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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Feb 24. 2016

무이네 #2. 관계 사이의 자극

아무도 없으면 외롭고, 너무도 많으면 괴롭다

이번 여행에서는 글이 잘 안 나온다.  지난번 터키에서는 술술 써졌던 탓에 책까지 냈었는데, 이번엔 유독 심한 것 같다. 사진을 남기는 것만큼이나 글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나도 모르게 생겼던 것일까. 이런 고민들을 여행  중간중간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에야 글이 잘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단절'을 원했다. 하지만 내 글은 관계 사이의 자극이 있어야 나오는 편이다. 글을 습관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사춘기 시절부터 쭉 그래 왔다.


나에게 글 쓰는 습관이 생긴 것은 찌질하지만 센척하고 싶어 하는 중2병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어떤 부분에서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글과 생각으로 이기고 싶어 하는 정신승리의 욕구가 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것은 좀 없어지고 글 쓰는 습관만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자극이 없으면 쉽사리 나오지 않는 것이 내 글이었다. 


이번 여행 와서는 마땅히 자극을 느낄만한 사건이나 관계, 대화, 장면 등이 없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모든 것과 단절된 시간을 갖고자 해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극에 둔감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야 알겠다. 여행 와서 글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거의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히 글도 나오지 않는 것이겠지. 그러나 글이 나오지 않는 불편함보다 누군가와 섞이는 불편함이 더 싫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고, 너무도 많으면 괴롭다. 난 괴로운 상태로 여행을 떠나왔다.


muine, vietna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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