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1)

2-1. 세계 초콜릿 문화 비교

2부 - 초콜릿과 아비투스

2-1. 세계 초콜릿 문화 비교


초콜릿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과 의미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카카오라는 동일한 원료가 프랑스에서는 미식의 교양으로, 미국에서는 대중적 단맛으로, 일본에서는 의례의 언어로, 한국에서는 열거한 나라에 비해 가장 적은 함량의 집단적 소비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각 사회가 지닌 아비투스의 차이 때문이다. 결국 초콜릿을 어떻게 먹는가를 보면, 그 사회가 어떤 문화를 지녔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초콜릿은 가장 먼저 상류층의 음료로 등장했다. 16세기 스페인 궁정에 처음 들어왔을 때 초콜릿은 약용 음료이자 귀족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궁정에서도 초콜릿을 마시는 습관이 퍼졌고, 이는 미식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쇼콜라티에가 만든 봉봉 쇼콜라가 단순한 달콤함을 넘어 장인의 철학과 테루아를 담은 작품으로 간주되었고, 초콜릿을 즐기는 태도 자체가 교양 있는 생활 양식으로 전승되었다. 스위스에서는 알프스의 청정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정밀한 가공 기술이 초콜릿을 국가적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1879년 로돌프 린트(Rodolphe Lindt, 1855–1909)가 개발한 콘칭 conching 기술은 오늘날에도 초콜릿 질감을 정의하는 핵심 표준으로 남아 있으며, 스위스는 ‘부드러운 밀크 초콜릿’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을 굳혔다.


벨기에 역시 프랄린 초콜릿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초콜릿을 국가 브랜드로 승화시켰다. 브뤼셀 거리에 늘어선 초콜릿 부티크는 관광 상품이 아니라 곧 ‘벨기에 장인 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인들에게 초콜릿은 일상의 사치이자 교양의 전승 도구로, 부모가 아이에게 맛의 언어를 가르치고 사회적 대화 속에서 취향을 구별하는 미학적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초콜릿의 궤적은 산업화와 대량소비의 길을 따랐다. 20세기 초 허쉬 Hershey 는 대규모 생산 체계를 구축해 ‘국민 누구나 즐기는 달콤한 간식’을 만들어냈다. 초콜릿은 미국의 근대화와 도시화, 그리고 대중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마스 Mars 가 만든 M&M’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되면서 ‘녹지 않는 초콜릿’으로 유명해졌고,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소규모 장인들이 카카오 산지를 직접 찾고, 카카오빈을 수입해 로스팅과 배합을 직접 하는 ‘빈투바 Bean to Bar’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샌프란시스코나 브루클린 같은 도시에서는 이러한 초콜릿 바가 와인과 맥주처럼 취향의 상징으로 소비되며, 미국은 대량 생산 브랜드와 장인 초콜릿의 스몰 배치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초콜릿은 산업화의 상징에서 다시 개인적 스토리를 담는 기호품으로 회귀하는 이중의 흐름을 보여준다.


일본은 초콜릿을 독특한 사회적 의례의 언어로 발전시켰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제과 업계는 발렌타인데이를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설정하며 마케팅에 나섰고, 이는 곧 전국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마치 20세기 중반 드비어스 De Beers 가 펼친 마케팅이었던 ‘A Diamond is Forever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결혼과 프로포즈의 필수품으로 각인시킨 캠페인이 현대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단순한 연애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의리 초콜릿’을 주는 풍습까지 생겨났다. 화이트데이라는 역으로 남성이 답례하는 날까지 만들어지면서, 초콜릿은 일본에서 사회적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는 일종의 도구로 정착했다. 또한 일본은 해외 고급 브랜드를 빠르게 도입하면서 계절 한정 상품, 정교한 패키징, 한정판 기획 등 선물용 초콜릿 문화를 정밀하게 발전시켰다. 이는 매월 1월에 열리는 일본 살롱 드 쇼콜라에 가보면 적극 체감할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기줄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행사 내내 초콜릿 구매가 활발히 일어난다. 일본 사회에서 초콜릿은 개인의 취향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사회적 코드로서 기능하며, 하나의 작은 초콜릿이 상대방을 향한 존중과 예의를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한국의 초콜릿 문화는 여전히 집단적 소비와 과시적 성격이 강하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맞춰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늘어서는 초콜릿 상자들은 ‘남들도 하는 것’에 동참하는 안전한 선택으로 소비된다. 1980~90년대 광고에서 초콜릿은 주로 ‘사랑을 전하는 달콤한 선물’로 묘사되었고, 이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두바이 초콜릿이나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초콜릿이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찍고 올리는 인증용 상품’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와인이나 커피처럼 일상 속에서 초콜릿을 테이스팅하며 취향의 언어를 나누는 문화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결국 한국에서 초콜릿은 교양적 소비보다는 집단적 안도감과 과시적 욕망의 도구로 남아 있으며, 사회가 만들어낸 집단적 아비투스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부 - 아비투스란 무엇인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