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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Oct 06. 2023

칠판없고 프린트 출력도 눈치 보는 떠돌이 기초학력교실

애들 잡아다 시간 때우기용인가요?

오전에는 '협력강사'라고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용도이다. 반면에 오후에는 기초학력강사라고 3월 즈음 보는 진단평가에서 미달인 아이들을 각 반에서 모아서 그 아이들의 수학과 국어를 가르치게 하는 사람을 뽑는다. 그래서 오후에는 단독으로 내가 반을 맡아 아이들과 공부를 시킨다. 기초학력교실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현재 배우고 있는 내용을 앞질러 갈 수 없다. 어차피 아이들이 기초학력이 되지 않아 현행 학년의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어 기초학력대상자가 된 것이니 선행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과학교실이미지


중요한 것은 현행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7월 즈음 다시 진단평가를 본다. 아이들은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각 반에서 수준이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이 오는 것이기에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다. 저학년은 그래도 괜찮은데 벌써 3, 4학년 정도면 하기 싫어서 별별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다.


아이들도 학습동기가 매우 없는데, 시간표도 바뀐다. 물론 학교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리 고지받지 못한다.


  어느 날 A학교에서 교실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 4층건물에 맨 끝의 교실에 먼지 쌓인 책상과 의자를 신나게 닦아 놓고, 칠판도 있어서 설명할 때 요긴하게 썼었다. 맡은 학년은 4학년이고 6명 정도여서 개개인 설명해 주는 것이 한도가 있다. 그래서 중요한 개념 등은 칠판에 써 놓고, 학생들이 물어보면 칠판을 가리키면서 이해를 도왔다. 나 같은 강사 따위의 말은 반영되기 힘들고, 그런 교실을 주어진다는 자체가 사실은 아주 큰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장마 때문에 교실에 물이 새서 보수공사를 하는 동안 내가 쓰던 교실을 내주어야 했다.


그래, 방과 후에 한두 시간 쓰는 데, 그 큰 교실을 썼었으니, 교실을 내주는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학실을 쓰라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과학실은 과학실을 담당하시는 실무사선생님이 있으셨다. 과학기기는 매우 위험한 것이 많기도 하지만, 다음 날 수업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내가 가서 지우개 가루며, 실험기기 등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할 것이다.


칠판? 쓸 수 없다. 있긴 하겠지만, 교실과 다르다. 칠판과 매우 많이 떨어져 있다. 무용지물이다. 의자는 또 어떠한가. 등받이 없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애들이 집중해서 잘할 수 있을까? 과학실에 전시된 여러 가지 과학물은 또 어떠한가. 가뜩이나 아이들이 산만한 애들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이전에 쓰던 교실은 4층 맨 끝교실이라, 바깥소리와 차단돼서 그나마 애들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1층이 아니라, 일단 4층에 오면 바깥에 이탈하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1학기에 열심히 4층 교실을 쓰다 2학기에 과학실을 쓰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에 남는 교실이 없냐고 하니, 기초학력사업을 맡으신 부장님은 없다고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 교실에 모여서 해도 되지 않을까? 이전 학교에서는 그렇게도 해봤는데...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연구실에 있는 컴퓨터와 프린트를 쓸 때에도 눈치를 많이 줬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구실 문단속을 맡은 교직원이 있었는데 3시 40분에 문을 잠근다는 것이다. 수업 끝나고 와서 프린트를 했더니 4시 넘기도 하고 5시가 되기도 했었던 적이 몇 번 있었더니, 부장선생님이 프린트할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까지 부탁하고 받으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하지 않고, 복사만 몇 장 간간히 해서 아이들에게 보고 자신이 쓰라고 했다.


환경을 좀 갖춰 놓고 나서 그리고 뭘 하라고 할 것이지, 그냥 달랑 사업비만 받아서 사람 뽑아 놓고 필요한 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건 학생들에게도 매우 안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은 어떤 환경에서도 열심히 한다. 과학실에서 하는데도 꾸준히 나오고, 심지어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온 날에도 빠지지 않고 나와서 공부를 하고 간 학생이 있었다.


그 학교는 시설이 낙후되어 그런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다문화, 탈북, 기초학력 등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사업을 많이 했다. 나는 위촉 원서를 내기 전, 아이들을 위해 여러 사업비를 신청하는 모습이 무척 아이들을 위하는 학교인 것 같아서 좋아 보였다. 그런데 딱히 아이들을 위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 학교였다.


과학실이 2개나 있어 이번주는 1번 과학실, 다음 주는 2번 과학실. 이런 식이어서 짐을 들고 다녔다. 짐을 옮기면서 다니느라 캐리어도 샀다.


뭔가 사업을 진행하려면, 실행자의 말도 좀 들어주자.


정말 애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사업했다고 생색내려고 그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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