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문다는 것은 머무는 곳을 대표한다는 것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는 냉면들이 서울시내에는 여러 곳 있다. 하지만, 평양냉면이라는 것은 사실 물냉면을 총칭하는 의미이며, 정작 옥류관의 냉면은 우리나라의 평양냉면과 다르다고 한다. 사실 상 서울 시내에서 자리를 잡은 여러 평양냉면들은 '서울냉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가게 중 딱 한 곳은 이 '서울냉면'이라는 단어를 쓴다. 바로 한일관이다. 이 곳도 역사가 깊은 곳이다.
최근에 한일관을 찾았던 것은 영등포CGV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7을 보러 갔을 때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한일관이 있는지 몰랐는데 우연히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한일관은 몇년 전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간 것이 처음이었는데 마지막으로 갔던 날이 2년도 더 된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본연의 맛이 기억 안났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가게 들어가며 바로 '물냉면 하나주세요'하고 주문했다.
이것이 서울냉면
맛을 요약하자면, 면은 메밀 함량이 괜찮은 편이다. 씹는 맛이 좋다. 색도 회갈빛을 띄는게 적절하다. 고명은 다른 가게들에서 일반적으로 나오는 것들에 더해 고기 볶은 것과 절인 오이를 얹어준다. 둘의 조화가 은근히 어울리지만, 한 편으로는 간이 좀 있는 편이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을 것 같다. 육수는 고기육수맛이 강하진 않은데 꽤 있는 편이다. 정인면옥보다는 약하지만, 육수와 동치미 이외에 다른 소스가 섞인 것 같다. 간장소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쭉들이키다보면 동치미의 개운한 맛에 기분 좋아진다.
괜찮으시겠어요?
서비스는 친절하다. 냉면을 주문할 때 '저희 집은 평양냉면 스타일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되물어본다. 혹시라도 입에 안맞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평양냉면 스타일이 뭔지 모르고 주문한 채 싱겁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냉육수 한사발 더 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기꺼이 가져다 주셨다. 가게는 여태 가 본 냉면가게 중 가장 청결하다. 물론 한일관은 음식 값이 비싼 가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밑반찬이 일반적인 밥반찬이라 냉면만 먹는 사람들에겐 적절치 않은 듯하다. 오이지나 김치를 먹고나면 순수한 냉면맛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호박으로 입맛을 정리하고 다시 육수를 마셨다. 하지만 밑반찬 자체는 다 깔끔하니 좋은 맛이다.
육수 만큼이나 쿨한 이름
맛의 기준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 기준으로 별점을 주자면 별 5개 만점에 4개다. 개인적으로 동치미의 맛이 더 강했으면 어떨까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단정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곳은 이 곳만의 특징이 확실히 자리잡은 곳이다. 여타의 다른 평양냉면집들도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것이겠지만, 한일관의 냉면은 그저 평양냉면이 아닌 '서울냉면'이다. 그 시작은 분명 이북지방이었을테지만, 서울에 내려와서 서울의 스타일로 자리잡은 맛이다. 오래 머물다보니 머무는 곳의 특성을 반영하고, 특성을 반영하다보니 그 곳을 대표하는 특징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한일관의 냉면은 이런 점에서 의미있고, '평양냉면' 대신 '서울냉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만의 위치를 독보적으로 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서울냉면', 육수의 맛 만큼이나 쿨함이 느껴지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