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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Sep 15. 2020

브랜드를 만드는 반복의 힘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브랜드디렉터의 일

#일관성과 반복의 힘


고등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어느 여름날, 체육수업을 마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돗가로 뛰어갔다. 시원한 수돗물에 머리를 박고 한참 땀을 식히고 있는데 친구가 저 멀리서 나를 불렀고 나는 고개를 들다가 수도꼭지에 머리를 세게 찧었다. '악'소리와 함께 아파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이 친구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굳이 바닥에 뒹굴면서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고생들은 낙엽만 떨어져도 웃는다는데 남고생들은 피가 철철 떨어져야 웃음꽃이 핀다.


그 이후로 이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

"수도꼭지에 머리 꽁 찌뿐데이"

우린 경상도 사람이다. 번역하면 이렇다. '너 그러다 수도꼭지에 머리 찧을라'. 복도를 지나다가도, 하교를 하다가도, 시험 성적표를 보다가도. 맥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무 때에 나를 향해 이 문장을 반복했다. 그야말로 개소리다.


20년이 지나 이 친구를 만났는데, 아니 그걸 까먹지도 않고 보자마자 또 그 소릴한다.

"수도꼭지에 머리 꽁 찌뿐데이" 이쯤 되면 그냥 '안녕? 잘 지냈어?"와 같은 의미라, "그래~ 니도 잘 지냈나?"라고 대답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박OO이지만 내 머릿속에 각인된 건 단연 수도꼭지이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보면 이 친구가 생각난다. 머릴 찧던 순간 깔깔대며 웃는 모습, 3년 내내 불쑥 나를 놀리며 행복해하는 모습, 20년 만에 만나 여전히 개소리하는 모습이 수도꼭지에 모두 담겨있다. 그때야 이해불가에 얄밉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내게 '수도꼭지에 머리 꽁 찌뿐데이'라는 말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 내겐 소중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다.  


개소리도 계속하면 브랜드가 된다


이제는 누구나 좋아하는 브랜드가 하나쯤 있고 그 브랜드가 가진 사소한 서사까지도 깨알같이 들여다본다. 제품이 어떻게 생겨먹었든 출시일에 맞춰 일단 새벽부터 줄을 서서 구매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니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공급자)들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브랜드란 무엇인가?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와 같은 주제의 책이 넘쳐나고 유튜브에는 웰메이드 콘텐츠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양질의 지식정보를 습득함에도 막상 실전에 투입되면 '브랜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브랜딩(브랜드를 전개해 나가는 일)의 특성이 스타트업의 생존전략과 대치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생존이 걸린 전쟁터에서 몇 년 뒤 꽂을 승리의 깃발을 그려내는 일, 과연 이번 달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대표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도꼭지 일화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일관성과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어떤 메시지(A)를 정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계속 이야기(B)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이미지(C)가 형성된다. 이미지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D)가 담겨 있고 그것에 감응하게 되면 행동(E)이 일어난다. 정리하면 이렇다.


A > 수도꼭지에 꽁 찌뿐데이 > 슬로건

B > 브랜딩 > 브랜드를 전개하는 일

C > 수도꼭지 > 브랜드 명

D > 학창 시절의 추억, 우정 > 브랜드 철학 

E > 수도꼭지를 보면 친구 생각이 남(그리움) > 고객 반응


물론 위 사례는 고객이 '나'라는 한 사람에 한정되지만 브랜드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일대일이든 일대다든 동일하다.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메시지를 정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계속하는 것이 더 많은 고객에게 우리의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일 것이다.


브랜드는 일관성과 반복의 힘으로 탄생한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대표가 어떤 철학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도 굳건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 총탄이 오가는 순간에도 깃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총을 든 부대원들에게 설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깃발을 꽂아야 내 땅이 되니까 말이다.

브랜드는 회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 의해 만들어진다. 말인즉슨,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고객이 공감할 만한 일관된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는 일이 회사의 브랜드 리더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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