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힘든지.
명절을 끼고 병가와 연차를 냈다. 그리고 아주아주 많은 계획을 짰다.
물론, 계획한 대로 모두 다 끝낼 수 있느냐 묻는다면 확답은 할 수 없다. 그저 그런 행위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를 바랄 뿐.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절대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계획을 세우기는 한다.
미뤄뒀던 은행업무, 집 정리하기, 옷 정리하기, 냉장고에서 호시탐탐 뿌리내리고 있는 곰팡이 박멸까지.
완벽히 다 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계획이라도 세워놔야, 그래야 하는, 아주 게으른 인간이다.
유치원 일을 하지 않으니, 집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자만했다.
평소에 출근하면 유치원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쳐내고 있었고, 퇴근하면서 나는 집사와 부모의 일, 그리고 자기 계발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연휴의 첫 스타트 금요일에 누웠는데, 어느새 일주일이 가버렸다.
나는 그냥 잠꾸러기 같았다. 자도 자도 끝이 없었다. 독이 든 사과를 한 입 먹은 것처럼 누운 상태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이러다가 출근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밥 먹자고 하니, 그제야 몸이 일으켜졌다.
하루에 한 끼만 겨우 먹고, 계속 잠만 잤다.
낮에 잤으면 밤에는 잠이 안 와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밤에도 잠이 왔다.
내가 계획한 모든 일들은 그냥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잡으려 하면 그냥 모래를 집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렸다.
겨우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부랴부랴 옷과 책들을 정리했다.
사람들이 뭔가 시작하려면, 정리부터 해야 한다고 얘기하던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조금씩 정리하니, 몸이 움직여지고 계획이 실행된다.
그러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교실에 밀려드는 아이들.
재잘재잘 대면서 그동안의 소회를 저마다 풀어댄다.
컴퓨터를 켠다. 메신저를 켜니 화가 난 것 같은 빨간 숫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업데이트며, 보안 점검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전자문서 시스템 나이스에 접속했다. 문서 결재 올려놓은 것이 결재가 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월말이라 정리해야 하는 것도 많고, 다음 달이 새 학기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첩첩산중이다. 게다가 연차까지 쭈욱 쉬었으니, 그동안 처리했어야 하는 것도 덤으로 살짝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내게 와서 계속 말을 건다. 한 글자 쓰고, 말하는 아이 한 번 쳐다보고, 두 글자 쓰고, 아이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해 준다.
8시간 내내 아이들과 있으니, 이런 문서 확인, 문서작성 따윈 집중해서 할 시간은 없다. 짬짬이 해야 한다. 실수가 없을까? 한 번이고, 두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그래도 실수가 있다.
결재라인 빼먹었네.
어우, 과제카드를 다른 걸로 했잖아?
마침표를 안 찍었네.
파일을 첨부하지 않았구나.
시간과 날짜가 틀렸어.
그럼에도 눈은 컴퓨터를 보면서 입은 아이들에게 얘기한다.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에 그런 업무를 할 수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집에 가서 해야 하나? 아니면 늦게까지 문서작업을 하고 가야 하나? 초과근무는 당연히 달 수 없다.
그 와중에 아이들 갈등 중재, 간식업무, 점심지도, 갑자기 코피 나는 아이도 있고, 아이들 놀이할 교구교재 준비를 해야 한다.
일주일간 앓아누워 있다시피 있는 동안, 나는 참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누워서 계속 잠만 잘 수 있을까. 밥도 하나 못 챙겨 먹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번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항상 나는 자신을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갔다 온 나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구나.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해서 밤 12시 넘어서까지 나는 계속 계획한 일을 끊임없이 했다.
이전에는 계속 이런 생활을 해서 피로가 익숙해졌나 보다. 한국인치고 이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오늘 하루 나는 나에게서 죄책감을 덜었다.
쉬어보자.
쉬어보면 내가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었는지 객관화가 될 것 같다.
쉬어도 평소랑 비슷하거나 같다면 그때 죄책감을 가지자. 죄책감은 푹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 눈엣가시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