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캐릭터에 빠진 딸내미가 부산에서 열리는 BIC(Busan Indi Conect)에 가고 싶다고 징징댔다.
8월 25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곳에 혼자라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자애 혼자서 보낼 수는 없었다. 혼자서 갈 수 있겠냐고 재차 물어봤지만, 강경히 혼자라도 보내달라고 했다.
옆 동네도 아닌 장장 33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에 혼자 가겠다니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본다. 딸내미는 그래도 된다고 한다.
졸지에 게임덕후와 함께 부산까지 일요일 당일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벡스코로 가려면 집에서 광명역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려 부산역에서 1001번 버스를 타고 사십 분 정도 가야 했다.
딸내미는 나와의 간만의 여행, 그리고 게임페스티벌에 간다는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4시부터 나를 깨웠다.
학교 등교할 때는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는 녀석이... 너무 기가 차지만, 속으로는 '저럴 때가 좋을 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버스시간과 기차시간을 맞추느라 온 신경이 쏠려 있느라, 연신 버스노선 시간을 체크했고, 딸내미는 트윗에 BIC에 간다고 신나게 올리고 있었다.
나름 여행한다고, 노트북을 가져갔으나, KTX에 오른 이후 기억에 없다. 처음 기차를 타고여기저기 둘러보다 해가 떠오르는 바깥 풍경을 몇 번 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다음 역이 부산역이다. 2시간 20분 만에 도착했으니 어쩌고 할 틈도 사실상 없었다. 디지털노매드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좋니?
기차에서 내려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간 뒤에서 으리으리한 전시장 건물에 내렸다.
부산 벡스코 건물
예전에 서울 압구정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지하철을 잘못 타서 고생한 적이 있어서, 딸내미는 그럴 까봐 매우 신경을 곤두세웠다.
잘못 타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예약된 기차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마 더더욱 긴장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계획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했다. 새벽부터 초코라테 한 잔만 마신 딸내미가 걱정돼서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에 뭐라도 먹을 것을 권했지만,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 딸내미는 얼른 가자고 독촉했다.
입장료는 현장구매가 청소년 팔천 원이었고 성인은 만원이었다. 청소년증이나 학생증이 있어야 할인을 해주었다. 딸내미는 가지고 있던 청소년증을 내밀었다. 잘 챙겨 왔군.
입장을 하자마자 나를 내버려 두곤 산나비 부스를 바로 찾아갔다. 마치 이산가족을 만나듯 바로 찾아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산나비부스에서 미공개된 게임을 해 볼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게임을 만들었던 팀장과 직원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세팅해 주었고, 한편에서 포스터와 스티커를 굿즈로 팔고 있었다.
딸내미는 신나서 브로마이드 3종 세트를 한꺼번에 사달라고 했다. 산나비 트윗을 하는 또래를 만나서 나와 떨어져 부스를 탐방하러 다녔다.
산나비에 대해 잠깐 소개해 보자면, 주인공은 '준장'님이라고 불리는 군인이다. 귀여운 딸을 데리고 살았었다. 그런데 딸이 적에 의해 죽임을 당해서 복수(?)를 펼치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꽃중년을 좋아하는 딸내미의 취향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빠의 따뜻하지만 딸을 위해 목숨을 걸만큼 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대리만족하는 것 같았다.
산나비는 은근히 인기가 많았다. 연령층도 다양해 보였다. 아마 그래픽보다는 유치하지 않은 스토리라인, 그리고 아포칼립스적인 시대배경과 요즘보기 힘든 딸을 지키고자 목숨을 무릅쓰며 적을 처치하는 사건들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들이 많이 반영되어서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여러 군데 구경하다 간단한 게임이 있는 부스 위주로 돌아다녔다. 게임부스에서 제시하는 조건의 게임미션을 완료하면 스티커도 붙여주고 스마일 딱지도 주었다. 그 스마일딱지를 모아서 경품응모도 하고, 기부도 하고, 굿즈와 교환하기도 했다. 일종의 게임머니랄까.
산나비 부스에 스마일 딱지를 주는 스폿 알림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떡메모지, 부채, 볼펜, 스티커, 파일꽂이 등을 얻으러 다녔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간식이 좀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 굿즈교환도 좋지만, 간식도 교환할 수 있었으면 행사장 바깥에 나가서 요기를 하러 왔다 갔다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의자도 놓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 같은 저질체력은 게임을 4개 정도밖에 못했다.
게임을 클리어했더니 주는 귀여운 홍보물
내가 했던 게임은 여우는 오늘도 친구를 구했다와 VR게임으로 뛰는 게임이었다. 나름 운동도 되고, 재미있었다. 여우가 친구를 구하는 게임은 일종의 퍼즐게임인데, 간단해서 계속하게 되었다. 스티커도 받고, 자석집게와 키링도 선물로 받았다. 왜인지 잘했다고 칭찬받으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올 때는 고속버스로 왔다. 역시 기차보다는 떡실신해서 자기에는 버스가 최고다. 버스차시간 때문에 폐막식 하는 것은 못 보고 왔지만, 딸내미가 좋아하는 산나비 부스는 3번이나 갔다 오고 게임을 해서 재미있었다고 신나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한 번도 안 깨고 계속 잠을 잤다. 눈을 뜨니 꿈을 꾼 것 같다. 일요일을 이렇게 알차게 보내다니.
나는 하루를 딸내미와 함께 보내면서 나의 중학교생활을 생각했다. 나는 잠시 중학생이 되어 딸을 친구로 바라보았다. 우울하고 불안하기 일색이었던 내 중학생 생활과는 달리, 나의 딸에게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를 만들어 준 것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