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부장님
공립유치원 임용고사를 같이 준비하던 정교사선생님과 가끔 연락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난다.
나와는 다르게 이제는 어엿한 보직을 맡아 부장도 하고, 대학원도 가고, 자기 계발도 하시는 영자 씨(가명)다.
가끔씩 통화하면 나와는 다른 신분 차이로 인해 언쟁을 벌일 때가 있다. 아니, 신분보다는 입장차이랄까.
그래서 항상 이 분하고는 연락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화의 마무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참, 특이하게도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한다.
사회에서 만나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과 이렇게 길게 연락하는 사람은 바로 이 분이다..
나는 방학이 되면 정말 바쁘지만,
정교사인 영자 씨는 41 조연수로 재충전과 다음 학기 준비 시간을 갖는다.
방학으로 앞당겨진 시간에 출근하면서 아침에 전화를 걸었다.
너무 바쁘니까, 연락을 못할 것 같기도 하고, 학기 중이면 정교사는 또 바쁠 테니, 편안하게 전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해서 전화를 걸었다.
참... 나이 드니, 젊었을 땐 안 하던 전화를 하고,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
방학 중인데, 유치원에 있다는 것이다.
읭?
내가 사는 지역은 방학 중 방과 후 과정을 ALL DAY로, 방과 후 과정 담당인력이 맡는다.
그런데, 영자 씨의 지역은 방학 중에 오전 정교사가 운영하던 역할을 대신할 인력을 따로 뽑는다.
물론 오전(방학 중 대체인력), 오후(기존 방과후과정 담당인력) 모두 돌봄으로 이루어진다.
정규교과과정은 아닌 것 맞지만,
우리처럼 시간을 앞당겨서 한 사람이 모두 맡지는 않는다.
그런데, 방학 중 오전 돌봄을 교원이 해도 된다.
신청을 받고, 시급도 나온다. 물론 그냥 시간강사보다 1.5배 받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41 조연수를 들어가지, 교원이 시급을 받고 방학 근무를 하지 않는다.
방학 중 돌아가면서 나오는 당직근무도 없애달라고 하는 판에
자진해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월급 외로 시급을 받는 것인데도 신청하지 않는다.
(하긴, 학기 중 행사며 교육과정 진행하고 나서 계속 방학근무를 한다면 나도 방학 때 쉰다고 할 것 같긴 하다.)
영자 씨가 너무 대단해 보였다.
말로는 돈 더 나오고 좋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교원에게 주어지는 어떤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그냥 할 일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방학 때니까, 특별한 이벤트나 아이들의 교육과정에 특별히 더 힘을 쏟진 않는다.
(유아교육에서 교원들은 교육과 돌봄 중 교육을 강조하는 면이 많다. 유아교육을 유아 돌봄이라 보는 시선에 상당히 민감해한다.)
그래서 자신은 그냥 돌봄을 하면서 조금은 편하게 아이들을 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초긍정 마인드인 영자 씨.
유아교육하기에는 너무나 기가 세다.
가끔 그 기에 눌려 열등감 폭발로 이어지긴 하지만,
그조차도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경쟁심도 엄청 많아서 잘 된 사람을 보면 질투를 하지 않고, 그냥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를 본받으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려 노력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 주지만,
나의 열등감으로 폭발할 때는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그녀 특유의 위트로 나를 지그시 누르며 감싸 안는다.
어떤 때는 서운한 감정도 있지만,
나는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걸 알고 있기에 수긍해 마지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도 부족하지만, 어쩌겠냐며.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면서, 서로 버텨냈으니 우리 모두 승자라 말해준다.
작년엔 그녀가 전화해 만났고
올해는 특이한 그녀에게 전화해 올해도 만나기로 했다.
나는 우리의 만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긴 하다.
이제 10년 째니, 앞으로 10년은 더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