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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Sep 06. 2015

#2 함남면옥

특별함 없이도 기억에 남는다는 것

요즘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가려는 지역의 맛집을 인터넷에서 찾는다. 괜찮아 보이는 정보들을 리스트업하고 그 식당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여행 시간의 대부분을 채운다. '꼭 먹어봐야 할 음식' 같은 것을 챙겨놓지 않으면 여행의 무언가를 놓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평소엔 그런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지난 8월 다녀온 여수 여행에서 나 역시 그랬다. 여수로 가는 밤기차에서 여수 맛집을 검색했다. 여수에 간다니까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준 팔로워들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찾아본 곳들도 있었지만 모두 혼자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은 아니었다.


면요리를 찾아보자


'바닷가 근처 관광지에서는 회(기타 해산물)를 먹지 않는다'는 게 내 원칙이다. 원산지에서 더 비싸게 받는 음식을 먹는 것은 '눈퉁이 맞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맛집으로 통하는 곳들은 거의 다 그런 곳들로 보였다.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꿨다. 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음식인 '면 요리'를 먹자. 냉면 혹은 콩국수, 심지어는 짜장면, 그 무엇이어도 좋다. 면 요리를 찾아보자.  


몇 번의 검색 후 결국 냉면집을 찾게 됐다. 면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냉면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냉면이라면 응당 평양냉면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여수에 그런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못 찾았다. 대신 부산의 밀면 같이, 혹은 진주의 진주냉면 같은 여수만의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가지고 찾아봤다. 그러나 검색으로 찾지는 못했다. 다만 50년 된 함흥냉면 집이 있다는 사실은 발견했다. 그것도 여수 관광 중심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이순신광장 부근에. 상호는 '함남면옥'이다.


여수 함남면옥 가게 전경


역사가 50년이라니.
좋든 싫든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것이 있겠다.


난 평소 함흥냉면을 선호하지 않는다. 함흥은 4천 원짜리 분식집이나 12000짜리 유명 면옥이나 그 맛이 비숫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큼한 맛에 질긴 면. 양념장이나 식초, 겨자를 왕창 뿌려먹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든 게 다 싫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메밀막국수보다도 못한 게 함흥냉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동치미 메밀막국수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나에게 함흥냉면은 정말 그냥 더울 때 어쩔 수 없이 먹는 것 중 하나다. 그래도 이 집, 역사가 50년이라니. 좋든 싫든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것이 있겠다 싶어서 들어갔다. 50년의 세월이라면, 충분히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가게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붐볐다. 3층에나 올라가야 자리가 있었다. 3층 구석 창가에 자리를 잡고 물냉면을 주문하려 했는데, 구분이 따로 없었다. 냉면을 주문하면 면 위에 양념장과 고명이 얹어진 그릇이 나온다. 이어 육수가 담긴 대형 주전자를 가져다 준다. 물냉면을 먹고 싶으면 육수를 많이 넣고, 비빔냉면을 먹고 싶으면 비비기에 적당한 정도로만 넣으라는 뜻이다.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에서 냉면 먹는 재미 중 하나를 찾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제격이다. 육수를 그릇 한 가득 부어 넣었다. 아마도 이런 방식이 여수의 냉면 스타일 아닌가 싶다. 이렇게 먹는 방식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냉면은 이렇게 나온다. 여기에 육수를 얼마냐 붓는가에 따라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변한다.


내가 냉면(혹은 냉면집)을 평가하는 기준은 보통 5가지이다. 면, 육수, 고명, 밑반찬, 서비스 및 가격 등이다. 예전에 한참 블로그에 '맛집'이라는 키워드를 남발해가며 포스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이 곳의 면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함흥냉면 특유의 질긴 면이다. 좋게 말하자면 쫄깃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면 자체에서 특별한 맛이나 씹는 재미가 느껴지진 않았다.


육수는 슴슴하다. 일반적으로 '함흥냉면'하면 생각나는 시큼한 맛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테이블에서는 '이거 원래 이런 맛이야? 왜 이리 싱겁지?'라고 투덜거리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난 속으로 '그냥 김밥천국 가서 드세요'라고 중얼거린다. 아무튼. 육수의 슴슴한 맛은 고기육수에 동치미 베이스에서 나오는  듯했다. 약간 짭조름한 맛도 느껴졌는데, 소금 간이 아니라 해산물의 살짝 비릿한 짠 맛 느낌이었다. 아마도 해산물 종류를 같이 끓여낸 것이 아닐까.


고명의 경우 특별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빔냉면을 주문한 것도 아닌데 양념장이 기본으로 같이 있었다. 그러나 보통 우리가 맛보는 칡냉면 따위에 얹어있는 양념장 같은 자극적인 맛은 없었다. 적절히 달콤 매콤했고, 육수와 섞였을 때 감칠맛 비슷한 것을 줬다. 반찬도 기본적인 찬이다. 그래서 특별한 기억은 없다. 결론적으로 부산 밀면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면은 다르다. 밀면은 전쟁통에, 그리고 전후에 메밀을 구하기 힘들어서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메밀면 대신 사용하던 것이 유래니까. 서비스나 가격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언급할 것은 없다. 적당히 친절(혹은 불친절)하고 관광지의 면 요리 가격(7~8천 원)이었다.


고명에 편육이 들어가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다


특별할 것 없지만 기억에 왠지 남게 된 이 맛

함남면옥이 50년 됐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전후 시대의 어려움 속 우여곡절 끝에 창업한 가게가 격동의 시기를 잘 버텨내고 현재까지 그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정도 버텨내려면 가게 특유의 맛도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맛을 유지시키려는 노력도 엄청나게 필요하다. 물론 세대가 바뀐 만큼 맛이 한결같진 않을 것이다. 그저 나 같은 사람에게 그 집의 역사와 적절한 맛으로 인한 기억이 하나 남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변함없는 맛은 아니더라도 좋은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면 여태 버텨온 것처럼 앞으로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부디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여수를 찾았을 때 특별할 것 없지만 기억에 왠지 남게 된 이 맛을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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