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식사로 연희김밥 한 줄, 오징어 꼬마김밥 한 줄에 아사이 캔맥주를 곁들였다. 김밥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어울린다고 떠들고 맞장구치고 다녔지만 사실 커피 마실래, 맥주 마실래 묻는다면 맥주 마시는 팔자를 택하겠다. 친구와 김밥에 아아 조합을 찬양하다 '이거 현생 정식 아니냐? 아니면 바쁘다 바빠 세트?'하는 자조를 섞기도 했다. 급하고 바쁘게 씹고 넘기는 김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덕분에 꿀떡꿀떡 넘어간다. 집김밥보다야 어쩔 수 없단 듯 달게 말아진 김밥에 커피의 쓴맛이 더해진다면 맛의 균형이 한층 나아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야 알았다. 참기름기 좔좔 흐르는 연희동의 김밥에는 아무래도 라거가 어울린다. 시원한 탄산감 만으로도 제 몫의 대부분을 해내는 라거가 딱이다. 1000원짜리 깨순이 김밥을 겨우 사 먹던 꼬마가 김밥 두 줄에 맥주를 두 캔을 비우는 여인이 되었다니. 적어도 나는 이 일이 참 흥미롭다.
사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욕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연희동을 한참 누비다 저녁거리로 도합 8천원도 안되는 김밥을 샀지만 길 위의 선택지는 김밥 이상의 것이 너무나 많았다. 바삭 따끈한 피자를 살 수도 있었고 동네의 자랑이라는 치킨을 포장할 수도 있었다. 큰 길목에 줄 서있는 중식당에 들어가 고량주에 요리 하나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었다. 와인 리스트가 좋다는 이탈리안 식당에 들어가 파스타를 먹기도 참 쉬웠다. 하지만 여러 접시와 봉다리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음에도 결국 내 오른손에 들린 것은 김밥이 담긴 까만 봉다리였다. 소박한 나를 동정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먹을 것에 돈 쓰는데 이렇게 인색한 만큼, 후하게 쓰고 살아온 부분도 분명 있다(많다 많아).
생각해 보면 내가 돈을 쉬운 마음으로 꺼내 쓸 때는 내 옆에 오래 머물 물건(생활용품과 가구)을 살 때 그리고 내 곁에 절대 머물지 않을 물건과 돈(선물)을 준비할 때다. 전자의 기질은 아빠에게 물려받았고 후자의 것은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아니, 사실 어느 면에서는 반대도 성립하니 그냥 나는 부모님과 소비성향이 참 닮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내 옆에 오래 머물 물건(생활용품과 가구)을 살 때
흐름이라면 이런 식이다. 효용을 따지다 보면, 먹어 없어지든 시간이 끝나든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에는 크게 욕심을 내지 않게 된다. 음식이 대표적으로 그렇고, 방탈출이나 독서실이나 아무튼 시간제로 사는 것들은 모두 대체품부터 찾아 나선다. 대신에 계산대에 가지 않고서야 절대 손에서 놓아지지 않는 것들은 대개 갑 티슈 커버, 예쁜 행주나 컵, 지우개 가루를 터는 작은 빗자루. 가격으로 따지자면, 먹고 싶은 생각 한 번 참으면 몇 년이고 곁에 두고 구경하거나 어루만질 수 있는 물건들이다.
아무튼 내가 바라보는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라면 머리에서 떨치기를 어려워하는데, 제일 큰 효용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가구. 마음에 드는 가구를 들였을 때면 딱 그 부피감, 존재감만큼의 대단한 만족을 한다. 큰오빠가 내 집의 모습을 싹 둘러보고 난 다음날 엄마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한다. "맥시멀 리스트의 피가 어디 안가.." 내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면서 수군대는 게 얄밉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 나도 입을 닫는다. 그치만 내가 지금의 공간을 MAX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minimum과 maximum 그 사이 어딘가, 아니 사실 따지자면 min 쪽으로 침이 조금 더 기울어있다면? 수납력이 좋은 집을 꿈꾼다. 그렇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곁에 절대 머물지 않을 물건과 돈(선물)을 준비할 때
타인을 위해서도 돈을 턱턱 쓰는 편이지만 내 손가락으로 풀어쓰자니 조금은 부끄럽다. 꾹 참고 써보자면(..) 항상 무언갈 나누고 있던 엄마, 가족과 친구에게는 한없이 무른 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렇지 않나. 보고 자랐다는 표현만으론 아쉽다. 조기교육부터 현장 학습, 연수까지 절대 놓치지 않는 과목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의미를 부여하기 좋은 취직이 살면서 세 건이나 있었는데, 그래서 "할아버지의 빨간 내복과 온 가족의 양말 세트"를 총 세 번 사야 했다. 인생 첫 월급 턱, 인생 첫 인턴 턱, 인생 첫 정직원 턱 뭐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당시에는 억울하기도 했더랬다. 돈에 코가 잔뜩 묻어서 내 손마저 끈적거리는데 엄마는 강건했다. 한때는 그냥 엄마 맘 편하자고 이런다 싶어서 밉기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이로운 면을 발견한다. 그래도 어떠한 미련이나 후회는 좀 적게 품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주도해 할머니들과 할아버지께 용돈 봉투를 챙겨드렸다. 예쁜 돈 봉투를 사면서 내 마음도 조금 더 예뻐졌다. 결국 우리가 받아든 세뱃돈의 합이 챙긴 봉투보다 커졌던 것은 웃기고도 슬프지만.. (무소득자 삼남매). 기분이야 기분~ 하던 엄마 말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했고. 그 뒤에서 마치 나라에 돈을 푸는 한국은행과 같은 근엄함(또는 쓸쓸함)을 보이는 아빠가 있으니 참 귀여운 돈놀이 같기도 했다. 돈이 뭐길래! 그치만 부업을 뛰고서 통장에 찍힌 10만 원, 유행하는 신발을 사기 위해 쿠폰 잔뜩 먹여 만든 10만 원 그리고 외할머니의 서랍장 한편에서 은밀하게 나와 은밀하게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낡은 5만 원권 2장은 각자 그 의미가 무척 다르니까.
기본 야채 김밥을 좋아하는 나. 1000원 2000원 차이를 두고 키오스크 앞에서 고뇌하는 일은 큰 부자가 될지라도 이어질 것 같다. 소박한 식비가 담백하고 단순한 맛을 좋아하는 취향을 낳았기 때문이다. 일상품에 돈을 쓰는 행태가 내 미적 취향을 다듬고, 선물하길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주변은 날이 갈수록 든든해진다. '소비예찬'이라는 말 그러니 참 잘 만든 말이다.
알아서들 잘 쓰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