수, 자율동아리 같은 학교 내 활동도 점수화해서 들어갈텐데.”
그러자,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말했다.
“수학점수 없는 음악과가 있는 고등학교로 갈 거에요.”
그 친구는 밴드를 하고 있었다. 그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시간에 음악관련한 악보를 본다.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수학시간에 수학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니?”
그 아이는 루트따위 배워서 써 먹을데도 없는데, 배워서 뭐하냐는 논리로 나갔다.
“그럼 이 시간을 그냥 버리는 것이잖니. 그리고 배워서 쓸모없는 지식은 없단다.”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추상적인 답변을 해 버린 나는 그 아이의 신뢰를 잃은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보던 음표책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래, 맞아.
꿈을 계속 다그치는 어른들의 대답에 지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 보아야 이것 저것 알아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야.
사람이 해 본 경험이 있어야 생각이란 걸 하게되지. 그래야 행동하게 되고, 행동을 해야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지.
그래야, 경험이 쌓이는 것이고, 그 경험 속에서 네가 만들어지는 거야.
하지만, 작은 것이라고 시시하다고 안하면, 그 속에 있을지 모르는 작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거지.
그러니, 혹시 모를 기회일지 모르니, 해보는 거야. 무엇이든, 해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지.
혹시 알아? 너도 모르는 수학천재가 니 안에 있을지.
그래서, 니 안에 있을지 모르는 작은 가능성을 위해 어른들은 그렇게 너한테 해보라는 거란다.
내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너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나는 단지 그걸 알려줄 지나가는 어른이야. 그래서 네가 내 얘기를 지나칠 수도 있고, 경청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야. 나는 그저 네게 지나가면서 한 마디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란다.
꿈이란, 네가 되고 싶은 직업을 생각하란 것이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란다. 그리고 네가 교과과정을 잘 이수했다면 말이야, 그 일은 아마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일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