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고 돌아가도 괜찮아
못 찾겠다 꾀꼬리
어제 밤늦게 호치민 중심가에 도착했다. 구글맵으로 숙소를 찾는데,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숙소가 없다. 혹시 지나온 길가에 작은 골목들이 있던 것은 아닌가 해서 그 주변을 계속 돌아보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숙소에 전화도 해봤으나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상태에서 끊었다. 구글맵 상에 보이는 큰 블록 한 바퀴를 크게 돌며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렸지만 숙소 간판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다시 전화했는데, 이번에는 영어가 되는 직원이 전화를 받았고 나를 데리러 나왔다. 그 직원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내가 지나온 골목이다. 도저히 숙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두운 골목 끝에 있었다. 간판도 보이지 않았고 골목이 어두웠기에 그 끝까지 가 볼 생각을 못 했다.
내 잘못인가 지도 잘못인가
오늘은 호치민 중심가의 관광 명소인 통일궁, 노트르담 성당, 중앙우체국 등을 돌아볼 생각이다. 숙소에서 지도 한 장 받아서 나왔다. 처음엔 지도를 좀 보고 걷다가 커다란 나무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공원에 발길이 이끌렸다. 가려던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 것 같기에 공원에 들어가 나무 그늘서 더위를 식히며 가족들이나 연인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산책을 하고 공원 밖으로 나왔다. 다시 지도를 꺼냈고, 통일궁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길게 이어진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한 블록을 돌았다.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호객행위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 옆에 있는 건 전쟁기념관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휴관 중이니까 다른 곳에 오토바이 타고 가는 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더욱이 전쟁기념관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걸었다. 통일궁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또 근처에 보이는 작은 공원에서 쉬었다.
뭐 아무렴 어때
호치민에 와서 이상하게 지도를 보고 계속 헷갈린다. 어디든 길 하나는 잘 찾는다는 이야기만 듣던 나인데 왜 이럴까. 일반적인 여행자 거리와 대로변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마음 이끄는 대로 공원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을까. 구글맵에서 보여주는 내 위치는 분명 근방에 통일궁이 있는 것 같은데 내 눈으로 그 위치에 보이는 것은 전쟁기념관이다. 무언가 잘못 표시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또 걷는다. 그냥 좀 더 걷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최소 1점 득점
여행이나 인생이나 좀 돌아가면 어때. 어차피 사는 건 야구 같다. 홈에서 시작해서 홈으로 돌아오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은 나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왔을 때의 나는 처음 출발했을 때의 나와 분명히 다르다. 적어도 1점은 쌓는 것이다. 살면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순간을 맞이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 과정을 통해 나만 아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건 최소 1점의 값어치는 한다.
알고 보니 난 실제로 통일궁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말했던 전쟁기념관이 통일궁이었다. 알고 나니 황당하고 택시기사가 얄밉기도 했지만, 덕분에 노트르담 성당, 중앙우체국 등 인근의 볼거리도 두루 보고 거리도 익힐 수 있었다. 무엇하나 건지기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만루 홈런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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