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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Jan 21. 2024

유치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살아갈 최소한의 기술들.

인간과 동물은 무엇이 다를까요. 기본적으로 먹고, 싸고, 움직이는 똑같은 지구에 사는 유기체인데, 대체 뭐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지어 놓았을까요.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양육되는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자식에게 자신을 지키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자립을 위한 기술들을 본능적으로 습득합니다. 바다거북은 알을 깨는 순간부터 바다까지 힘겹게 기어갑니다. 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이렇게 혼자 깨어나 혼자 살아야 하는 동물은 사회적인 룰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군집을 이뤄 사는 생물들은 어떨까요.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미도 자기들만의 룰이 있습니다. 일개미와 여왕개미는 철저하게 일을 분담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서 잘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일을 하다가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처절히 버려집니다. 너무나 냉혹해 보이지만, 번식과 종족의 유지를 위해 DNA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대로 하는 것이죠.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 집단도 그들만의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새끼는  기본적으로 어미가 1차적으로 보호하지만, 다른 원숭이 집단이 위해를 가하면 자신의 종족을 지키려고 함께 방어하고 남은 새끼들을 키웁니다. 


서론이 무척 길었죠.


유치원에서도 같이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사회의 기초적 룰을 배웁니다. 가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가정에서도 일정한 시간에 자고, 정해진 공간에서 먹는 등 각각의 가정의 룰이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배워요.


화장실에서 배변처리 후 물을 내리는 것, 용변 후 손을 닦는 것, 손을 닦을 때 물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는 것, 화장실 나올 때 자신이 신었던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오는 것,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등입니다. 성인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기본생활습관'이라고 불러요. 


같이 쓰는 공용물품의 경우 자기가 쓴 것을 제자리에 놓는 것은 다음 사람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본생활습관이 잘 이루어진 유아들은 자연스럽게 '배려'라는 인성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올바른 습관을 기르는 것이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 습관으로 인해 인성이 길러질 기초가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이것은 교사나 주변 어른들이 해 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죠.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물론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해 준다거나 손을 씻을 때 씻겨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처음에 바른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해 주는 것이지 계속해서 교사나 주변 어른이 해주는 것은 그 유아에게 이 중요한 기본생활습관을 습득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만 0-2세 영아는 씻겨주고 하는 대부분의 일을 어른이 해 주어야 하겠지만, 유아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친구들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효과적인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회적 인지능력이 발달한 유아들은 '타협'과 '협상'을 할 줄 압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한 발 물러설 줄도 알고, 다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면 자신의 요구도 낼 줄 압니다. 이런 과정은 특히 놀이하는 상황에서 많이 일어나죠. 역할놀이를 하거나 규칙 있는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더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몸싸움을 어느 정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른들도 가끔은 몸싸움을 하잖아요. 특히 남아인 경우는 서로 힘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서로 자신이 더 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싸울 때는 온 힘을 다해 싸우기 때문이에요. 물론 과격하게 싸우는 경우는 말려야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투닥거리면 일정시간 동안은 서로 말도 안 하고 놀이도 같이 안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매우 짧아서 중재한 제가 민망해지는 경우도 많죠. 서로 절대 안 놀 것처럼 하다가 어느새 같이 놀이합니다. 특히 놀이할 친구가 그 친구밖에 없을 때는 서로 타협하면서 놀이하거든요. 7세 유아들은 혼자 노는 것보다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나이이기 때문이죠. 교사와 놀이하는 것보다 자기네끼리 노는 걸 좋아합니다. 교사에게는 칭찬받으러 오니까요.


여기서 문제는 부모님들이 아이들끼리 갈등으로 인한 작은 상처(?)에 민감해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머리에 큰 혹이 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놀이하면서 살짝 긁히거나 하는 것으로 그 대상친구와 놀이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죠. 앞으로 초등, 중등, 고등 등 점점 큰 사회로 나가면 인간군상을 다 만날 텐데, 그 정도도 감내하지 못하도록 과보호를 하면 이제 놀이는 못 시키게 되죠.


