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130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이 엄마이자 아빠예요.

by 지리박 선생님

기숙형 중학교 교사는 그 역할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이곳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댈 어른은 교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언제든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유대감(래포rapport)을 형성해야 물리적, 정신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져야 학생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상담을 요청하며 적응하고 졸업까지 갈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공부만 할 때가 제일 편한 거야. 어른 되면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데.”


사실 청소년기에 마주할 수 있는 고민이라고는 성적, 가정불화, 학교 폭력, 교우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성인들은 취업, 승진, 연애, 결혼, 육아, 시댁, 금전 관계 등 개인별로 다양한 문제를 동시에 떠 앉고 살아간다.

그럼 청소년기가 정말 가장 편한 시기일까? 흔히들 10대는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는데, 왜 하루에도 몇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까?


청소년들은 아직 사회에 나가 맨몸으로 부딪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좁다.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른들은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결방안을 고안할 수 있다. 가장 쉽게는 누군가에게 선물(뇌물)을 주며 부탁을 하거나, 심각하면 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있고, 낯을 가리는 사람도 급하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해결 방법을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도움을 청할 사람이라고는 가족, 친구, 교사로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스스로 알아낸 해결 방법이라고 해봤자 포털 검색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게 본인이 찾은 방법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 문제는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다는 깊은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10대 아이들은 흔히 돈도 없고 숫기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상태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어른들에게 꼭 도움을 청하라고 하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혼자 끙끙 앓았을 정도라면 가까운 지인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사연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이나 기숙사 학교의 교사들은 정말 부모처럼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인 교사의 몫이다.

말 한마디 더 걸어주고 평소와 다른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 꼭 짚고 넘어가며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사실 사건 사고는 주로 기숙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어제는 아무렇지 않았던 아이가 아침에 시무룩하더니 엄마한테 전화하고는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가버린다. 간간이 일어나는 일인데, 이게 습관이 되면 전학 가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숙사는 아이의 집이다.

여러분 집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거나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이웃이 있다고 해보자. 하루하루 집에 들어가는 것이 스트레스일 것이다. 아니,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숙사에서의 문제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소한 오해라도 풀지 않으면 한 공간 안에서 계속 찝찝하게 지내다가 언젠가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엄마 보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기숙사에서 한밤중에 복도에 있는 화장실 다녀오는 게 너무 무서워요. 소변 참느라 잠을 깊게 못 자서 힘들어요.’

‘같은 방 선배가 나름 저를 챙겨준다고 계속 말을 거는데 대꾸하기 귀찮아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진지하다. 사항에 따라서 문제 원인을 제공하는 아이를 지도하는 것에서 끝낼 수도 있고, 심각하면 기숙사 방을 교체해주기도 한다. 저학년 때는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기숙사 관련 민원이 속출하지만, 두 달만 지나도 그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견디지 못한 학생들은 이미 전학을 갔을 것이고, 남은 학생들은 문제 해결 방법을 점차 찾은 것이다.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교사가 문제 상황을 알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기울이니 걱정 말고 고민을 나눠주었으면 좋겠다. 직접 말하기 부끄럽거나 불편하면 카톡으로라도 물론 괜찮으니 언제나 환영이야!


그래도 유독 낯가리는 아이나 초등학교 때 왕따 경험이 심했던 아이는 통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이다.

그런 아이는 학교에서의 어려움을 교사가 아닌 여전히 엄마한테만 말을 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속상하다 보니 자꾸 교사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아이는 본인이 힘든 것이 있을 때마다 엄마한테 말만 하면 같이 화를 내주고 문제는 해결이 되니 계속 이 방법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친구 관계는 부모가 해결할 수도 없고 성인이 된 후로는 부모가 어찌하지 못하는 게 더 많으니 기숙학교에 보냈으면 어느 정도 자식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부모가 완벽한 해결책을 내주려고 하지 말고, 답 찾는 방법을 가르치고 직접 해보라고 지도했으면 한다. 안쓰럽다고 너무 받아주다 보면 마마걸, 마마보이가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나이 들어서 본인의 짐으로 돌아온다. 아들이 입대한 뒤에 소대로 전화해서 우리 아들 좀 잘 챙겨주라고 말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식을 옆에서 직접 보고 키워야겠다 싶으면 “거기서 고생하지 말고 여기서 같이 살자”라며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앞 편에서 언급했듯이 기숙형 중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대게 평범하지 않다. 우수한 학생들이 학업에 열정을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복잡한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경우도 그만큼 많다.

일반 가정환경을 가진 아이들은 학교가 싫어지면 본 주거지로 전학 가면 그만이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부모님이 각각 재혼을 해서 주말에 여관에서 지내거나, 새아빠가 집 안에서 온종일 담배를 피워서 같이 살기 힘들고, 삼촌이 술 마시고 종종 집안 물건을 다 깨부수고 가끔은 칼부림까지 해서 경찰이 몇 번이나 오가는 집에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학교생활이 뭣 같아도 이곳에 남아야 한다.


이런 학생들의 삶에 더 이상의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두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과 격려를 보내지만,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오히려 더 엄하게 가르친다.


그 이유는?


교사가 아니면 이 아이의 언행을 잡아줄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엄마나 집안에서 담배 뻑뻑 피는 새아빠, 혹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삼촌이 이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관심을 갖을까?

이건 애정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사회적·도덕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어른과의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상식이 통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주변에 중학생 수준에서 정신 상태가 멈춰버린 듯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미성숙한 사람. 번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잘살든 못살든 화목했든 불화했든,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 것이다. 인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와 만난 아이들은 최소한 반쪽짜리 어른으로 크지 않았으면 한다. 교사인 내가 엄마나 아빠, 단짝 친구만큼은 아니어도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지혜로운 이모 정도는 되길 바란다.


그래도 이런 친구들을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것이 행운이다. 고등학교만 들어가도 머리가 커져서 생활 지도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중학생 정도면 아직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다.

학교에서 눈에 나는 언행을 하는 아이는 기숙사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교사가 아이의 나쁜 습관을 발견하고 잡아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운동장에 나가서 컵라면을 끓여 먹는 아이는 기숙사에도 삼각김밥을 반입해서 먹는다.) 담임교사, 야간 자율학습 담당 교사, 기숙사 담당 교사, 사감 선생님 등 여러 명의 어른들이 공통되게 지도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아이도 본인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전혀 변하지 않는 아이는 결국 벌점이 쌓여서 기숙사 퇴사를 당하게 될 텐데, 먼 거리에 사는 경우 통학이 불가능해서 전학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퇴사가 임박할 정도로 벌점이 쌓이면 그때라도 본인이 심각성을 알고 고치거나 주말에 보호자에 의해 교정 당해 돌아온다. 혹은 부모님이 지금까지 가정교육을 잘 못 시켰다며 이제라도 옆에서 지도하겠다고 자발적 전학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실 학생부장 선생님까지도 손발을 다 들어버릴 정도라면 그 아이는 가족 곁에 있는 게 나을 수 있다. 단순히 생활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결핍되고 불안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보다 사랑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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