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에게 기숙사는 정글이다
기숙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압도적 1위는 ‘기숙사에 적응을 못해서’이다.
이 때문에 전학을 오고 가는 시즌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가장 많이 갈 때는 개학 직후인 3월 중순이다. 모두 1학년이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얘들이다. (참고로 2, 3학년은 이때까지 버텼으면 거의 졸업까지 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서, 그것도 나만의 방에서 세상 편하게 지내다가 낯선 곳으로 짐을 싸들고 왔으니 어련하겠는가. 5~9명의 룸메이트가 생기고, 2층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자며, 핸드폰도 못하고,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복도 끝까지 나갔다 와야 되고, 한참 민감할 나이에 공용 샤워실을 사용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공동체 생활은 어른들도 힘들어하는데,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온 14살 얘들은 어련할까. 게다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까지 해야 하니 버거울 것이다. 교사인 나도 새 학기를 맞이하고 처음 보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마주하면 긴장이 되는데 말이다.
일 학년이 처음 기숙사에 입소하면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기본적인 규율을 설명해주신다. 다음으로는 룸메이트끼리 얼굴을 익히고 청소 당번을 정한다. 짐 정리까지 대충 마무리되면 금방 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다음 날부터 등교를 하면 각 교실의 위치를 익히기 위해 학교 투어를 하고 교칙을 배우고, 학급 시간을 갖으며 교과서를 배부받고 임원을 뽑고 하는 등 정신없이 일과가 진행된다.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 와중에 야자까지 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 씻고 잘 준비를 끝낸다. 같은 방 1학년 친구와 얘기를 하다 보니 금세 취침 시간이 지나는데 그것도 모르고 수다를 떨다 같은 방 선배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다.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몰라서 그랬는데, 착해 보이던 하던 선배가 정색을 하니 겁이 난다. 여기가 무슨 대단한 학교라고, 내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서럽고 눈물이 날 것이다. (‘너무 오버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중학교 신입생에게 선배는 산보다 높게 느껴지는 법이다.)
다음 날 1학년 학생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얘기를 한다. 본인은 별로 떠들지도 않았는데 같은 방 선배가 뭐라고 해서 무섭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보통 어머니들은 “네가 잘 못했으니까 그렇지, 조금만 참고 적응해 봐”라고 할 것이고, 실제로 며칠 뒤에는 아이는 무슨 일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지낸다. 몇 분은 바로 다음 날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려서 방을 변경하도록 하고, 더 심하면 곧장 전학을 간다. (믿기지 않겠지만 매년 일어나는 일이다.)
학교에서 싸움이 가장 많이 일어날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입학 직후인 3월이다.
새로운 환경에 다들 예민하기도 하고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이라 그런지 친구의 별 뜻 없이 하는 한 마디가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꽤 있다. 상황이 좋게 마무리된다고 해도 상대 학생과 24시간을 같이 먹고 자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통학하는 학생이라면 당장 그날 저녁, 집에 가서 걔가 얼마나 잘 못 했으며 나는 이렇게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할 수 있다. 잘잘못은 좀 있다 따지더라도 당장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있으니 속이 시원하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니 학원도 쉬고 바깥에서 바람을 쐬다 보면 상대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기숙사에 사는 학생은 당장 기댈 사람이 없다 보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사교적인 학생이라면 다른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며 금방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소극적인 학생은 하루가 너무 길다. 마음을 털어놓을 진짜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으니 짧은 저녁 시간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거나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꼴이다.
이렇게 입학 직후에는 기숙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생활이 녹록지가 않다.
중학교 1학년들은 이렇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한다. 말하다 보면 ‘내가 이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이 조금씩 생길 것이고, 주말을 편하게 집에서 지내다 보면 당연히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기숙사 관련하여 매년 제기되는 건의사항은 ‘기숙사 간식’이다.
한창 성장할 나이인 중학교 남학생들은 소처럼 먹는다고 할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식중독 위험 때문에 기숙사는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이지만 라면을 끓여 먹거나 치킨을 시켰다가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걸렸을 경우 단기적으로 기숙사를 퇴사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조치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한다. 그래서 차라리 일괄적으로 간식을 제공하자는 학부모들의 건의가 꾸준히 나왔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기숙사 학교에서는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 들어오기 전에 간식을 제공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를 안건으로 투표를 했고, 95%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그 이유는 이는 과반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표의 반대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만 빼고 간식을 먹이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싶겠지만 그게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간식 제공을 반대한 경우 대체로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이다.
막상 음식 냄새가 나면 반대했던 부모님의 아이들도 간식을 먹고 싶을 것이고, 그럼 옆 반에 가서 친한 친구에게 한 입만 달라고 할 텐데 그럼 막상 돈을 내고 먹는 학생은 불편해진다. 혹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왜 반대해서 나 못 먹게 하냐고 불만을 토하면 그 학부모는 다음 날 학교로 전화해 여차 저차 하니 간식을 아예 없애자고 민원을 넣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이 시스템을 없애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간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아이는 친환경, 유기농 위주의 건강식만 먹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돈 들여서 건강 챙기는 시대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본인 자식들이 매점에서 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알기는 할까. 정말 아이 건강을 생각한다면 군것질을 하지 못하도록 용돈을 줄이는 게 더 확실한 방안일 텐데 참 모른다.
또 다른 이유는 간식비 문제이다.
매년 의도적으로 몇 개월 치 기숙사비를 떼먹는 학부모들이 있다. 졸업하고 그대로 도망칠 게 눈에 선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길바닥으로 내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가정 형편이 정말 그 정도로 어려운가 해서 알아보면 이미 사기 혐의에 지저분하게 얽혀있기도 하고, 의외로 멀쩡한 집도 있다. 이 사람들이 기숙사비도 안 내는데 간식비를 내겠는가, 어림없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버티는 학부모들은 그렇다 쳐도, 실제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도 있다. 그럼 학교 측에서도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매일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간식을 주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 급식 대신 외부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
기숙사 학생들은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점심까지 급식만 먹는다. 매점에서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빵 등은 사 먹을 수 있지만 치킨, 피자, 떡볶이 등의 외부 음식은 일체 먹지 못한다. 당장 나만해도 앞으로 5일간 급식만 먹으라고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이미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네 입맛은 자극적인 배달 음식에 길들여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닭발, 불닭, 족발을 원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숙사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예비 신입생 학부모님들이 학교 상담을 할 때, 이와 관련된 문의가 꽤 많고 먹는 문제 때문에 전학 가는 사례도 간간히 있다.
물론 이 아이디어도 건의했지만 기각당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입학 초기의 기숙사 적응 문제, 외로움을 극복 방안, 급식 문제 등을 버티지 못하면 결국 떠난다.
본인이 생각한 학교가 아니라며 개학한 지 3일 만에 전학을 가는 학생도 있었고, 상담 요청 한번 없다가 일요일에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는 내일부터 집 주변 학교로 전학 간다고 통보하기도 한다. 진작에 울며불며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달래서 그래도 한 달은 채워보라고 설득해서 버티다가 정말 한 달 되자마자 떠나기도 한다. (순종적인 아이라면 한 학기에서 일 년까지도 버틴다.)
결국 학교 자체가 아니라, 기숙사를 견디는 자가 졸업장을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