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호르헤스

by Iknownothing

호르헤스의 문학은 체계성, 과학성을 추구했던 구조주의에서 우리가 의심치 않고 믿어왔던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탈구조주의로의 시작을 밝힌 작품이다. 책 <픽션들>에서는 소설의 구조와 반복적인 개념을 통해 허구와 환상을 소설 그 자체로 표현해내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분명하게 다가오는 그만의 언어들이 굉장히 매력고 천재적이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 단편들을 반복적으로 표현된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미로>

저자에 의하면 인간은 초월할 수 없는 미로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좀처럼 초월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삶은 커다란 원을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주문과 같이 모든 것을 멈추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불과 얼마 전 일기장에 써놓은 글이다. 호르헤스와 같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어느 순간 이상한 불문율이라고 느껴지는 '시간'. 이에 대해 그는 책 전반에 걸쳐 토로한다. 시간이라는 속성에 갇힌 우리들은 억압적으로 미래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고, 미래라는 개념은 수많은 시간의 갈래를 낳아 필연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모호하게 만든다. 저자가 시간의 속성을 초월하고자 소원하는 대목은 특히 작품 중 <비밀의 기적>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고 있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의 순간, 1년의 영원성을 획득한 흘라딕이 다시 시간의 미로 속에 들어와 고통스러워하고 머리을 흔들어대며 죽어가는 모습을 기억해 보자. 시간이라는 속박에 갇힌 호르헤스와 우리 모두의 비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호르헤스에 의하면 그것은 영원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내가 시간의 직선에서 벗어나 구를 이루는 온전함이다. 시간의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개념인 늙음, 기억, 두려움을 벗어나 영원히 존재했던 도서관, 기억을 초월한 푸네스의 이야기에서 시간의 초월에 대한 잔영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늙고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내가 속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유일한 종족인 인류가 멸망 직전에 있다 해도 '도서관' 안 불을 환히 밝히고 고독하게, 그리고 무한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소중하고 쓸모없으며 썩지 않고 비밀스러운 책들을 구비하고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바벨의 도서관


<거울>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믄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그가 이야기하는 거울이란 반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증식을 의미한다. 거울에 비추어진 우리는 반복된 것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3자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우리'이다. 이러한 개념은 <틀뢴>의 흐뢰니흐(반복된 우연에 걸쳐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복제가 원본 이상의 실체를 지니게 되자, 체계적으로 복제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개념),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중 글자상으로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생산된 책이지만 다양한 독자들의 평에 의해 새로운 제 3,4,5...의 작품이 되는 이야기에서 이러한 거울의 속성을 엿볼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이해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였던 앤디 워홀의 작품과 굉장히 비슷한 개념으로, 그의 작품에서 이를 느낄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이란 호르헤르에 의해서는 가장 저급한 학문으로 취급되고 있다. 원작의 위상이란 것이 사라지고 모방, 모작이 당연한 그의 세계에서 규정된 과거의 것들을 기록해 놓는 것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울의 속성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에서 나오기도 한다. 마주 보고 있는 거울과 반쯤, 혹은 활짝 열린 창문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공간이 그것이다. 굉장히 넓어 보이지만 이는 어둠과 대칭, 거울과 수많은 세월, 나의 무지와 고독감 때문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던 대목은, '미로'에 갇힌 인간의 인생 자체를 공간적으로 표현한 듯 했다. 거울이라는 개념은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인간은 곧 모든 인간이라는 생각에까지 확장되는데, 흐뢰니흐라는 개념이 물건에서부터 인간에까지 이르러 만들어진 세계관인 듯 싶다.


'그들은 예수의 사도처럼 모든 점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모든 사람과 같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환영>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개념은 환영이다. 위에 언급했던 미로와 거울이라는 개념을 읽다보면 언제나 우리 뒤를 쫓는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다른 개념들에 비해 여러 에피소드들에서 반복되지 않고,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우뚝 서 존재하는 <원형의 폐허들>에서 호르헤스는 이에 대해 조금은 감정적으로, 회의적으로 대답하는 듯 하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꿈에 의해 창조된 환영이자, 꿈으로부터 또 다른 환영을 만들어내는 누군가였다는 그의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 피날레와 같은 이상한 여운을 가져온다. (이러한 대답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비난 받는 가장 흔한 예시일 수도 있다. 다음 문단에서 이에 대해 짚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나만의 정리를 위해 몇가지의 개념만으로 책을 쪼개 굉장히 '구조주의적'으로 설명했지만 호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은 모호한 개념들을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교묘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위에서 정리한 개념들은 일부일 뿐이며, 이 외에도 흥미로운 개념들과 소설의 구조적 실험들이 수록되어 있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꼭 한 번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누군가는 너무도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하며 현학적인 책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혹은 그래서 뭐? 이 책을 통해 어떠한 발견을 할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예술'이라는 분야의 생존력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심하지 않았던 것을 회의하는 것, 그것을 실험화하며 상상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예술 그 자체의 가치이자 새로운 가능성,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 않는가?


Escher, encounter

자 아 발맞춰 노래하자

우리는 회색 존재들

자 아 발맞춰 노래하자

우리는 흑과 백의 인형들

환영들, 그림자들, 버려진 조각들


아 - 우린 덧없이 노래하네

순간의 아이들의 되어

아 - 힘차게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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