그러면 학습지를 하도록 하거나 앉아서 하는 개별활동만 할 수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개별활동을 시키면 시킬수록 그 아이는 더더욱 욕구불만이 쌓입니다. 같이 하는 놀이를 하고 싶어 더더욱 교사의 눈을 피해 장난을 치고 그러면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유아들은 많아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그렇게 못 미더우시면 집에서 홈스쿨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유치원에 시터를 딸려 보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치원에는 다문화유아도 있고, 심한 장난을 좋아하는 유아도 있고, 조용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정말 조용한 유아도 있답니다. 다양한 유아들 속에서 지내라고 유치원 보내시는 것 아닌가요. 요즘은 기관에 보내지 않으시면 양육수당도 나오고 부모수당도 나온다는데요.


마지막으로는 약속과 규칙을 제대로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게 당연한 것 같지만, 아이들에겐 힘든 일이거든요. 유치원 일과에서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아침에 등원해서 놀이하다 간식 먹고, 활동하고, 점심 먹고, 방과후 과정 활동하고 귀가하는 이런 루틴입니다. 이 루틴은 유치원에서 커다란 줄기와 같은 것이죠. 그래서 꼭 해야만 하는 일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점심을 안 먹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물론 아침간식을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면 점심을 거르고 싶어질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에 같이 해야 하는 규칙인 셈이죠. 자유를 허용한다고 해도 전체의 룰 안에서 선택하는 자유여야 합니다. 집에서처럼 먹겠다 하는 것만 먹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여기서 또, 부모님들이 걱정합니다. '먹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부모가 얘기했어도, 안 먹게 하면 방임으로 나중에 민원을 내시기도 하고, 먹으라고 권유하면 싫은 데 억지로 먹게 했다고 아동학대로 민원을 거시더라고요. 물론 아이와 잘 이야기해서 아이가 즐겁게 스스로 먹게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이런 사건이 본보기가 되어 다른 아이들도 자기가 싫은 음식(대부분 영양가 있는 음식)은 나도 안 먹겠다고 나서기 때문이죠. 한 번 생떼를 부리기 시작하면 이게 밑도 끝도 없는지라,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생활습관과 인성,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유치원 생활 속에서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리고 믿어주면 안 될까요? 그러다 정 안 되시겠으면, 가정보육하거나 기관을 옮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기관 원장도 아니고, 정식 공립 교사도 아니니 그저 참고로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기질은 천차만별인데, 그걸 견뎌내고 참아내는 과정 속에서 아이도 성장한다고 믿어야 부모님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녀를 맡길 수 있거든요.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잘 적응합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건 부모님들인 것 같아요. 내 아이가 뭔가 잘못되면 내가 잘못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었어요.


입소문 난 유치원에 둘째를 5살 반에 넣었는데,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38명이 입학했지 뭡니까. 그 작은 교실에 많은 아이들을 제치고 우리 아이는 관심을 받고 싶어 담임교사를 따라다니고 있었어요. 하지만 담임교사는 모른 체하시고, 때로는 개별활동을 하라면서 제 아이를 밀었답니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봤었어요.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우리 아이는 집에 와서 아무 말도 안 했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고 그런 느낌이 어떤지 잘 몰랐기 때문이겠죠. 집에서는 '어화둥둥 내 새끼~' 하면서 이쁨을 잔뜩 받으니까 유치원에서 일어났던 일은 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제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아마 특별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어른이 바쁠 땐 개별활동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걸 알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정말 찰흙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확확 바뀌는 가소성 높은 유연함이 있어요. 가만히 놔두면 동글동글 예쁘게 잘 자랄 것을, 어른들이 좀 더 예쁘게 만들겠다고 섣불리 만져서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치원에서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에 함께 동참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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