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대화
P : 음.. 뭐든지 할 수 있는 기분이라기보다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D : 그때는 무엇이든 하면서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겠네요?
00 씨 학창 시절엔 어땠나요? 부모님과의 관계는요? 대학교에 올라와서는 어땠어요?
P :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나를 몰아세우는 장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였고 언제나 불안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는 가족들과 1년 동안 살았던 호주에서,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나는 학교에서 우등생이었고 교감선생님과의 만찬에도 두 번이나 초대되는 학생이었다. 모두가 알았는데, 나만 몰랐다. 영어를 못했으니까.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귀가 틔였을 즈음, 나와 놀던 금발 여자아이들 두 명이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들어버렸다.
'너 계속 00이랑 놀 거야?' '아니!'
내가 싸오던 점심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아이들, 한국에서처럼 장난을 치니 당황하고 겁을 먹는 아이들, 이상한 문장을 구사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은 내게서 멀어졌다. 그 멀어진 아이들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금발 백인 아이들이었다. 이상한 상황이었지. 꿈같은 2주 정도가 지나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나를 그저 혼자 놔두지는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중국인 혼혈 클로이와 한국인 수지. 우리는 셋이서 놀았다. 세명의 이야기가 아름다웠다면 좋았겠지만, 클로이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정말 기이한 아이였고, 수지와 나는 독재자 같은 클로이에게 끌려다녔다.
어쨌거나, 나의 호주 생활은 암흑과 같았다. 매일 밤 울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1년이 지나고 나는 한국에서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그 1년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나는 많이 바뀌어있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기억했지만, 나는 그들을 잊었다. 나는 다른 00 이가 되어 있었다.
불안감에 떨며 버려지는 것을 걱정하는 00이.
D : 그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