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구제주 알콜 스팟 6
<2부, 깊어가는 여행의 밤 편>
“제주에선 밤에 할 게 없어요.”
어느 30대 초반의 여행객이 내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그는 제주 여행 5일 차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이 되면 가게는 일제히 문을 닫고 불빛이라곤 먼바다 한치잡이 배의 화려한 조명뿐이다. 걱정 말아요 그대, 구제주는 편의점 캔맥보다 낭만 있고 한치잡이 배의 조명보다 화려하니까요. ‘상쾌환’ 하나 들고 출발.
04. 호근동
어우, 말해 뭐해. 제주도를 양분한 2대 돔베 고깃집이 있으니 북쪽이 호근동이요, 남쪽이 천짓골이다. 서귀포로 택시 타고 갈게 아니라면 제주 시청 부근의 호근동이 답이다. 외관에서부터 로컬 맛집이라고 쓰여있는 듯 관록이 묻어난다. 이곳에 여행객은 없다. 아. 당신뿐이다.
돔베고기는 주문과 동시에 압력솥에 삶아낸다. 벌써 맛있다. 15분간의 기다림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돼지 내장 볶음과 순댓국이 무려 서비스로 나오는데 제주 막걸리와 함께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쭉쭉.
돔베고기 첫 점은 꼭 굵은소금에 찍어 먹어야 한다.(이유는 없어 그냥 그렇게 해) 배부름에 여유가 있다면 창도름(삶은 막창)을 추가해서 먹어보길 추천한다. 삶은 막창이라 약간의 어색함이 있지만 술을 부르는 안주임에 틀림없다.
제주막걸리와 돔베고기의 밤을 클리어한 당신, 제주에서 돔베고기 좀 먹어봤다는 친구들에게 ‘로컬 부심' 1회 허락합니다.
05. 도어즈
마틸다는 여행객만 가고 도어즈는 단골만 간다. 암만 찾아봐도 유학원 간판밖엔 보지지 않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도어즈’인지 알길 없지만 ‘문'이 나온다. 미사리에 갔다면 왠지 마주쳤을 것 같은 서문탁 st 누님이 세상 여유롭게 LP를 틀고 계신다. ‘안녕하세요'하고 냉장고에 맥주 하나 꺼내서 bar 자리에 앉아보자. 이미 당신은 단골이나 다름없다.
비교적 한산한 곳이니 조용히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 가보길 추천한다. 포스트잇에 노래 한 곡 적어서 누님께 드리면 바로 틀어주는데 그 순간 내 세상이 된다. 아. 루프탑에 잠시 올라 제주의 도시 야경을 즐기는 것도 강추다.
06. 고추잡채소파
고추도 잡채도 없지만 소파는 있다. 왜 이름이 고추잡채소파인지 정말 1도 모르겠지만 일단 신기해서 간판 사진 한 방 찰칵. 아. 알 것도 같다.
이곳은 말하자면, 20대 제주 대학생들의 아지트 같은 곳. 부어라 마셔라 언성 높이며 술 마시길 거부하는 친구들이 모여 맥주와 칵테일을 느긋하게 마시는 곳이다. 가격도 매우 착하다.
오래된 사무실 건물에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것들로 채워 넣은 공간이라 을지로에 있을 법한 갬성이 느껴진다. 친구와 일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고잡소'만한 곳이 없으니, 여행의 밤을 빌미 삼아 묵혔던 속 이야기를 풀어보자.
여행은 누군가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편의점 캔맥은 제주에 사는 나의 일상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의 일상에 여행 온 당신이, 조금 더 화끈하고 낭만적인 제주의 밤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글, 편집 : 이광석
제주에서 살고 베드라디오 호스텔을 운영합니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로컬의 일상을 여행하고픈 분들에게 추천하는 곳들을 글로 써 내려갑니다. 이 글은 호스텔 베드라디오의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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