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 빙고 ENTJ 빙고를 해보자~
펑크록 좋아함은 왜 ENTJ의 빙고 안에 있을까?
일단 펑크록의 정의부터 찾아보자.
정의에서 일단 한 번 웃었다.
나는 펑크록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에, '저는 펑크록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네이버 음악 장르 백과에서 펑크록의 정의를 보고 나니, 이 장르를 이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해야겠다.
나는 '제도권'을 싫어한다. '원래 다 그래' 혹은 '예전부터 이랬어'라는 말을 들으면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다짐하며 살고 있다. 싫어하는 이유는, '제도권'에 머무르면 변화와 혁신, 성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편한 상태로 머물러 있고 싶지 않고, 그렇게 머무른 조직, 사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느낀다.
'냉소와 자학' 그리고 '냉철한 사회비판' 이거 내가 맨날 하는 거잖아..?
어느 날 부모님과의 술자리에서 엄마가 내가 그런 말을 건네셨다.
"00이 너는 가끔 너무 부정적이야."
나는 다시 되받아쳤다.
"나는 부정적인 게 아니고 비판적인 거야. 비판적이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는데, 난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야."
".. 그래"
대화는 저렇게 마무리되었다. 종종 그런 식이었다. 부모님이 하는 말이 내 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꼭 반박했고,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혹은 듣는 사람 기분을 생각하지 않은 말을 했다며 비판했다. 사실 내 말이 다 맞는 게 아닌 것 나도 잘 아는데, 그래도 비슷한 모든 상황에선 내가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효녀다. 부모님에게 나는 분명 대화하기 좋은 자녀는 아닐 것이다.
또, 나는 자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학은 불안감, 초조함에서 시작된다. 불안감의 원천은 아직 제대로 찾지 못했지만, 내가 인지하는 자학의 시작은 불안감이 맞다. 주로 생산성에 목메는 편이고,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부족한 점을 메워보려고 노력한다. 부족한 점을 알아내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도, 정답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완벽하고 싶다. 고등학고 시절 다이어리 앞면에는 항상 이 문장을 썼다.
완벽하지 않다면 완벽에 가까워지기라고 하자.
내 완벽에 대한 집착은 자학에 가깝다.
글을 쓰는 내내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를 들었다.
헤드뱅잉과 샤우팅으로만 끝날 노래일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썩이며 들었다.
ENTJ가 펑크록을 좋아하는 이유는, 장르 속 노래가 분명 좋기도 하지만, 펑크록만의 정신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재생목록을 업데이트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