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을 이해하다.
Jeffrey Pfeffer and Robert I Sutton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0.
꽤 오래 일해온 직장을 그만뒀다. 사실 직장이라 말하기엔 다소 거창한 파트타임 일자리였지만. 정든 곳으로부터 나와야겠다 결정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이 일에 너무 익숙해졌다.
조직 속에서 ‘신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당시 날 가장 숨 막히게 했던 말이 있다. ‘여긴 원래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문제가 분명하게 보였기에 이에 합리적인 의문을 품고 질문을 했을 때 결국 이 대답만이 들려오면, 있던 의욕도 파스스 무너져 내렸다. ‘원래 그렇다’는 말에는 개선에 대한 의지는 물론이거니와 내 의구심에 대한 동조조차 담겨있지 않다. 오래 지켜진 관습이자 경향이니 그저 묻어두면 된다. 해결책이 단순해도 단순하지 않아도 결론은 똑같다. 변화란 없고 없을 것이니까. 여기서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은, 나 또한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 선임이 되어버리는 일이다. 놀라울 만큼 끔찍한 악순환이다.
Sutton이 연구한 ‘Knowing-Doing Gap’은 익숙함에 젖어 게을러지는 개인, 그러한 개인이 모여 성장하길 멈춘 조직을 지적한다. 업무가 훤히 보이게 되는 시점부터, 일은 너무도 쉬워진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시작하고 끝마치면 아무런 사고 없이 과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훤히 보인다는 것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알고는 있지만 애써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내노라하는 인재가 모인 미국의 대기업들도 위와 같은 고충을 겪는다. 이들은 지행불일치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소개된 몇 가지 개선 사례 중 가장 파격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reorganization.
We learn too fast. 우리는 나쁘고 옳지 못한 방법마저 빠르게 학습하여 체화시킨다. 위험 부담이 적다면 그리고 비난을 피할 수만 있다면 하던대로, 배운대로 하자 생각한다. 반대로, 전례가 없고 쉬운 지름길을 알지 못하면 해야만 했던 일은 오히려 더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다. 절박함을 가지고, 새로운 틀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Reorganization은 조직의 구성원을 단순히 몇 명 교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기업은 고위 경영진 10명을 해고하고 기존 직원의 50%를 교체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설계 프로젝트에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직원들로만 팀을 꾸려 투입했다. 기업이 그들에게 바란 것은 끊임없는 학습이었다. 위험 부담은 크지만, 똑똑한 말만 오갈 뿐 아무런 행동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action이 먼저 이루어지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 knowledge를 쌓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멋지고 대담한 의사결정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직원들의 지적 능력이 충분히 우수하다면 걱정은 덜하지만, 지행불일치의 원인으로 치부하기에 직원 개개인의 노하우와 경험은 기업 운영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보수적인 태도, 소위 꼰대 마인드도 가끔은 필요하다.
Sutton은 지행문제의 또 다른 해결책으로 협동을 제시했다. 건강한 내부 경쟁과 협력적인 사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지식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수월해진다. 전 직원이 급진적인 실천과 변화에 동의하는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협동의 역할이 필요해진다. 의견의 차이를 조율하며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유지할 것은 유지한 사내 의사결정은 불안을 덜고 효율을 높일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자.
오래 고인 물은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물은 순환할 때 건강하다.
조직 또한 그렇다.
오래 갇혀있던 수문을 열어 신선한 의견과 함께 어우러질 때 기업은 비로소 효율적인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다.
(표지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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