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누가 이걸 읽고 있겠냐만은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아침

by 상구


메리 크리스마스! 비 눈이 몰려오는 강추위 크리스마스는 무슨. 햇볕이 따뜻하고 햇살이 눈부시게 밝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입니다. 어제는 키 높은 캔맥주 한 캔을 곁에 두고 흑백요리사를 보았습니다. 은근히 많이 걸었던 날이라 빨리 잠에 들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상쾌한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았네요. 저는 크리스마스 당일보단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좋은 사람인가 봅니다. 막상 12월 25일이 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막막해서 얼렁뚱땅 하루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적에는 시골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를 몰랐고, 기독교 집안이 아니라 신나는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습니다. 그러고서 어른이 되었는데, 시끌벅적한 거리와 장소를 싫어하는 어른이어서 신나는 크리스마스를 아직도 모릅니다. 연말의 청계천이나 광화문대로나 명동으로의 나들이는 신나는 일일까요? 겪어보지 않아서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크리스마스에 대단한 의미부여를 해온 사람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항상 바쁜 분들이었는데, 연말에는 꼭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명절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시곤 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나 선물이 없는 우리 집이 당연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납득이 되었달까요. 다른 종교의 기념일이니까요. 그치만 그럼 석가탄신일은? 되물으면 엄마가 참 곤란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본가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요즘 밤만 되면 어머니가 트리의 전구를 켜놓고 한참을 감탄의 말을 한다, 매일 한다, 지겹다 -하는 귀여운 불만을 표하셨습니다. 엄마도 어쩌면 매년 트리를 두고 싶었을지도. 근데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트리는 우리 집의 추구미가 아니기도 하니까 뭐.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마음이 넉넉해지기는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나의 날이 아니라고 알던 때가 있었다면, 그 후에는 '왜 나의 날이 될 수가 없어?' 되묻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취방에는 앵두 전구가 한 두 개씩 쌓여갔습니다. 크고 예쁜 트리는 둘 수 없어도 전구를 어디엔가 감싸두면 제법 성탄절 느낌이 났거든요. 당시에는 크리스마스를 챙겨주지 않았던 부모님을 살짝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억하심정 비슷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한 성탄절을 챙겼네요.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휙 지나가는데, 어드밴트 캘린더는 며칠 밀려서 열기가 너무 쉽고, 지나가버리면 빨갛고 푸른 물건들은 한순간에 어색하고 촌스럽게 보이는데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그럼 크리스마스에 어떤 마음이냐면.. 일단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딱히 제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빨강, 초록과 금색이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장식품 소비는 하지 않습니다. 이삿짐을 싸려니 애매한 퀄리티의 앵두 조명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더군요. 부산스럽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데이트를 위한 옷을 산다거나 와인을 마신다거나 식당을 미리 예약하는 상황도 없었습니다. 덤덤한 마음입니다. 아 아... 낭만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요?


어제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크리스마스이니까' '응당' '모두가' '신나야'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저는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낭만 타령을 할 날들이 많아서요. 꼭 크리스마스가 명분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고정된 날짜 자체만으로 상품이 만들어지고 온갖 이벤트와 행사가 열리는 기념일도 참 드물지만, 그래서 덩달아 신나기에도 참 좋지만, 즐겨야 해서 즐기는 것도 꽤 큰 수고라서요. 이제는 대충 어떤 마음으로 12월 25일을 보내면 될지 감이 잡힙니다.


오늘 아침 저는 눈 뜨자마자 눈꽃이 잔뜩 그려진 하늘색 스웨터를 입고, 노트북을 챙겨서 동네에서 가장 조용하고 널찍한 카페에 왔습니다. 제 맞은편에는 잔잔한 크리스마스 재즈가 나오는 스피커와 2미터는 훌쩍 넘길 크기의 트리가 있습니다. 주변에는 나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분들이 앉아있습니다. 모두가 조용히 재즈를 듣고 있습니다. 밖의 거리는 한산한데, 아마 골목으로 들어가면 상인회분들이 꾸몄다는 트리들이 또 한가득 있을 겁니다. 멀찍이 바라보고 사진 몇 장 남겨두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부디 소중한 성탄절을 맞고 있는 여러분의 설레는 마음에 얼음물을 끼얹는 글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저와 비슷한 분들이 있다면 또 그대로 즐거울 것도 같고요. 집에 돌아가면 이삿짐을 마저 싸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