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나의 착각이었네.
우리나라 많은 청소년들이 학업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학업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 사춘기가 그래도 질풍노도처럼 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학생이면 흔히 다니는 국영수학원도 안 보냈다. 안 보내니, 오히려 학원이란 데가 궁금하다며 가보겠다고도 했다.
그래.. 너네가 의대나 카이스트 안 갈 거면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공부에 시달리지 않게 해 줄게.
그러면 괜찮겠지 했다.
그건 정말 나만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이 심각하게 운을 뗐다.
- 어머님, 좀 심각한 상황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아이가 화장실에서 자해를 했어요.
이 무슨 청천벽력이랴.
맑고 밝은 아이였는데, 자해라니.
나는 너무 놀라 조퇴를 쓰고 달려왔다.
아이는 학업스트레스 대신 다른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른 스트레스라는 것은 내가 보기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엄마인 내가 너무 가까이 있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내가 한 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딸은 그림 그리길 좋아해, 그림이 수준급이다.
컷만화도 그리고, 무엇보다 관찰력이 뛰어나 아주 작은 선만으로도 감정을 풍부하게 그려낸다.
이모티콘작가나 웹툰 작가를 생각해 볼만큼 말이다. 오히려 네이버 도전만화에 그려보라고 할 정도니까.
사건의 발단은 과학수행평가를 망쳐서 그랬다는데, 나는 그게 핑계 같다.
그림과 커뮤니티에 푹 빠져 있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급기야는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한 것 때문에 싸운 것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진 말을 했고, 딸은 그날 그 사달을 벌인 것이었다.
상담을 받아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당장 상담소를 알아봐 예약했다.
하지만, 상담소는 검사만 계속할 뿐, 뭔가 시원하게 얻는 건 없었다.
학교에서 상담교사가 주 1회 상담을 하고, 외부 연계도 해 준다고 했다.
평소 학교 생활을 슬쩍 물어보는데, 쉬는 시간이면 거의 상담실에 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학급에서 친한 친구가 없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피하려다가 엄청 뭘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인생은 평탄하게 가는 법이 없다.
내 아이는 문제없겠지 안일하게 생각해서 뒤통수 맞았나 보다.
겉으로는 멀쩡한 내 아이.
속에는 뭐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새삼, 하늘의 별이 된 엄마가 무척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