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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Nov 20. 2023

수학여행에서 가져온 것

아프면 개고생

얼마 전, 중3 수학여행을 갔던 아들이 어마 무시한 녀석을 달고 왔다. 아이는 집돌이라서 어디 나가는 걸 원래 싫어하던 아이였다. 수학여행도 가기 싫다는 걸 이것도 기회 아니겠냐 싶어서 가라고 했다. 억지로 가라고 하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수학여행은 재미있었고 새로운 걸 발견하고 친구들과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적극 권유 했다.


하긴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소통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면대면으로 같이 지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겠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목금으로 일정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주말을 지내고, 여느 집들처럼 등교를 위한 치열한 월요일을 맞았다.


전날 늦게까지 놀다 못 일어나는 일이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등짝스매싱을 날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느린 반응과 짜증이 섞인 대응은 뭔가 이상하다는 촉이 왔다.


-머리가 어지러워요. 못 일어나겠어요.


이마를 대보니 불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화들짝 놀라서, 체온계를 대 보니, 39도를 찍었다. 미쳤다.


부리나케 소아과로 향했다. 이미 애 학교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오전 시간 때는 영유아들이 많고 오후에 좀 초중등학생들이 있는 편이었다.


알고 보니, 현장체험학습에서 독감이 퍼진 것이었다. 수목금 중 수요일은 중1학년이 현장체험 나가고, 목요일은 중2학년이 나갔다. 그래서인지 그 중학교 학생이 소아과를 다 채우고 있었다.


독감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아이는 A형 독감 양성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타미플루 처방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나도 출근해야 해서 아이를 계속 케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급여로 링거주사를 맞혔다. 소아과 의사가 링거를 꽂아주었다. 혈관이 잘 보여서 다행이었다. 두툼한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오래 다닌 병원이라 믿음이 갔다. 한편으로는 링거를 자주 처방하지 않으니 당연히, 주사바느질이 익숙하진 않겠지 생각도 들었다.


열이 나니 당연히 입맛이 없다. 억지로 죽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소아과에 온 어떤 남자는 왜 독감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지 않느냐고 토로한다. 각자도생이라며 정부 탓을 한다. 하지만 나도 독감예방주사는 맞지 않았다. 내가 조심하면 독감에 안 걸릴 거라는 생각이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 계속 잠만 잤다고 했다.


내가 아이 수학여행에서 기대한 건 이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아이가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 

그깟 현장체험학습에서 뭘 얻어 온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냥 사지 멀쩡히 왔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항상,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기를,

그리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낸 승리자이기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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