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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Dec 31. 2023

공립유치원 방과후 시작 상황.

슈퍼 우먼, 능력치 개방할 시간.

방과후가 시작되는 시간. 유아들은 모두 중앙에 깔린 매트 자리에 앉아 있다.

두 반이 합반해서 방과후가 운영되어서 나중에 합치는 유아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수선하다.


소망반에 방과후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유아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한다.

사랑반 방과후 친구들이 와야 하는데, 아직 사랑반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소망반 입구에 걸쳐 있는 채로 소망반에 있는 유아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오지 않는 사랑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소망반은 조금 일찍 끝나는 경향이 있고

사랑반은 약간 늦게 끝난다.


사랑반 친구들이 줄을 서서 걸어온다. 사랑반 선생님과 인사를 할 겨를도 없다.

소망반으로 걸어오는 동안 아이들은 이야기도 하면서, 투닥거리기도 한다.


사랑반에서 놀이했던 물품, 만들었던 작품 그득이고 지고 오면 그걸 또 정리해 줘야 한다. 한두 명도 아닌데.


그렇게 우여곡절 아이들의 가방과 짐을 자리에 잘 정리하는지 봐주고 나서,

출결확인을 한다.


오후에 약을 먹여야 하는 유아도 체크한다. 한 10분 간이 정신이 없다.

소망반 교실에 들어오는 사랑반 유아들과 서로 인사하느라 또 부산하다.

자리 때문에 티격태격 다투기도 한다.

갑자기 소망반 유아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한다. 갔다 오라고 말하니, 다른 유아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모두 앉았다 싶었더니, 맨 뒷줄에 앉은 유아가 코피가 난다고 한다.(이 시기 유아들은 자주 코피가 난다. 혈관이 가늘고 피부가 얇기 때문에 가벼운 타박상에도 코피가 나기도 하고, 신체활동이 너무 활발하게 한 직후도 그렇게 코피가 난다.) 그러면 방과후 시작인사도 못 한채, 황급히 약통을 찾아 약솜을 찾는다. 코피가 심하게 날 때는 일단 휴지로 막고, 유아더러 잡고 있으라고 한다. 아이들은 구름같이 몰려들어 더 정신 사납게 군다. 약품통에 약솜이 없다. 탈지면을 조금 뜯어서 작은 상처용 멸균붕대로 돌돌 말아 작게 만든다. 솜으로만 막으면 혹시 피떡이 된 솜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면 그냥 탈지면으로 막아도 되겠지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제자리에 앉아보자고 하니, 자리가 좁다며 유아들이 티격태격거린다. 분명히 자리를 정해주었건만, 자리 가지고 마음에 안 든다고 자꾸 핑계를 댄다. 오전반 아이들은 5명씩 3줄로 앉는 자리를 6명씩 3줄로 앉으려니 당연히 좁다. 소망반과 사랑반 친구들이 섞여있기에 서로 더더욱 양보와 배려는 없다. 오전반선생님께 이 문제를 말했지만, 나를 이상하게 볼 뿐이다.


겨우 손유희와 간단한 게임으로 주의집중을 시켰다.

하지만, 말하기를 좋아하는 유아들이 서로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오늘 사랑반에서 만들기 한 거예요. 잘했죠?

-선생님, 어제 엄마랑 키즈카페 갔다 왔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 오늘 뭐 해요?


이런 얘기를 마구 한다.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 시장통이 따로 없다.

다시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방과후 처음 시작할 때, 항상 말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고 나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볼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 말하고, 방과 후의 일과에 대해 아이들에게 간단히 소개한다.

소개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주제와 관련이 없는, 자신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말을 계속 꺼내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는 말을 마구잡이로 하는 시기는 조금 지나,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말을 먼저 주의 깊게 듣고, 그에 맞는 대답을 생각한 후에 그런 후에야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어가는 유아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유아가 있다.

일대일 상황이면 조금씩 대화주제에 대해 환기를 시키면서 기다려주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은 한 명이고 20명이 넘는 유아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어떻게 다 지도해 준다는 말인가.


게다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해야 할 것도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획일적으로 하는 수 밖에는 없다.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개별성을 고려하면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도와주시는 보조인력이 있으면 숨이라도 쉴 수 있다.

내 옆반 선생님은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서 요실금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이번 방학 때 요실금 수술받으신다고 한다.


반도 섞이고,

맡는 아이도 오전 교육과정반보다 많고

보조인력은 예산이 되면 해 주고, 예산이 없으면 혼자 감당해야 하고

애로점이 많다.


다 모여서 이야기나누기를 하면 정말 재밌지 않고서는 잘 집중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도 못 듣는다.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유아들에게 일과를 소개하고, 놀이 시간을 준다.





방과후 교실에 들어가기 10분 전,

나는 온 기운을 끌어모아 모든 감각기관의 능력치를 개방한다.

 

유아들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잠들어 있는 시각세포를 깨우고,


유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혹시 급박한 상황을 생길지도 모를까봐

다리에 온 힘을 실어 놓는다.


아무일 없이 평온한 하루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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