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부탁한다고 다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야.
같은 연령이라도 유난히 의젓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린 친구도 있다. 물론 성인들도 같은 연령이라고 해서,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더 성숙한 건 아니다. 굳이 어른과 꼭 비교해야 하냐 이런 생각이 들지만, 예닐곱살 먹은 아이들과 성인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 강조하는 가 보다.
블록으로 잘 만드는 남자아이, 그림을 무척 잘 그리는 여자아이, 재미있는 놀이를 잘 아는 아이 등등 자신의 무기가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잘 어울려 논다. 서로 잘 못한 것이 있어도 금방 화해하고 용서해 준다. 그런데 아이들이 혹 할만한 장점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저냥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다.
블록으로 뭔가 멋지게 만들었나 보다. 작은 블록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큰 블록이 아니라 점차 작은 블록으로 만들고 있다. 사실 작은 블록은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 작은 블록을 더 선호하기는 한다.
만들어 놓은 블록 장난감은 뭔가 허술하지만, 움직이기도 하고, 좌우 균형도 맞는다. 아이들에게는 네모난 모양이 아니라, 멋진 무엇인가가 되어 있다. 그걸 본 찡이는 태기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태기는 조금 있다가 만들어 주겠노라고 하지만, 찡이는 기다릴 수 없다. 계속 옆에서 나는 왜 안 만들어주냐면서 보채기 시작한다. 태기는 점차 기분이 나빠져서 안 해준다고 한다. 사실 태기는 많이 참은 거다. 자기도 놀고 싶을 텐데, 유치원에서는 도와주라고 배웠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아이들은 배우면 바로 실천한다. 잊는 속도가 익히는 속도보다 빨라서 그렇지, 실천은 어른보다 더 잘한다.)
결국 찡이는 나에게 와서 태기가 안 만들어준다고 이른다.(나라도 안 만들어주겠다.) 태기가 안 만들어준다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될 것을 그 조금을 못 참아서 친구가 만들어 주지도 않고, 게다가 같이 놀고 싶지도 않아 졌을 테고. 결국 총체적 난국이 된다. 자기 잘못은 모르고 무조건 태기만 잘못했다고 크게 소리 지른다. 그러면 또 태기도 억울하니까, 계속 옆에서 만들어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한다.
진짜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순간이다.
어떨 땐, 가끔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내 기준에서는 별 거 아니지만, 애들에게는 정말 큰 일인 것이다.
조용히 불러 얘기한다.
친구에게 부탁 한다고 친구가 꼭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한쪽에만 얘기할 수 없다.
다른 애에게도 말한다.
해 주기로 했으면 해 주고, 친구가 계속 조르면 한 번만 말하라고 얘기하라고.
아이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깨우치지만,
열 개의 문제를 만든다.
아이들이 적어지니, 이렇게 저렇게 묻혔던 문제가 더 확연히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잘하는 아이에 가려져서 안 보였고, 특수한 요구가 많은 아이들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아이들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은 항상 많은 품이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