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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Feb 04. 2024

06 할 수 있는 것은 기회를 주세요.

아이들은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랍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앞에서는 유치원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그것들 중에서 한 가지를 자세히 풀어보려고 해요.


제가 몇 가지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할게요. 너무 일상적인 것들이라,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한 번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간식시간입니다. 어떤 유아가 우유를 약간 흘렸군요. 그러면 집에서 어떻게 하시나요? 7살 친구들입니다. 재빨리 부모님이 닦아 주시나요. 위험한 유리 조각이 끼여 있다면 당연히 어른이 치워야겠지요. 하지만, 그냥 우유나 물을 마시다가 흘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원시간입니다. 점퍼에 단추나 지퍼를 닫아야 하죠. 하원할 때는 옷자락이 너풀거리면 걸려서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옷을 여미도록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하원하기에 조금이라도 안전에 위해 되는 요소가 있다면 사전에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하거든요. 이럴 때 유아들이 지퍼나 단추를 닫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선생님이 채워 주는 것이 좋을까요.


신발장에서 유아 자신의 신발을 가지고 옵니다. 유아는 신발을 신는데, 천천히 신습니다. 신발을 신겨 줄까요? 부모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하원할 때 아이는 외투를 입고 자신의 가방을 메고 갑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만나면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시나요. 아니면 아이가 가방을 메고 집까지 가도록 하시나요.



너무나 사소해서 이런 것조차도 신경 써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이 작은 행동에도 유아들은 무의식적으로 학습합니다. 왜 그런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유아들의 발달특성을 조금만 언급할게요.


유아들의 특성상 '나'에 상당히 민감한 나이입니다. 오죽하면 화장실에서 자신의 몸에서 나온 '변'에게도 인사를 하며 아쉬워하고 신기해하겠어요. 그래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또 그 결과에 대해 매우 초유의 관심을 보이죠.


자신이 만든 행동의 결과로 어느 정도 책임지도록 해야 하죠. 우유나 물을 흘리거나 했을 때, 자신이 직접 치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위의 어른이 '도와줄게.'라는 말을 하면서 어른이 마무리를 해야겠죠. 그래야, 내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옆에서 서서 보기만 해도 유아들은 자신이 치우는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치우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나아가서는 친구가 흘리는 것을 보면 '내가 도와줄까?'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답니다. 


물론 이 과정이 한 번에 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상황이 될 때마다 항상 그런 루틴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도 유사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그런 과정을 반복하도록 해야 하죠. 자신도 행동했던 것을 다른 친구가 하는 것을 보면 다시 행동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죠. 


점퍼의 지퍼나 단추 채우기는 유아들이 소근육 발달에 매우 좋습니다. 요즘 지퍼는 참 다양하기도 하더라고요. 2중 지퍼로 된 것도 있고, 양면점퍼는 지퍼의 손잡이가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더라고요. 저야 훌륭한 일상적 학습재료가 되어서 좋기는 합니다. 지퍼와 단추 채우기만으로도 40분을 수업할 수가 있으니까요. 이 훌륭한 소근육 활동 재료를 교사들이 다 해준다면 어떨까요? 꼭 가위질로만 소근육 발달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까요. 유아들은 자신과 가장 밀접한 환경에 더 빨리 반응하고 학습합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미술작품 만들기를 위해 가위질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 바깥놀이를 가고 싶어서 지퍼를 빨리 채우려고 노력하면 소근육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일 테니까요.


신발장에서 신발 찾기는 또 어떤가요. 유치원 현관에 하원할 보호자가 안 쪽으로 오시면 대부분 아이의 신발을 먼저 꺼내 놓으시더라고요. 신발장에는 자신의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이 쭈욱 붙어 있습니다. 처음 유치원에 적응하는 3월과 4월은 아직 한글을 익히지 않은 어린 연령의 유아들일 경우 자신의 이름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발을 찾지 않으면 바깥에 나갈 수 없죠. 그런데, 그런 노력 없이 현관 앞에 딱 자신의 신발이 놓여 있다면 어떨까요. 수많은 친구의 이름 글자가 붙어있는 곳에서 자신의 신발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신발을 제대로 신으려면 엄지발가락 쪽을 신발 안 쪽으로 깊이 밀어 넣어야 합니다. 유아 스스로 발에 힘을 주어야 하죠. 그리고 신발 뒤꿈치를 넣어서 신발 뒷부분이 뒤꿈치를 감싸도록 해야 합니다. 대부분 잘 신지 않습니다. 신발 뒷부분을 꺾어 신죠. 물론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신어도 넘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정도로 완벽하게 조절이 안 될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완전히 신발을 스스로 신을 때까지 계속 보아주어야 하죠.  제대로 신지 않으면 집으로 출발하기 어렵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 얼른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유아들이니 바르게 신습니다. 


현관에서 만나자마자 부모님이 가방손잡이를 잡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유아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팔을 쓰윽 뺍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자동화된 로봇을 보는 것 같았어요. 물론 유치원에서 만든 작품이나 물건이 많을 때는 부모님이 받아주셔야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메고 있어야 하는 가방은 유아가 메게 해야 합니다. 그건 유아 자신의 것이니까요. 그렇게 가방과 옷 모든 짐을 맡기고 유아는 그냥 뛰어갑니다. 유치원 놀이터로 말이죠.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습니다. 


하원할 때, 아이가 아무리 똘똘하더라도 보호자의 손을 꼭 잡고 가야 합니다. 특히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활발한 성향의 유아들이라면 꼭 해야 하는 규칙입니다. 요즘은 작은 도로를 끼고 있는 학교나 유치원이 많아서 뛰기를 좋아하는 유아들에게 매우 위험한 환경이거든요. 5살 이하 영유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7살이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을 잘 듣는 유아라도 한순간 어떤 것에 흥분하면 좀처럼 스스로 가라앉히기 힘들거든요. 아이들의 특성입니다. 조절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야지요.



저는 교육이라는 말에 '서비스'를 붙이는 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아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교육은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인간답게, 바르게 자라게 하도록 하는 모든 교수학습행위를 통칭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서비스'는 대신해 주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용역 및 재화를 뜻하는 경제에서 쓰는 단어잖아요. 


교육을 하려면 약간의 필요와 결핍을 느끼게 하면서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라는 말처럼, 약간의 역경을 직간접적으로 겪어야 발달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대신해 주다니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르치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자조기술은 자신이 불편하고 뭔가 2% 결핍되어야 더 잘 배운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것들을 가정에서 조금씩만 하도록 연습시켜 주시면 훨씬 효과적이겠죠. 가정에서는 자녀가 1명이나 2명이니까 부모님들이 유아가 하는 것 대신 다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대신해 주시면 빠르고 정확하거든요.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20여 명이 있는 집단이죠. 가정에서 할 수 없는(자녀가 너무 귀엽고 그러면 당연히 모두 해 주실 수 있어요. 이해합니다.) 집단에서의 자조기술, 앞으로 학습할 때 기본 태도가 될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궁극적인 목표.

바로 자립하는 것 아닐까요.


자립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기술, 

자조능력을 키우도록 한 걸음 뒤에서 보아주시고, 때로는 함께 해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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