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감이 많아도 싸우고, 공간이 넓어도 싸운다.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요건.

by 배써니

과거 30여 명이 쓰던 드넓은 교실을 이제는 몇 명이 쓴다. 불과 몇 년전 만해도 자리 가지고 다투고, 놀이감 가지고 다퉜다.


그래서 더 넓게 자리를 마련해주면, 더 많은 놀이감을 제공해주면 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 생각했었던 적도 있다.(물론 이건 뭘 모를 때 하던 생각이다.)


지금은 어떻게 해도 티격태격 거린다.


옆에 가깝게 붙어 앉는다고 뭐라고 그런다.


레고블록, 자석블록, 자석벽돌블록, 파이프블록, 펑핑블록, 카프라블록 등등 온갖 블록이 바구니에 넘쳐 나는데도 친구랑 티격댄다.

놀이감도 많고, 공간도 넓어

그러면 교사란 사람들이 왜 그런 걸 안하냐고 반문 할 것이다. 떨어뜨려 앉혀도 보고, 불러다 훈육도 한다.


그때 뿐이다.


아, 혹시 이 글을 오해 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교사를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고.

유아가 이상하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애들은 기본적으로 아직 조절이 힘들다.

자기가 원하는 걸 정확히도 모른다.

그래서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래서 나름의 감정데이터를 쌓고, 그 데이터로 행동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런 행동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이게 계속 쌓이면

그때서야 조절할 뭔가의 기준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시행착오가 티격태격이다.


시행착오가 없으면 아이들은 배우질 못한다.

그런데 이 시행착오에서 오는 부산물이 제법 손이 많이 간다.


훈육과 관찰, 적절한 타이밍의 개입은 가장 기본 전제다. 만일 그 과정 중에서 약간의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걸 감수하기 싫어 아예 원천봉쇄를 한다. 갈등의 원인을 없애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부모의 불합리한 요구일지라도 최대한 들어주기.


그렇다고 부모로서 아예 민원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제안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 또는 내 아이 일이지만, 다른 아이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지를 생각한다면 학교 입장에선 안 들어 줄리 없다.


옆 친구가 불편하면 떨어져 앉으라고 기해준다. 그러면 그건 싫다고 말한다.


같이 놀고 싶은데 친구가 자기 마음대로 해주지 않으니 그러는 것이다.


'미안해'라고 얘기해주지 않아서, 또는 꼭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계속 따라다니며 따진다.


아이들을 보면 정말 솔직하다.

우리 어른이 하지 못 하는 진정성 있는 얘기를 T성향이 무색하게 팩트폭격을 날려 준다.


정확히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건 맞는데,

그걸 가르쳐야하는데,

나는 아이들에게서

감정의 원초적인,

날 것 그대로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의 표현을 배우고 있다.


그래,

친하게 지내고 싶어

가깝게 붙어서 꼬치꼬치 캐묻는 거지.

네가 싫어서 그랬겠니.


맞아.

많고 많은 놀이감이 있지만

네가 만든 걸 가지고 싶어서

달라고 그런거지.

빼앗고 싶어 그런거겠니.


좋아.

미안하단 말이 듣고 싶어

따라다니면서 미안해라는 말 해달라고 졸랐겠니.

상처받은 마음

진정으로 위로 받고 싶어 그런거지.


교육적으로는 유아들에게 교과서적인 말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서 진리를 배운다.


나는 언제쯤 나에게 솔직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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