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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들어주고 해결해 줄게, 그런데도 문제 생기면 알지?

내가 했던, 가장 말없이 내 지지자를 만드는 방법

by 배써니

요즘 국민주권정부가 하는 슬로건이다.

눈만 뜨면 새로 올라오는 대통령 대변인의 브리핑과 획기적인 정부의 행보에 정말 뉴스다운 뉴스를 보는 것 같다. 이제까지 살면서 뉴스가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적은 처음이다.


이전 대통령과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경청이다.


경청은 소통의 가장 처음 단계이다.

자신의 말만 하고 그것도 녹화해 놓은 것 틀어주고 끝이었던 불통의 화신과는 너무 다른 방식이다.




21대 이재명 대통령 출처: 나무위키



경청을 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자신의 감정, 문제, 해결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문제인식까지만 그치는 경우가 제일 많긴 하지만, 감정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수다'가 하찮은 것 같지만 가장 감정을 다스리는 데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도 소통을 했지만, 현 정부의 소통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경청 속에서 문제를 인식한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를 하면서 간간히 질문을 한다. 이전의 숱한 시장과 도지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대통령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 빠르게 판단한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사후 확인까지.


사후확인의 책임자와 권한까지 모두 지정해 주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 짧은 쇼츠 안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제기한 사안이 개선 되어야 하는 것이면 적극적으로 해결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빠르게 적임자에게 넘긴다. 그리고 바로 다른 사안으로 넘어가 그 일에 집중한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을까?


현 대통령은 자신의 백(back, 뒤, 학벌과 지연 같은 배경 등)은 오로지 국민밖에 없다고 말한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권리를 위임받아 대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일을 하니까,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줄 얘기는 다 들어주지만, 날카로운 질문으로 사후 책임까지도 국민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인드로 처리 하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다 해줬는데, 그래도 문제 생기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 한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의 대우도 이렇다 한다. 연기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내쳐진다고 한다.(홍콩 배우 성룡의 인터뷰에서 봤는데,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수학 강사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는 거의 남자였던 시절에, 나는 최하위 아이들만 모아놓은 반을 맡았다. 소위 학원의 '전기세'를 내주는 학생들이랄까. 학원에서는 등록을 받아주기는 하지만, 가정에서 케어가 되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학부모의 간섭도 별로 없어 그냥 학원에서 시간만 때우다 가는 학생들만 모아 놓은 반이 있었다. 아무도 맡지 않는 반이었고,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담당 반이 되었다.


그 당시 학교 한 반 인원은 50여 명이던 시절, 학원은 20명에서 30명이었다.

내가 맡은 인원은 10-15명 정도 되었다. 그 소수 아이들은 아주 다양한 사연으로 집에서는 거의 케어가 안 되는 아이, 또는 성적이 최하워권 아이들이었다. 수학 8점을 맞고 온 아이, 조손가정이라 학업과는 담쌓은 아이, 부모가 중국에 작은 사업체 운영해서 몇 달씩 집을 비워 있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 등이었다.


수학 반 평균점수 25점.


그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나는 생활지도부터 학습지도까지 모두 했다.


학교, 학원, 집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학생들.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쉬는 시간마다 들었다. 학원에 오면 총 3개의 과목을 들으니, 쉬는 시간은 2번이다.

쉬는 시간은 학교와는 달리 5분이었다.


매일 하루 10분씩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학생들은 그 10분을 위해 학원에 왔다.

그렇게 학생들의 지지를 얻어, 본 수업시간에 집중까지 이끌어 냈다.


일단, 수업을 제대로 듣기만 해도 문제를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내주고, 숙제를 내줬다.

숙제를 해 오면 응당 폭풍칭찬과 격려를 해줬지만,

반대로 안 해오면 풀 때까지 끝까지 남겨서 풀고 가도록 했다.(지금은 당연하지만, 그 때당시는 그냥 걍의만 하고 개인공부는 학생들에게 맡기던 시절이었다.)


별별 핑계를 다 대도, 다 할때까지 집에는 갈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 문제 안 풀려고 뻗대지 말라고 했다.

(이건, 학원과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때 당시에는 학원이 새벽 1시까지도 열고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야 2시간 10분 정도인데, 밤 9시, 10시까지 학원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학생들도 지금 학생들과는 달리 매우 순수했던 것도 있다.


이렇게 4개월을 학생들과 씨름한 결과, 학생들 한 명 한 명 모두 성적이 올랐고, 나쁜 짓이나 하지 말라고 보내던 부모님들이 감사하다고 선물도 챙겨주셨다.


확실히 진심은 통한다는 걸 이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나도 그때는 백이 학부모님들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아무도 보지 않던 학생들을 맡고, 내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열정이 많았던 20대였구나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성적향상을 기대하지 않았던 학생들과 학부모님의 지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가치가 생겼달까.


내가 맡은 반이 성공을 거두자, 학원에서는 반을 증설했고, 학원생은 2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반은 다른 남자 강사로 대체되었다.


나는 다른 팀에 배치되었으나, 나의 입지는 약화되어 이전에 했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마, 나는 그때 내가 필요할 때 적절히 역할을 했었던 것 같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을 잘 죽이는 군인이 최고 대우를 받지만, 평화시대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같달까.




그래서 국민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 대통령이 답답해서 소통하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경험 많은 사람을 원하는 염원이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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