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태어난 너에게

늙은 강아지와 바다 여행을 하고서 쓴, 강아지가 읽지 않을 편지

by 상구

바닷물이 빠지는 소리를 들었니? 솨 솨아 솨아아 한단다.

서해는 시시각각 그 모습이 변한단 게 참 매력적이네. 해변에 동해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가 깔리진 않았지. 제주도의 에메랄드나 강릉의 퍼어런 바닷물 색도 아니야. 최고로 예쁘다는 바다를 향해 떠난다면 찾아올 곳은 못 돼. 그래서인지 극성수기라는 이번주인데도 그리 번잡하지가 않다. 아니, 번잡하긴 커녕 쓸쓸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어. 이 아름다운 캠핑장에 나와 너만이 있네. 월요일이라서겠지? 그래도 강원도 어드매에는 월요일이 월요일같지 않게 사람이 많을거야. 사람이 많다고들 한다면 애써 찾아가는 사람이 있고, 애써 피해가는 사람이 있어. 나는 어떤 쪽에 속할지 고민도 해봤다. '고민의 여지 없이 후자 아니야?' 하겠지만 말이야, 내가 처음부터 피하는 부류였을까? 이렇게 되짚고 거슬러 올라가본다면 하루 종일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거야.

그치만 생각에 너무 깊게 빠지지는 않기로 했어. 사람이 많은 동해와 사람이 적은 서해의 사정에 대해서도. 고개 들면 눈에 가득차는 불그럭한 하늘과 반짝이는 물결, 잠시 한눈 판 새 바뀌고 바뀌는 풍경을 눈에 담는게 당장의 정답 같았거든. 해가 내려갈수록 바닷물의 끝자락이 보이더니 점점 내게서 멀어져갔어. 물이 빠지는거지. 솨 솨아 솨아아 하면서.


강아지랑 둘이서 캠핑을 갔대? 특이허다~ 했대. 할머니께서. 엄마가 말해줬어. 근데 엄마가 내게 하고 싶은 말로도 들렸어. 기대에 못미쳐서 죄송하지만 사연은 없어. 여행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생각은 가벼웠고 고민도 길지 않았다. 8월은 나와 너의 달이거든. 8월 2일에 태어난 강아지와, 15일 뒤마다 케잌 위 촛불을 불었을 여자 사람. 함께 산지가 햇수로 7년 째가 됐는데 멋진 합동 생일 파티 한 번 한 적이 없어서 미안했어. 네가 먹을 수 있는 케잌이 이젠 세상에 너무 많은데. 그거 하나 미리 주문을 못하는 주인이거든. 생일을 핑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오고 싶었어. "당장"만큼 딱 좋은 시기도 없으니까. 하지 않을 이유, 가지 못하는 명목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걸 따지는 중에도 세월은 흐르니까. 너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대. 나는 이제 만 나이를 좋아해. 그니까 우리에게 적기란 "당장"인거지. 가능한 날 중 가장 빠른 날인거야.


사실 나는 언제나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을 꿈꿔왔다. 적지 않은 시도가 있었지. 불행히도 너의 차멀미는 없어지지 않았어. 둘만의 첫 여행은 강릉. 함께 묵을 수 있는 숙소까지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탔잖아, 기억해? 어찌저찌 도착해서 짐을 풀고 바다로 나갔어. 너와 모래사장 위를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상상을 한참 했었거든. 근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에서 가늘고 짧은 다리는 오래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지친 널 외투 속에 꼬옥 넣고 수평선을 한참 쳐다보다 들어왔어. 넌 호텔 침대 위에서나마 신나게 뛰어다니더라. 아무래도 침대가 가장 편하지? 도시에 꽤 오래 살았으니까. 우리가 가장 맘편히, 안전히 놀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이불 위였으니까. 이 사실이 왜 이리 웃기다가도 슬픈지 참 알 수 없다.









이제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게 좀 익숙해보여. 한참을 헥헥대다 지쳐 잠들긴 했지만. 나는 눈 감은 널 바라볼 때 이제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다. 괜시리 몇 번 잠을 깨워도 보면서 서해안을 달렸어. 동해 바다의 파도는 더, 더 가까이 오라는 손짓처럼 보였는데. 서해 바다의 뻘은 고요하게 반짝이기만 하니,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기에 알맞다. 그래서 더 우리와 어울리는 것도 같고. 넌 근데 우리의 산책길을, 눈 감아도 뻔히 보이는 그 길을 더 좋아하는 것도 같고. 암튼 어디서든 눈 붙이고 잘 자기도 하는 넌, 인간들보다 더 괜찮은 여행 파트너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살면 살수록 나는 너를 알고 또 나를 알아간다. 항상 반 박자 늦게 깨닫나 싶긴 해. 무거워지는 생각은 또 내 입꼬리를 끌어내리지만. 인간들의 입술 양 끝에 매달린 근심. 넌 그걸 거두어주는 재주를 가졌다. 덕분에 난 당장을 살아.


참 길고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는다. 네가 읽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내 나름의 방식이야. 사랑을 다져나가는. 가능한 빨리 달려가 등을 쓸어주어야겠다. 더 많이 굽지는 않게. 눈을 오래 마주쳐야겠다. 그럼 좀 더디게 탁해질까 싶고. 곧 만나!


언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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