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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Jul 02. 2020

로컬의 점심

집밥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도민 맛집 4


“점심에 뭐 먹지?”
육지에 사나 섬에 사나 직장인 최대의 고민은 바로 ‘점심 식사 메뉴'다. 오전 노동의 댓가이자 오후 노동의 동기부여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가진 점심 식사를 대에충 때울 순 없지 않은가. 순두부찌개, 비빔밥을 주 5일 먹을 수도 없는 노릇,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하루 이틀 정도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점심 식사가 필요하다.
직장인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장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즐비한 식당들 사이에서 직장인들의 귀하디 귀한 30분 낚아채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맛과 가격의 절묘한 밸런스가 아닐까. 여기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해낸 4곳의 도민 맛집이 있다.   



01. 곤밥2

가성비로는 제주 1등 이리라. 정식에 나오는 생선구이의 비주얼을 보면 메뉴판의 가격을 다시 한번 훑으며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인당 1마리가 아니다. “오늘은 생선이 좀 작아서 한 마리 더 드렸어요.”라는 직원분의 멘트는 ‘어서 오세요’와 같은 이 집만의 서비스 멘트다.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지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 한 마리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이다.   

곤밥은 제주어로 하얀 쌀밥을 뜻한다. 하얀 쌀밥에 10여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생선구이뿐이랴, 제육볶음과 쌈, 각종 전, 국, 밑반찬이 상의 빈틈이 보이지 않도록 차려진다. 반찬 리필은 매번 어찌나 친절하게 해주시는지. 이쯤 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맛, 양, 서비스, 가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줄을 설 수밖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30도가 넘는 대환장 더위에도 외부 웨이팅 좌석(내부 좌석이 아니다.)은 늘 만석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가보자. 식당에서 풍기는 생선구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웨이팅도 금방이다.    



02. 감초식당

보성시장에는 순대전문점이 밀집해있다. 허영만의 식객 [순대] 편, 1박 2일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감초식당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관광객에게도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들로 가게가 북적북적하다. 피, 당면, 채소를 넣어 만드는 보통의 순대와 달리 제주식 순대는 피, 메밀, 찹쌀을 넣어 만들어 맛은 더욱 고소하고 식감은 치즈케이크처럼 부드럽다.

국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크아~’가 절로 나온다. 이전에 먹던 순대 국물의 맛이 아니다. 콩나물과 배추를 넣어 끓여 훨씬 깔끔하고 시원하니 어서 달큰한 제주 막걸리를 주문하자.

각종 내장과 순대가 아낌없이 든 순댓국 한 그릇이지만 서너 명이 방문한다면 모둠 순대를 함께 주문하는 것도 좋다.



03. 무조리실

문을 여는 순간 ‘건강'이 물 밀듯 밀려온다. 가게 곳곳에 장이며 장아찌며 발효 식품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마음을 담은 손노동을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 무조리실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돈가스가 주 메뉴이며 여름 계절메뉴로는 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 두툼한 돈까스의 맛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주산 서리태로 만든 콩국수는 떠올리기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다.  

“신선한 음식 재료를 고르는 것은 물론 소스, 육수 등 모든 것을 직접 만듭니다. 와사비 대신 풋귤을 갈아 매운 고추와 같이 절여 내기도 하고, 유기농 팔삭의 알맹이와 껍질을 섞어 청을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밥에 정성을 쏟아요. 쌀을 씻는 것부터 뜸을 들일 때까지 가장 맛있는 밥맛을 내는 시간을 거쳐요. 제주에서 나는 제철 음식 재료를 쓰고, 안전한 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기도 하고요.” 최진아 대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짧게는 30분이면 마치는 점심식사 한 그릇을 만드는 데에 3시간, 3년의 정성이 담겨있다. 바쁜 점심시간에 느린 식시야말로 스스로에게 주는 휴양이다.   



04. 오롯

언젠가부터 제주 셰프님들의 인스타에 오롯 간증(?)이 올라오더라니. 어느새 로컬 맛집을 넘어서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해져 버렸다. 에잇.  

“모자람 없이 정성을 담아"

가게 간판에 쓰인 글귀다. 오롯에서는 전복게우, 꼬막, 청어알, 멍게젓 등 값비싼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간 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밑반찬, 국, 제육볶음과 쌈이 무거운 놋그릇에 담겨 정갈하게 차려진다. 제육볶음이  기본 찬으로 나오기엔 너무 고급진 맛이다. 이럴 수가, 무한 리필해주신단다.

음식의 맛과 정성이 담긴 집은 메인 메뉴보다는 밑반찬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배추김치, 어묵볶음, 콩자반, 대파장아찌 등이 상위에 올려지면 “손님에게 정성스러운 한 끼를 대접하겠소.” 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 밑반찬은 있어야 하니까"정도의 태도가 느껴진다. 오롯의 밑반찬은 집에 사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 집밥을 해 먹지 않으니 가끔 이곳에 들러 갖은 반찬으로 영양 섭취를 하곤 한다. 우리 동네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밥 같아.”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고 나면 으레 하는 말이다. 인스턴트와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정작 ‘집밥’은 없고 ‘집밥 같은’만 남았다. 어느새 향수가 되어버린 집밥.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평일의 점심 식사이지만 집밥 못지않은 정성의 요리를 맛보는 것은 나를 위한 합리적인 사치가 아닐까.    



사진, 글, 편집 : 이광석
제주에서 살고 베드라디오 호스텔을 운영합니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로컬의 일상을 여행하고픈 분들에게 추천하는 곳들을 글로 써 내려갑니다. 이 글은 호스텔 베드라디오의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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